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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상 목사님의 하화중생(下化衆生) - 유수상 목사님 2016년 04월 410호
부천에서 일어난 생후 3개월의 영아 사망 사건을 조사했던 경찰의 발표를 보면서 눈과 귀를 의심했습니다. “원치 않은 출산으로 딸에 대한 애정이 많지 않았다.” 20대 부모는 경찰에서 이렇게 진술했다고 합니다. 또 친부와 계모에 의해 아이가 잔혹하게 살해된 사건을 보았습니다. 어처구니가 없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데 평정심을 갖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회적 병리 현상이 봇물 터지듯 드러나는 우리의 현실을 냉정하게 돌아봅니다. 오늘날, 가정의 이미지는 더 이상 ‘보금자리’가 아니라 잠시 머물다 가는 ‘버스 정류장’으로 표현됩니다. 가정은 잘 짜인 노동시장에 종속되어 노동의 긴 여정을 위한 간이 정류장이 되었습니다. 아이들도 바쁜 노동자인 부모님과 삶의 가치와 행복을 나누는 시간을 함께하기 어려워, 그 간이 정류장에 간간이 들러 냉장고 문을 열고 먹을 것만 챙겨 먹고 바삐 유치원, 학교, 학원으로 떠납니다. 어른들은 삶이 고달플수록 고통을 잊는 방편으로 일에 더 몰입하는 병적 경향마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가시적 성과를 만나게 되면 다소 마음을 편안해 하며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그래 열심히 잘살고 있어’ 라고.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지만 분명 우리의 가정은 위와 같이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 속에는 ‘일 중독 현상’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일을 함으로써 안정감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스트레스를 낳는 아이러니한 가치관. 그 결과 맞벌이를 하는 요즘의 추세에서 보면 거의 모든 가정은 ‘일 중독 현상’의 심각성에 따라서 조금 ‘덜한’, 조금 ‘더한’, ‘심각한’ 버스 정류장일 뿐, 대동소이한 것 같습니다.

산골에 갓 들어와 자리 잡을 무렵, 사과 농사를 짓고 있는 젊은 농가의 과수원 방문을 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농장 한 켠의 빨간 고무 대야에 아이와 간식거리를 던져두고 검정 우산으로 햇빛 가리개를 해 놓은 채 부부가 열심히 일에만 몰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혼자 놀다가 고무 대야에서 지쳐 쓰러져 자는 아이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지워지지 않은 기억 때문에 동네 아이들을 모아서 조그마한 ‘공부방’을 열었습니다. 마을에 폐교를 임대받아 수리하고 도시에 사는 지인들에게 부탁해서 책도 모으고 사양이 낮아 교체되는 컴퓨터를 설치하여 아이들과 함께하며 즐거운 일상을 만들어 갔습니다. 지금 그 아이들이 잘 자라서 전국에서 자신의 몫을 다하며 지낸다는 소식을 듣는 것이 저의 즐거움입니다.

공부방을 시작하며 아이들에게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았는데 하늘에 날아다니는 비행기를 직접 타보는 것이 소원이랍니다. 하지만 제가 아이들에게 비행기를 태워줄 만한 형편도 되지 않았고 아이들 절반 이상이 한 부모가정 이거나 조손 가정의 아이들이라 경제사정이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하늘에 기도만 하고 있을 수 없어서 아이들과 함께 궁리했습니다. 여행의 장소와 일정을 정하고 구체적인 비용을 산출해 경비를 함께 마련해 보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아이들이 전체 여행 경비의 절반을 마련하면 제가 절반을 더해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아이들은 일 년여 동안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명절에 받은 용돈을 모으고, 버려지는 빈 병, 사료 포대, 비료 포대를 모았습니다. 그래도 부족해서 면 소재지의 기관을 찾아뵈며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새로운 꿈을 가지고 싶습니다’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던 기관장님들이 십시일반으로 동참해주셨습니다. 또 뜻있는 부모님들의 응원으로 십여 명의 고학년 아이들이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날 김해공항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애들아 비가 오면 비행기의 날개가 물에 젖어 날지를 못한단다” 했더니 아이들이 “진짜요” 하며 눈이 둥그레집니다.
“하하하 아니다 농담이다” 했더니 아이들이 공항이 떠나갈 듯 소리를 칩니다. 비행기가 비로 인해 미끄러운 활주로를 박차고 날아올랐습니다. “우와 이 쇳덩어리가 날아오르네” 하며 환호하였습니다. 잠시 후에 한 아이가 소리쳤습니다. “저기 봐라 태양이 있네” 하는 것이었습니다.
“진짜가” 하며 아이들이 창가로 몰려갔습니다. 비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었는데 비행기가 고도를 높여 구름 위로 올라오자 밝게 빛나는 태양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산골에 아이들은 비바람의 구름 위에 밝게 빛나는 태양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아픔과 시련 뒤에는 새로운 꿈과 비전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제주에 도착 한 첫날 저녁 아이들과 비행기 탄 소감을 나누며 자신들의 꿈을 이야기했습니다. 아이들의 소박한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했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고 했던 아이는 사회복지사가 되어 저와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축구선수가 되겠다고 했던 아이는 직업군이 되어 군대에서 열심히 축구도 하고 나라를 지키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되겠다고 한 여학생은 학원 강사가 되어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간호사가 되겠다고 했던 여학생은 물리치료사가 되어 재활이 필요한 사람들의 힘이 되고 있습니다.
열두 세 살의 아이들이 이제 서른 살이 넘어 가정을 꾸리기 시작합니다.

한 아이가 자라는데 온 마을이 함께했습니다. 새로운 꿈들을 자신의 아이들에게 잘 전할 것이라는 확신을 합니다. 가정이 건강해야 합니다. 마을이 건강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현실은 녹녹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일 중독’에 허우적거리며 헤매는 틈을 타서 세상을 이끄는 사람들은 새로운 일자리라는 이름으로 우리들의 따뜻한 삶의 과정을 ‘상품화’ 시켜버렸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친밀함과 우정, 환대, 사랑의 관계를 만들고 확인하고 나누던 행위가 모두 ‘사회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돈벌이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이를 잉태하거나 낳는 행위는 정자·난자 은행이나 산부인과 병원으로, 아이를 키우는 행위는 어린이집·놀이방·학교·학원으로 수단화되었으며, 부모를 돌보는 일조차도 노인장기요양보험이 효자라고 정부는 광고합니다. 우리의 살림살이가 온통 ‘서비스 경제’ 속으로 편입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서비스는 있되 참된 봉사는 없고, 학교는 있되 참교육은 없어졌습니다. 또 고급 아파트는 있되 참 살림은 없고, 레스토랑은 있되 참된 먹거리는 없습니다. 현실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주류 경제학에서는 서비스 경제, 즉 3차 산업이 발전할수록 ‘선진국’이라는 잘못된 관념이 지배적이며 현실의 삶을 피폐하게 합니다. 지금부터라도 이런 환상에서 탈피하여 삶의 자율성, 삶의 친밀성, 삶의 직접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아동학대를 비롯한 사회적 병리 현상은 그동안 잘못된 가치관을 내면화한 결과입니다. 우리 삶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무엇인가요? 그것은 결국 ‘행복’이 아닌가요? 삶의 행복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은, 경제든 개발이든 교육이든 평화든 발전이든 그 이름이 무엇이든 아무 쓸데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행복 증진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단언컨대, 사람들이 자신의 살림살이를 우애롭고 평화롭게 스스로 만들어 가는 과정, 그 자체가 바로 행복한 삶입니다. 사과농사 지으며 비록 고무 대야 속에서 아이를 양육했지만 지금 그 아이는 부모의 따뜻한 사랑으로 잘 성장했습니다. 척박한 산골에 아이들이지만 온 마을 사람들의 관심 속에 아이들은 지금 대한민국을 이끄는 주역으로 자랐습니다. 자, 이제부터, “더 빨리 더 많이 더 높이”라는 구호 대신, “더 느리게 더 적게 더 낮게”를 외치며 우리 삶의 모든 과정을 참되게 구조 조정하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