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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적 가치를 조직에서 구현하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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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불교 - 김재준 2016년 02월 408호
설립된 지 100년이 된 한 기독교계 시민단체를 컨설팅 할 기회가 있었다. 이 단체는 우리 사회를 위해 오랜 시간 크게 기여해왔고, 특히 청소년 분야에서 비교할 수 없는 족적을 남기고 있다. 이 조직의 구조조정과 신규 사업에 대한 경영 컨설팅이 주요 목적이었지만 진행 과정에서 매우 흥미로운 주제를 발견하고 이를 연구하게 되었다.

조직의 종교적 미션과 가치가 얼마만큼 경영과 사업에 반영되고 있을까?

이 주제에 대한 실무자 인터뷰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기독교적 가치를 현실에서 구현하겠다고 만든 단체인데, 실제 경영이나 사업(프로그램)에 소위 ‘하나님의 말씀’이나 ‘성경적 원리’,
‘기독교적 문화’가 적용된 부분은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사례가 거론되었지만 대부분 타 단체나 영리 기업의 유사 사업(프로그램)에서도 비슷하게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후 종교계의 복지 기관이나 단체들을 만나면서 확인한 바도 비슷했다. 그 모체가 불교이든 기독교이든 천주교이든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정부나 지자체의 획일적 관리 체계 안에서 운영되는 곳이니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한다. 하지만 각 종교의 지향과 원리가 분명히 다를진대 운영상에서 다른 부분이라곤 총책임자가 스님이냐 목사님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불교계 복지 기관에서 운영되는 프로그램이 기독교계 복지 기관의 그것과 크게 다를 게 없었고, 운영 조직 체계 및 관련 규정 역시 대동소이했다. 특히 불교적 가치관이나 부처님의 가르침, 승가 공동체의 철학과 역사, 불교문화가 반영된 부분은 벽에 군데군데 걸린 불화들과 몇몇 종교 행사들이 전부였다.
여기에 대해 자료를 찾거나 스님들께 여쭈어도 명쾌한 해법을 찾지 못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개인적 차원에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의 문제가 수행이라면, 이 가르침을 승가 공동체 외의 조직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이제는 본격적으로 다뤘으면 한다. 즉, 불교적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이고 어떻게 가능한지를 정리해본다면, 불교계에서 직간접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무수한 조직에 도움을 줄 것이고, 무엇보다 재가 신도로서 부처님 말씀을 조금이라도 생활에서 실천하려는 분들에게 좋은 이정표가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을 ‘사회적 만행(卍行)’이라고 부르고 싶다. 만행을 출가자들이 산중에서 수행하다가
세상에 나와 그 수준을 점검받는 과정이라 본다면, 불교의 가치를 조직에 발현하는 일은 바로 불교계가 세상에서 그 수준을 점검받는 또 다른 의미의 만행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이 글을 통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우리가 만들어야 할 조직은 어떤 것이고, 해야 할 사업은 무엇이며, 운영의 형태와 방식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2회에 걸쳐 다루고자 한다.

어떤 조직을 만들고어떤 사업을 할 것인가?

불교는 어떤 것을 하지 말고 어떤 것은 하라는 명확한 가르침을 제시한다. 변명을 대거나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지 않겠다는 다짐만 있다면, 불교적으로 합당한 조직이나 사업을 판가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 중심에는 늘 ‘계·율·론 삼장(三藏)’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널리 통용되지 않는 개념 중에 ‘정명 기업’이라는 게 있다. 팔정도(八正道)의 ‘정명(正命, samyak ajiva)’을 실천하는 기업 정도로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정명이 개인으로서는 올바른 직업을 선택하는 일이겠지만 조직으로서는 올바른 사업을 하는 것이 된다. 올바른 사업이란 무엇인가. 경전의 뜻대로 한다면 ‘인간과 동물, 식물과 땅에 이로움을 주거나 적어도 최소한의 해를 미치지 않는’ 사업이 될 것이다. 불교 신자의 조직이 살생을 하거나 돕는 사업, 올바르지 못한 성행위를 조장하는 사업, 마약이나 술과 무기를 제조하거나 파는 사업 등 남의 고통을 토대로 돈 버는 일을 한다면 그것은 올바르지 않다. 물론 지혜가 부족하여 옳다고 한 일이 결과적으로 이롭지 못한 일이 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이는 업(業)의 구성 요소(의도, 행위, 결과)가 충족되지 않으므로 논외로 쳐야 할 것이다. 정명 기업으로 많이 알려진 곳은 영국의 윈드호스(Windhorse Trading)이다. 이 기업은 상가락시타 스님에 의해 설립된 FWBO(The Friends of the Western Buddhist Order)가 세운 여러 회사 중 하나인데 주로 공정무역을 하는 곳이다.
또 하나의 유명한 정명 기업 역시 스님이 세운 곳이다. 미국 UCLA 대학에서 응용수학으로
박사학위를 따고 국방 사업체에서 일했던 데스겐 글래스맨 스님이 창업한 그레이스톤 베이커리(Greyston Bakery)이다. 가난한 이웃들을 돕기 위해 만든 빵집으로, 고용된 이들도 대부분 노숙자나 출소자 등 취약 계층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사회적 기업 같은 곳들로, 사회적 기업에 정명 기업에 많은 것은 이들이 사회문제를 해결하거나 공익적 가치를 추구하자고 만든 조직들로 종교적 지향과 유사한 설립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예만 본다면 ‘불교적 가치를 구현하는 조직’으로서의 정명 기업은 공익 단체나 사회적
공익 기업에 한정될 것이다. 하지만 일반 영리 기업이라 할지라도 그 사업 성격이 불교적 교리나 계율에 위배되지 않고 정당하게 수익을 창출하며, 사람들의 생활을 이롭게 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곳이라면 충분히 정명 기업으로서의 자격이 있다.
그 판단의 요체는 해당 기업이 본래 목적하는 바가 무엇이냐에 있다고 본다. 우리가 아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업체인 페이스북의 미션(목적)은 ‘주주 이익 극대화’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공유의 힘을 제공하여 세계를 보다 개방되고 연결되게 한다(To give people the
power to share and make the world more open and connected)’이다.

페이스북 창업자이자 최고 경영자인 마크 주커버그가 독실한 불자로 알려진 중국계 아내 프리실라 챈의 영향을 받아 페이스북 경영 철학에 불교 사상을 많이 반영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페이스북이 미얀마 종교 갈등을 완화시키기 위해 다른 나라에는 없는 ‘타종교 비방 내용에 대한 게시물 삭제 기능’을 추가하고 평화를 유도하는 온라인 스티커 배포 등의 활동을
한 것도 관용과 자비라는 불교적 가치를 실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불교적 가치를 구현하는 적극적 실천 행위로서 부처님 가르침에 입각한 조직을 만들고, 사업을 진행하는 ‘정명 기업’ 운동을 불교계에서 펼쳐보는 것은 어떨까.

다음 호에서는 불교적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방법과 불교적 개념이나 문화를 경영 활동에 반영하는 방법에 대해 다루어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