옷 주머니 여기저기에 기쁨과 설렘, 막연함과 불안함을 담고 기차에 올라탔다. “우리 자리가 어디지?” 좌석 사이 좁은 통로를 지나며 자리를 찾고 있으니 기차가 출발한다.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기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속이 울렁거린다. “여보, 나 속이 메스꺼워요.” 그러자 남편이 등을 쓸어주고 물을 꺼내 준다. 체한 것 같지 않은데 기운이 없고 여행 내내 먹으려고 싸온 간식은 보기도 싫어진다. 우울해지려는 찰나, ‘아, 이거 멀미구나!’라고 알아차렸다. ‘침울함’에게 바통을 이어주려던 ‘메스꺼움’이 거기서 멈췄다! 이 불편한 느낌을 받아들이면서 남편과 수다도 떨고 게임도 하다 보니 창밖 풍경도 보였다. 그렇게 우리의 여행은 덜컹거리는 기차와 하나 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착상
“인기척도 없이, 이렇게 살짝 와주었네!” 병원에서 임신임을 확인하고 돌아오면서 남편이 말했다. ‘정말 난 아무것도 몰랐을까?’ 아랫배를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곰곰이 지난 며칠간을 떠올려보았다. 요 며칠 몸이 으슬으슬해서 감기몸살인가 싶어 수시로 따뜻한 물을 마시고, 빨래나 청소를 할 때도 온몸이 나른해져 ‘신혼집이 나랑 안 맞는 건가?’하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아, 이게 다 착상(着床)의 증상들이었구나!’ 눈에 띄는 변화가 없어 전혀 몰랐는데 새 생명은 이미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쌍윳따 니까야》의 <약카 상윳따>에 태아가 처음 5주간 자라는 모습을 7일 단위로 설명하고 있다. “맨 처음 (모태에서) 깔랄라가 있고 깔랄라로부터는 압부다가 있네. 압부다에서 뻬시가 생기고 뻬시가 성장하여 가나가 되네. 가나에서 다시 빠사카가 생겨 머리털, 몸털, 발톱이 생겨나도다.”(각묵 스님 옮김)깔랄라(kalala)-압부다abbuda)-뻬시(pesi)-가나(ghana)-빠사카(pas.kha)라는 용어들은 《상응부 주석서》에 자세하게 풀어놓았는데, ①깔랄라는 수정된 지 일주일 된 상태로 세 가닥의 털로 만든 실오라기 끝에 놓인 기름방울만 한 크기이다. ②압부다는 깔랄라로부터 칠 일 후 만들어지며 살코기를 씻은 물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③뻬시는 압부다로부터 칠 일 후 만들어지며 백색 후추 씨앗 모양이다. ④가나는 뻬시로부터 칠 일 후 만들어지며 달걀 모양의 고깃덩이이다. ⑤빠사카는 가나로부터 칠 일 후 두 개씩의 손과 발과 머리가 되기 위한 다섯 가지 돌기들이 생긴 것이다. 이처럼, 엄마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도 엄마 몸속 작은 생명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① ‘입덧이다’ 알아차리기
오늘 아침 반찬은 내가 좋아하는 두부+우유+채소계란찜과 된장찌개! 재료를 꺼내고 채소를 썰고 있는데, 빡빡한 계란찜과 걸쭉한 된장찌개를 생각하니 갑자기 속이 울렁거려 썰던 채소까지 전부 냉장고에 집어넣어 버렸다. 속 달래는 동안 기분 전환하려고 TV를 틀자 마침 요리 프로그램이 나오는데 TV 속 음식 냄새가 여기까지 나는 것 같아 채널도 돌려버렸다. 그날 저녁, 남편이 연애 시절 자주 먹던 소고기국밥을 포장해서 가져다주기에 ‘내가 참 좋아했었지’라고 최면을 걸며 꾸역꾸역 먹어댔는데 결국 저녁 내내 변기를 붙들고 있어야만 했다. 기운도 없고 우울해졌다. 그러다 문득 알아차렸다. ‘아, 이거 입덧이구나!’
증상은 전혀 달갑지 않은데 이 불편함이 ‘입덧’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우울한 감정이 사라졌다. 《숫따니빠따》에 “모든 번뇌가 일어나는 근본을 살펴 그 원인을 헤아려 알고 그것에 집착하는 마음을 기르지 않는다면, 그는 참으로 삶과 죽음을 뛰어넘은 절대 평화의 세계를 바라본 성인이다.(게송 209, 법정 스님 옮김)”라고 나와 있다. 내가 가진 불편함의 원인이 입덧 때문임을 순간순간 알아차려 집착심을 키우지 않는 것, 그것이 입덧 수행 첫 단계이다!
② ‘누구에게나 있다’ 인식하기
‘새 생명이 자리 잡고 뿌리내리는 과정이라 여기고 입덧을 달갑게 받아들이자’라고 매일 아침 기도하면서도 점점 핼쑥해져 가던 어느 날, 유부녀 선배들이 소개해준 임신-출산 정보교류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보았다. 수많은 입덧경험담이 구구절절 적혀 있는데 어찌나 다 내 얘기들 같던지. 내 결론은, ‘고통스런 입덧은 정도야 제각각이지만 대부분의 임산부가 겪게 되는 일반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도 언젠가는 끝이 있다!’였다. ‘누구에게나 있다’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고통의 소용돌이에 훅- 빠져드는 것을 멈추게 한다. 흔히들 그 고통이 마치 처음부터 내 것인 양, 나만 겪는 것인 양 느끼면서 심리적인 고통으로까지 더 꺼둘리게 되는데 ‘누구에게나 있다’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그 고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에 대한 방법을 모색할 수 있게 된다.
③ 나만의 먹을거리와 즐길 거리 찾기
《쌍윳따 니까야》의 <약카 상윳따>에 “어머니가 먹었던 그때의 음식, 마시고 먹는 것은 무엇이든지 모태에 든 존재는 모태 속에서 그것으로 거기서 살아가도다.”라고 나와 있다. 엄마 뱃속 아이는 오로지 엄마 몸을 통해 영양을 공급받는데, 입덧 때문에 식욕이 없다 하여 먹지 않는다면 엄마 배 속의 아이는 굶을 수밖에 없다. 깨달음을 얻고자 가는 길에서 장애가 생기면 그것에 맞는 수행법을 찾듯,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기 위한 임신과정 중에서도 입덧이라는 불편함이 생기면 내게 맞는 입덧 완화/극복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입덧을 통해 새롭게 세팅되고 있는 내 상태를 살피다 보면 어떨 때 편안하고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공복에 방울토마토를 먹으면 속이 편안하다. ㉡라면과 햄버거를 먹으면 손발이 붓는다. ㉢남편과 공원을 산책하면서 대화를 하다 보면 기분전환이 된다. 이 같은 증상을 바탕으로 나만의 방침을 정해보자. ㉠공복 시: 방울토마토, 견과류, 오이, 크래커 OK! ㉡라면, 인스턴트 음식, 맵고 짠 음식 NO! ㉢남편과 산책, 가족들과 전화로 수다 떨기, 찬불동요 따라 부르기 OK. 이렇게 몸과 마음에 맞는 먹을거리와 즐길 거리를 찾아간다면 이 입덧과정은 배속 아이와 엄마·아빠가 최초의 팀워크(Team work)를 발휘하는 멋진 합작품이 될 것이다.
불자에겐 모든 것이 수행 거리라고 했던가. 임신 여행 초반에 불편함의 관문에 도달했을 때,
①‘입덧이다’ 알아차리기, ②‘누구에게나 있다’ 인식하기, ③나만의 먹을거리와 즐길 거리 찾기-를 해보자. 그러면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이상야릇한 입덧이 ‘누구에게나 있는 고통’에서 ‘생명을 움트게 하는 나만의 특별한 시간’으로 바뀌는 것을 스스로 체험하게 될 것이다.
유산에 대한 걱정
“오늘은 속이 어때? 방울토마토 먹었어?” 아침 인사로 남편이 묻는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은 속이 울렁거리지 않았네요…” 반가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임신 초기는 태반이 온전히 형성되기 이전이라 유산확률이 높고, 갑자기 입덧이 없어지는 것은 유산의 징후일 수도 있다고 들어서였다. ‘빡빡한 계란찜과 걸쭉한 된장찌개라도 먹어서 입덧하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찰나, 또 속이 울렁거렸다. 얼마나 감사하던지! “입덧을 해도 걱정, 안 해도 걱정이네”라고 혼잣말을 하며 두 손으로 배를 따뜻하게 감쌌다.
《숫따니빠따》에 “집에 불이 난 것을 물로 꺼 버리듯, 지혜로운 사람들은 걱정이 생기면 이내 지워 버린다. 마치 바람이 솜털을 날려 버리듯이.”(게송 591, 법정 스님 옮김)라는 게송이 있다. 아이를 기다릴 때도 인연이 무르익어야 함을 알고 초조한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듯,
아이가 깃들어 자리 잡을 때도 유산에 대한 걱정을 떨쳐버려야 한다. 뱃속 아이로 인해 펼쳐지는 뱃속 세상은 배 밖의 사람들이 관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만 아이가 우리와의 인연을 놓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최선이다.
‘멀미를 하면 어쩌나?’, ‘기차가 탈선하면?’, ‘도중하차하면 어쩌나?’라는 걱정은 쓰레기봉투에 넣어버렸다. 대신, 여행 가방에서 희망 한 줌을 꺼내 남편에게 건넸더니 남편이 기차 창문에 호~ 하고 입김을 불어 어여쁜 아기 얼굴을 그려준다. 그렇게 우리는 꼬불꼬불한 ‘입덧’역을 우리답게 거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