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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각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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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정영 2016년 04월 410호
유럽은 선禪 수행을 원한다
독일 레겐스부르크불이선원
현각 스님

눈 내리는 서울의 아침. 건물 사이로 몰아치는 눈발이 바삐 걸어가는 회사원들의 걸음을
더욱 재촉한다. 그 잿빛 풍경 속에서 유유히 걸어오는 현각 스님, 그가 말한다.
“행복할 수 있는 또 다른 시간은 없어요. 바로 지금, 특히 지금, 지금보다 지금 행복합니다.”
조계산 송광사에서 동안거를 마친 현각 스님은 독일로 돌아간다. 4년간 뮌헨에 있던 ‘불이선원’을 뮌헨과는 한 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도시 레겐스부르크로 자리를 옮겨 개원한다. 그곳에서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많은 유럽인들과 참선 수행하며 살 것이란다.
“한국의 선불교는 세계적으로 중요합니다. 유럽 사람들은 선 수행을 테크놀로지로 받아들여 굉장히 인정하고 있어요. 과학적인 효과를 알기 때문에 참선하는 기술을 필요로 해요. 난 그들에게 그 기술을 전달해 주고 있어요.”
현재는 빌딩의 한 층을 빌려서 사용하고 있지만 규모를 키워서, 출가자와 재가자를 가리지 않고 함께 수행하며 살아가는 수행공동체를 만들 생각이다. 사람들이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아침저녁으로 정진할 수 있는 공간, 개인적인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가족처럼 함께 수행하며 살아가는 자유로운 공간. 후에는 독일의 숲에 전통 기와를 올린 선방을 짓고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것이 현각 스님의 바람이다. 한국과 달리 신도라는 개념도 없고 공양주 보살도 없고 제사도 없다. 현각 스님은 그들에게 한복을 입고 차를 마시는 한국 불교의 문화를 전달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싶은 것이다.

“외롭고 쓸쓸하게 집 밖에서 방랑하는 ‘나’를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참선 기술을 전하려는 거예요, 종교를 넘어서서. 제가 종교를 강조한다면 그것은 선불교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종교는 나 밖의 힘을 믿는 것, 그러니 믿으라고 말하는 것은 종교에 지나지 않단다.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있어야만 자신의 정체성이 확립된다면 그것은 실수일 뿐이란다. 종교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일 뿐, 그러니 그것을 초월해야 한단다. 그래서 현각 스님은 종교라는 틀에 갇히지 않는다. 성경을 인용해 자유롭게 설법을 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다.
“수행은 과학입니다. 과학자는 믿음이 아니라 의심에서 해답을 찾아요. 인생이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인가? 수행은 의심의 자리에 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대기업에서는 현각 스님에게 세미나 요청을 많이 한다. 스님의 강의를 듣고 싶어 하고 대화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한국의 회사들은 ‘스님’을 초청하지 않는다. 종교라는 틀 안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런 한국의 닫힌 면모를 마주할 때마다 현각 스님은 안타깝기만 하다.
현각 스님은 한국 불교가 외부의 지적(知的, Intellectual) DNA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전통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계속해서 똑같은 문화만을 고집하면 그 힘은 약해질 뿐 발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집착하지 말아야 할 것이란다. “선불교와 문화가 하나라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한국 불교는 문화에 너무 집착하고 있어요. 다도 문화, 복장 문화, 문중 문화…. 그런 문화만 강조하느라 중요한 것, 선불교의 테크놀로지를 놓치고 있는 거예요. 부처님이 언제 이런 옷 입었어요? 아주 아름답지만 수행하기엔 불편해요. 난 문화 퍼포먼스 할 생각 없어요. 진실하고 싶어요.”
현각 스님은 선방에서 다른 스님들에게 쿠션을 권한다. 좌복은 한국에 의자 문화가 들어오기 전에 이불을 접어서 사용하던 것이어서, 의자 문화가 생활화된 현대인들의 몸 구조엔 맞지 않기 때문이다. 쿠션 없이 좌복에 앉으면 몸이 둥글게 말려 근육을 계속 써야만 한다. 그러니 몸을 계속 움직이게 되어 정진하는 데에 방해되고 몸이 말리니 잠이 오기 쉽다. 그에 반해 쿠션을 사용하면 아무 긴장감 없이 편안하게 앉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스님은 한국의 선방에 있는 스님들에게 쿠션을 권하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늘 한 가지다. 한국 선방에선 예전부터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어른 스님들이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스님들이 마음을 열지 않으면 스스로 갇혀요. 닫힌 마음 앞에서 누가 편하겠어요. 열면서 살아야 재미있지요. 죽은 문화에 집착하고 있으면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요.”
사각 모양의 다탁을 앞에 두고 장삼을 입은 채 왕처럼 앉아 있고 싶지도 않단다. 신도들이 멀찍이 신하들처럼 일렬로 서 있는 모습을 원하지 않는단다. 서로 눈을 맞추며 이야기 나눌 수 없는 구조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말씀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강의했나요? 아니에요. 수보리, 사리자 같은 제자들과 대화했어요. 그런데 한국 스님들은 일방통행 법문을 해요. 조용히 듣는 것만 착한 제자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아무도 질문하지 않아요. 그러니 대답도 없고 그러니 움직임도 없어요.”
실천되지 않는 불교라는 말씀이다. 그러니 그런 알맹이 없는 퍼포먼스는 하고 싶지 않다는 말씀이다. 현각 스님이 유럽에 가서 포교하려는 이유 중엔 문화 퍼포먼스를 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있다.
현각 스님은 미국의 천주교 집안에서 자라 예일 대학에서 철학과 문학을 전공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과 하버드대학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그 무엇도 현각 스님의 고민에 해답이 되어주지 못했다. 그러던 중 한국의 숭산 스님이 하버드 대학에서 법문하는 것을 듣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야말로 살아 있는 언어였다. 생생한 지혜였다. 현각 스님은 충격을 받고 환희감에 가득 차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신부가 되고자 했던 그 청년은 그렇게 숭산 스님과의 인연으로 한국으로 건너와 출가했고 스님이 되었다. 선방의 수좌가 되었다.

“숭산 스님은 평등주의자, 여성주의자였어요. 석가모니 부처님이 그랬던 것처럼.”

현각 스님은 숭산 스님의 면모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를 꺼내놓으신다. 숭산 스님은 미국의 ‘관음선종’에서 당신의 맥을 잇는 리더로 한 여성을 지목했다. 그녀는 출가자도 아니었으며 이혼녀에 레즈비언이었다. 그저 그녀의 자비심과 관음행만으로 판단하셨다. 한국 불교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숭산 스님은 그것을 숨기지도 않았으며 어떤 비난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돈이나 명예를 바라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숭산 스님은 ‘부처에게도 스님에게도 집착하지 말라. 수행 중에 부처가 장애가 되면 부처도 버리라’고 가르치셨다. 현각 스님은 그런 숭산 스님의 길을 이어갈 생각이다.
“난 유럽에서 그냥 나로 진실하게 살 거예요. 그러면 사람들의 마음을 만질 수 있어요.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싶어요. 그들이 스스로를 구제하게 만들고 싶어요. 그걸 못 한다면 내가 역할을 잘 못 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에게도 도전이에요. 함께 수행하면서 나도 성장할 거라고 생각해요. 굉장히 기대돼요.”

그런 현각 스님께 여쭙는다. 왜 한국에 머물며 한국 중생들의 손은 안 잡아주십니까?
“한국 사회는 스스로를 아프게 해요. 해결법은 아주 분명해요. 고집과 집착을 버리고 다양한 지적 DNA를 수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난 언제나 손님일 뿐이에요. 한국 사람들은 내가 남의 집에 들어와서 청소한다고 생각해요.”
그의 푸른 눈이 젖는다. 그리고 어느새 눈이 그친 서울 한복판에서 그가 사라진다. 그러나 어디에 머물든 현각 스님은 현각 스님이다. 그가 이 세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