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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변화하는 중공
2. 중공학계의 기본적 불교인식
3. 역사유물주의와 불교
(1)중국 불교사 연구의 촛점
(2)중공에 있어 불교란 무엇인가?
(3)역사유물주의의 좌초
(4)불교신학 유심주의란?
(5)불교신학 유심주의 극복을 위한 접근
(6)중공학계의 화엄시상 이해
4. 현행 우리나라의 역사유물주의적 불교해석 수용에 나타난 문제
5. 중공 신(新)불교의 평가와 전망
(1)현대 중공의 종교 이해
(2)앞으로의 전망
참고 문헌
1. 변화하는 중공
팔십년대 중반에 접어들어 현대 중공은 경제 분야의 자본주의적 개혁과 정치, 사상 분야에 대한 개방정책을 다각적으로 표명하고 있으며 그 변화는 주변 국가의 정치, 경제 동향에 큰 변수로 작용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모택동(毛澤東1893~1976)이 주도한 신민주주의(新民主主義) 혁명1) 이래 지난 수십년간 수억 중국인들의 의식과 행동을 규제해온 마르크스•레닌•모택동 사상에 대한 활발한 재해석과 비판작업이 행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중공의 정치 상황이 현저히 달라졌다는 것을 가늠할 수 있다. 현재 여러 가지 측면에서 나타나고 있는 중공의 탈(脫)마르크스주의 노선의 상징적인 모습에도2) 불구하고 현대 중공의 정치 기초는 ‘사회주의 노선 견지, 프롤레타리아독재〔人民民主專政〕, 공산당 독재에 의한 영도, 마르크스레닌주의 모택동주의 견지’라는 ‘네 가지 기본원칙을 견지할 것(堅持四項基本原則)’이 헌법 총강에 규정되어 있는 사회주의 공산국가인 것이다.3) 그렇다면 오늘날 격변하는 중공 대륙에서의 불교는 어떤 변화를 거쳐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은? 그동안 우리는 이 문제에 관한 자료 입수의 한계와 현실적인 사정으로 중국 대륙의 불교에 대한 선명한 모습을 알기 어려웠다. 본고에서는 현대 중공의 인문 동향에 나타난 불교 연구의 기본 방향과 불교계의 동향을 알아봄으로써 향후 중공과 주변 국가의 불교계가 당면한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중공 학계의 기본적 불교 인식
현재 중공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는 불교 관계의 저서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집단 저작의 형태를 갖고 있으며 역사유물주의(歷史唯物主義)의 입장과 관점,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집단 저작의 경우 한 학자 개인이 교의해석권(敎義解釋權)을 갖고 있지 못하며 마르크스 레닌, 모택동 사상을 국가이데올로기로하는 중공의 관용 철학자들만이 불교 사상에 대한 공식적인 해석권과 발표권을 갖고 있음을 암암리에 반영한다. 사상 연구의 방침 역시 ‘사회주의 사회를 실현하는 정치 목적에 이바지해야 할 것,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준거해야 할 것, 유물론의 우월한 전통을 찾아내야 할 것’ 등으로 고정되어 있다.” 이러한 연구 조건 속에서 진행되는 불교연구는 강도높은 정치 이데올로기의 주문을 받지 않을 수 없으며 현대 중공학계가 채택하고 있는 불교의 교의적 분석 양식은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그것은 오늘날, 중국 철학(中國哲學)과 불교라는 거대한 집을 헐어 마르크스 레닌, 모택동주의의 간판을 걸어둔 기묘한 집을 지은 현대 중공의 인문과학이 안고 있는 고민과 정리해야 될 사상적 과제를 반영한다. 이와 같은 경향은 ‘중국의 마르크스주의는 고립(孤立)되었으며 그 문화 현상은 기형아(畸形兒)와 같다. …교조주의(敎條主義)와 전제 권력의 결합이 명실공히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구성하고 있다’5)고 피력하는 중공 언론의 논조에서도 엿보이며 ‘마르크스주의의 지도하에서만이 자유로운 의견 발표(爭嗚)가 허락된다면 이것을 어떻게 참다운 「백가쟁명(百家爭嗚)」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마르크스주의는 국가정치, 생활상의 하나의 지도원칙일 뿐 학술 연구의 지휘봉을 잡아서는 안되는 것이다’6)라는 최근의 「인민일보」(1986년 11월 6일) 기사가 이를 반증한다. 독실한 불교도였던 모친의 영향을 술회한 적이 있는7) 모택동은 1962년 호남성(湖南省)을 시찰하면서 ‘불교는 농민의 손에 이루어진 이상, 농민의 손에 의해 파괴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8) 일찌기 모택동은 그의 유명한 『호남농민운동 보고』(1927.3)에서 중국인들을 종속시키는 세 가지 지배적 권위로서 국가 체제(정치적 권위), 가문(가부장적 권위), 초자연적 체계(종교적 권위)를 들면서 우월적인 봉건적 권위를 타파해야 된다고 역설한 바 있다.9) 이와 같이 역대 중공 정권에 있어 불교는 봉건종법사회(封建宗法社會)의 잔재이며 국가적 무신론(無神論)을 이념의 축으로 하는 공산국가에서는 마땅히 타파되어야 할 계급 투쟁의 대상인 것이다. 그러면 현대 중공의 불교에 대한 기본적 인식은 무엇을 특징으로 하는가? 먼저 중공 철학계의 지도적인 불교 학자인 임계유(任繼愈) 등에 의해서 해석된 기본적인 불교 인식을 살펴보자.
(1)불교는 유심주의 종교철학 체계(唯心主義宗敎哲學體系)이며 다른 종교에 비해 철학성이 풍부하다. 불교의 유심주의는 신앙을 논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비교적 엄밀한 논리 분석이 담겨 있으며 변증법의 관점이 담겨있다. 여기에는 주체와 객체의 관계, 심(心)과 물(物)의 관계등의 철학적 근본 문제를 담고 있으며 매우 풍부한 사상 자료의 창고라고 할 수 있다.
(2)중국에 전래된 불교철학 사상은 구체적인 상황과 이론의 결합에 의한 것이므로 외국의 것이라고 할 수 없으며 중국 철학사의 중요 부분이며 고대 중국의 상부구조의 일부분이다. 위진(魏晋)에서 수당(隋唐)에 이르는 7~8백년 동안 중국의 통치 철학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누려왔던 것이다. 동시에 후대의 송명철학(宋明哲學)에 매우 큰 영향을 주었다. 불교의 발전과 그 영향을 살피지 않으면 중국 철학사의 전체적인 모습을 알 수 없다.
(3)중국의 유물론(唯物論)과 무신론(無神論)은 유심주의와 종교미신사상(宗敎迷信思想)과의 투쟁속에서 발전하여 왔으므로 유물주의와 무신론의 발전을 천명하기 위해서는 그 반대 측면을 연구해야하며 불교는 그 주요 대립면이다. 〔而佛敎則是其主要對立面〕 따라서 우리는 불교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유물주의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할 수 있는 것이다.
(4)불교철학은 장기간에 거쳐 축척되어온 유심주의 종교철학 체계이며 사상 문제를 논증하기 위한 방법은 비교적 정교하다. 현대 브르조아(資産階級) 유심주의 철학도 이와 유사하다. 불교에 대한 연구와 이해는 우리들에게 현대 유심주의 비판의 개발점을 줄 것이다.
(5)불교의 연구는 상부구조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기초로 해야한다. 따라서 불교의 중국전파를 볼 때도 하나의 사상이 이질적인 사회 경제적 기초와 어떻게 결합하여 어떤 작용을 일으키는가를 보아야 할 것이다. 불교철학의 연구에 있어서 우리는 역사유물주의(歷史唯物主義)의 기본관점을 공고(鞏固)히 유지해야할 것이다.10)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중공 학계는 중국의 전통적인 철학 종교, 문화에 끼친 불교의 영향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것은 ‘우량한 전통은 찾아내고 봉건주의는 비판한다〔發揚優良傳統,批判封建主義〕’라는 현대 중공의 문화 정책의 표치가 기본적으로 전제된 것이다.11) 그러므로 문제는 불교를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기본 원리인 역사유물주의(歷史唯物主義)의 주요 대립면으로 규정하고 있는 점이다. 중공은 불교를 포함한 주요 종교 사상에 대한 마르크스 레닌주의 이론의 적용 방침을 다음과 같이 강경하게 밝힌 적이 있다.
마르크스 레닌주의 정당(政黨)의 종교문제는 혁명의 발전과 건설 사업을 제1의 임무로 한다. 종교신도에 대한 사상 교육을 끊임없이 강화시킴으로써 종교의 생성(生成)을 근원적으로 소멸시키고 나아가서는 인민에 대한 종교의 영향력을 약화시킴으로써 종교의 소멸을 촉진시켜야 하는 것이다. 종교는 인민을 마비시키는 아편이다. 종교는 객관 세계에 대한 인간의 정확한 인식을 방해하며 인간의 생산성을 방해하며 계급투쟁과 과학 실천에 의한 사회 발전을 저해한다. 마르크스 레닌주의 정당의 세계관은 변종유물주의와 역사유물주의로서 종교적 유심주의 세계관과는 근본적으로 대립된다. 마르크스 레닌주의 정당은 무산계급(無産階級)의 세계관을 개조하며 인민 군중을 영도하여 혁명 투쟁을 진행시킴으로써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건설하여 사회적, 정신적 압박 아래서 인민의 해방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종교 방면의 방해자들과 필연적으로 조우할 수 밖에 없으며 종교적 의식 형태와 투쟁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12)
이상과 같은 정치 기초 위에서 행해지는 불교사상의 연구는 매우 제한적이며 정치이데올로기의 주문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3. 역사유물주의와 불교
임계유는 1981년 중국사회과학출판사(北京)에서 발행된 그의(主編) 『中國佛敎史』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리들은 변증유물주의(辯證唯物主義)와 역사유물주의(歷史唯物主義)를 전용(轉用) 하는 최신의 예리한 도구로서 불교사를 해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도구들은 역사의 짙은 안개 속을 뚫고 들어가 전인(前人)들이 보지 못했던 역사의 진상(眞相)을 볼 수 있었다. 역사의 발전에는 모두 원인과 결과가 있다. 그러나 원인과 결과에는 어떤 내재적 필연이, 어느 때는 표면적인 우연이 각종의 사회 현상과 분분히 뒤섞여 사람들이 쉽게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역사상의 중요한 인물은 역사의 발전에 관건적(關鍵的) 작용이 기착되어 있으며 이 점은 고금(古今)의 역사학자들이 모두 주의를 기울여 왔던 것이다. 인물과 사회의 관계는 그 사람이 속한 사회적 지위와 그가 살던 시대에 의해 제약되는 것이니 이것은 하나의 진리이며 마르크스주의만이 사람들에게 정확한 답변을 주고 있는 것이다.l3)
이상과 같이 중공의 불교 인식에 있어 기본 지침 역할을 하는 역사유물주의(歷史唯物主義, historischen Materialismus)란 무엇인가? F. 엥겔스는 「공상에서 과학으로의 사회주의 발전(Die Entwicklu-ng des Sozi-alismus von der utopie zurWissenschaft)」에서 ‘유물사관은 생산, 그리고 생산에 따르는 생산물의 교환이 온갖 사회 제도의 기초를 이룬다는 명제로부터 출발하여, 역사상 모든 사회에서 생산물의 분배라든가, 또 이와 함께 계급이나 신분으로의 사회 분열 등은 무엇이 어떻게 생산되며 그 생산물이 어떻게 교환되는가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명제로부터 출발한다’14)고 한다. 또한 스탈린은 ‘사
적유물론은 변증법적 유물론의 모든 명제를 사회 생활의 연구에까지 그 범위를 확대한 것이고 변증법적 유물론의 모든 명제를 사회 생활의 현상, 사회의 연구, 사회사 연구에 적용한 것이다’15)라고 설명한다.〔일반적으로 사적유물론(史的唯物論)이라고 불리우는 마르크스 • 레닌주의의 역사 이론을 중공에서는 「역사유물주의」라고 부르고 있다.〕「중국과학원 언어연구소 사전편집실」이 펴낸 『현대한어사전(現代漢語詞典)』의 해설에 의하면 역사유물주의란 ‘마르크스 • 엥겔스가 창시한 인류사 발전의 가장 일반적인 법칙이며 과학이다. 이것은 마르크시즘의 중요한 부분이며 프롤레타리아의 세계관이다. 역사유물주의란 사회 역사 발전에는 자체의 교유한 객관적 법칙이 있으며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결정하며 사회 인식은 또한 사회적 존재에 반작용하게 된다. 생산력과 생산 관계간의 모순적 경제 기초와 상부구조간의 모순은 모두 사회 발전의 기본 모순이다. 계급투쟁은 이러한 계급사회 발전의 기본 동력이며 인민 군중은 역사의 창조자라고 하는 것이 유물사관아인 것이다’16)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역사유물주의사관은 중공 학계의 불교사 해석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오직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政黨)만이 변증유물주의와 역사유물주의 세계관을 운용하고 종교 문제를 완전히 인식하고 종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확한 방법을 갖고 있다. 종교 문제의 정확한 인식과 처리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세계관과 유심주의(唯心主義) 세계관과의 투쟁과 관계가 있으며 착취계급에 대한 무산계급의 투쟁과도 관계가 있다. 또한 노동인민의 단결과도 관계가 있으므로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의 중요한 임무가 하나인 것이다.’17)고 말해진다. 이에따라 시도된 중공 학계의 불교 해석은 그 교의적 분석 양식에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지금부터 몇가지 문제점을 지적해 보기로 한다.
(1)중국불교사 연구의 초점
중공에서 행해지는 철학사(哲學史), 종교사(宗敎史) 연구에는 반드시 하나의 기본적 틀이 있다. 그것은 모든 역사를 유물주의(唯物主義)와 유심주의(唯心主義)의 투쟁사로 파악하는 것이다. 즉 ‘철학사는 인류의 인식이 발전하는 역사이며, 유물주의와 유심주의의 투쟁사이며 노예사회와 봉건사회가 구체적으로 표명하는 철학과 종교는 이성과 신앙의 투쟁사이다. 철학의 발전 과정은 한걸음 한걸음 종교적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이다’18)라는 기본 인식 아래서 역사 사실의 유물론적 분석과 정치 이론적 해설로 채워지는 철학사, 종교사가 씌여진다. 이와 같은 중공 학계의 기본 인식은 레닌의 『유물주의와 경험비판주의』강령을 그대로 답습한 것으로서 레닌은 ‘현대 철학은 당파성(黨派性)을 갖고 있으며 이천년 전의 철학과 마찬가지로 당파성을 갖고 있다. 박학함을 보여 주는 새로운 명칭, 혹은 극히 어리석고 조잡하게 비당파성을 가장하고 있더라도 실질적으로 서로 싸우는 당파는 유물주의와 유심주의인 것이다’19)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공식적인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임계유는 그가 책임편집〔主編〕한 『中國佛敎史』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유물주의 원리가 비록 간단한 문구로 되어 있으나 어떻게 중국불교사 연구에 정확히 전용시켜야 할 것인가의 문제는 연구, 실천을 거치면서 부단히 해결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우리들이 이야기해 온 것은 이제 겨우 시작된 모색의 한 경험이며 이론의 수준도 확실히 높지 않다. 결점과 착오가 적지 않은 것이다.’20)
(2)중공에 있어 불교란 무엇인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역사유물주의를 중국철학과 불교 연구에 적용시키려는 중공 학계의 시도에는 상부구조-토대라는 이분법(二分法)의 구분이 필연적으로 대두되며 불교는 상부구조의 한 부분으로서 정권 지주 계급의 정치 요구에 맞는 이론의 공급자라는 규정을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불교의 종교교의와 신학유심주의 이론은 인민을 마취시키는 아편의 연기〔佛敎宗敎敎義和神學唯心主義理論是麻醉人民的鴉片個〕’21)라는 규정을 내리고 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교조적인 노선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역사유물주의적 관점하에서의 중구불교사는 오직 ‘현실 세계에 대한 투쟁을 버리고 내적인 정신 세계에서 만족을 찾게 하는 반동 작용만을 분명히 해왔던 것이며〔是要人施弁現實世界的鬪爭, 只追求內心的精神世界的滿足, 它的反動作用是很淸楚的〕22) 인세(人世)와 천당을 단축시키는 유심주의적 노증으로서 인민의 투쟁의지를 마비시키는 부패한 봉건 통치에 복무해 왔던 것이다〔…的唯心主義的論證, 來縮短人世與天堂的距離, 用以麻痺人民的 鬪爭意志爲腐朽的封建統治服務〕’23)라는 비판적 용례가 지면을 다 채우고 있다. 이같은 경우 어느 하나의 ‘절대적 진실이 만물의 척도라고 하는 전제는 인류의 전(全) 역사가 허위의 집적과정(集積過程)이라는 터무니 없는 결론를 낳게 한다’24)는 A.샤프의 지적은 지극히 타당한 것이 되고 만다. 역사유물주의가 역사의 만능열쇠는 아닌 것이다. 중공 학계는 ‘역사유물주의야말로 마르크스•엥겔스가 창립한 인류사 발전의 가장 일반적인 법칙이며 과학이다’고 역사유물주의의 과학성을 주장하는데 마르크스주의에 있어 과학이나 법칙은 경험적 소재에 의해서 검증 가능한 것이 아니라 사회와 역사에 대한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의 비젼이 담긴 정치적 신념일 뿐인 것이다. 불교가 갖고 있는 엄청난 다양성과 끊임없는 자기 변혁의 역사는 이데올로기에 의한 어떠한 변혁이나 혁명에의 시도일지라도 하나의 과정으로 수용해 버리고 만다. 불교가 어느 특정한 사상적 도그마(dogma)만을 고집한다면 불교는 혁명이나 이데올로기에 의한 변혁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불교는 사상이나 철학적 문제가 그 문제를 발생시킨 조건이나 범주내에서 규정된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여 현실적인 불안과 모순을 초극해 나가는 인류의 가장 레디칼(Radicalism)한 가치 체계인 것이다. 어떠한 변화에의 추구도 곧 불변의 추구로 바뀌어 버린다는 것을 불교는 정확히 꿰뚫고 있는 것이다. 또한 기나긴 불교사가 갖는 다양한 사유 방식은 인간의 창조적 의지와 객관적 실천
의 결합에 의해서 부단히 확산되어지는 역동적 순응성을 갖고 있다.
(3)역사유물주의(歷史唯物主義)의 좌초
최근 중공 학계에서는 마르크스주의의 기념비적인 문건 「공산당선언」에 대한 비판까지 나오고 있으며25) ‘역사유물주의는 관념의 감옥(觀念的圈子)이며 사회주의 사회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결핍되어 있으며 날로 변화하는 세계에 적응할 수 있는 이론적 수준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청년논단」 1985년 2-3기는 역사유물주의의 당면 문제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현재 역사유물주의 범주의 표현 방식에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문제가 있다.
①역사유물주의는 이원론(二元論)적 관점이 잠재적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이론적 연구에 있어서도 오래 전의 것이며 실제로는 정체(停滯)되어 있다.
②역사유물주의는 사회주의사회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결핍되어 있으며 사회주의사회의 개혁에 필요한 책략과 사상을 제공하여 주지 못한다.
③역사유물주의는 완정(完整)하게 발전된 사회의 문화생태 계통을 이해 할 수 있는 관점이 결핍되어 있으며 모순의 분할 방식도 실질적으로는 ‘보편연계, 전면발전(普遍聯繫, 全面發展) ‘의 변증법적규칙에도 맞지 않는다.
④역사유물주의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연구의 결합을 저해하고 있으며 이것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일체화를 진행시키는데 가로놓여진 방해물이다.
⑤역사유물주의는 우리나라의 사회체제가 낙후(落後)된 중요한 이론적 근거의 하나이다.26)
역사유물주의의 기초로서 상부구조-토대의 작용, 반작용이라는 이분법적 이해는 모든 사회현상을 토대와 상부구조의 어느 한쪽을 절대적인 것으로 구분하는 경향을 낳을 수 밖에 없었으며 역사의 주체는 오직 역사유물주의의 법칙을 인식하고 유지하는 계급과 당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해 웅영오(熊暎梧) 교수는 1983년 상해사회과학원(上海社會科學院)의 「사회과학」지에 실린 발전적 시각에서 『자본론』을 연구하자는 논문에서 ‘현대의 일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은 생산력이라는 근본적인 사항을 제껴놓고 생산관계를 고립시켜 연구하고 상부구조의 경제 기초에 대한 작용을 과장함으로서 사회의 경제운동법칙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27)고 지적한다. 불교 사상을 마르크스•레닌주의가 표방하는 유물사관의 역사결정론적 도식에 꿰맞추어 해석하는 것은 애리프 덜리크의 지적과 같이 ‘강한 확신을 갖고 거의 20년 가까이 노력하였지만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들은 중국사의 자료나 사적유물론의 개념, 아니 더 흔히는 이 양지를 손상했을뿐, 중국사의 전개를 설명해 줄 포괄적인 형태를 발견해 내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마르크스주의의 모델을 유럽사에서 곧바로 중국사로 전용시킨 사람들은 그과정에서 마르크스주의 사회, 경제적 개념들을 중국사의 실체와 아무런 유기적 관계를 갖지 않는 명목상의 범주로 축소시키는 대가를 치렀거나 아니면 중국사의 발전상 가장 분명한 특성들을 은폐한 일반론에 그치고 말았던 것’28)과 같은 터무니없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4)불교신학 유심주의(佛敎神學唯心
主義)란?
불교의 무신론적 성격에 대한 명쾌한 사례는 초기 불교경전의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붓다는 모든 것은 자재천(自在天, Mahesvara)-힌두교의 세계창조신-의 뜻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만약 당신들의 주장대로라면 살생하는 것도 자재천의 뜻이고, 도둑질이나 음행이나 그릇된 소견을 갖는 것도 자재천의 뜻에 의한 것일 게다. 그렇다면 이일을 해서는 안 된다거나 이 일은 해야겠다는 의지도 노력도 소용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어떤 자제력도 필요없이 마음내키는대로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을 정당한 사문 혹은 바라문이라고 하지 않겠는가,29)고 유신론자(有神論者)들을 비판했었다는 기사가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이 불교는 모든 현상의 도덕적 책임원리를 어떤 절대적 신격(神格)에 의탁하지 않고 인간 스스로의 인식과 행동에서 물으려는 무신론(無神論)의 원리를 갖는다. 현재 중공 학계는 중국불교의 교의적 양식 설정에 ‘중국불교신학유심주의(中國佛敎神學唯心主義)’라는 용어를 채택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교의 양식 설정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1983년 북경에서 출판된 『중국불교사상자료선집(中國佛敎思想資料選集)』 제1권의 서문은 3쪽 정도인데 이 짧은 서문에서 ‘불교신학유심주의’라는 용어가 무려 14번이나 나타나고 있다.30) 그렇다면 이처럼 출현 빈도가 높은 ‘불교신학유심주의’라는 용어의 정체는 무엇인가? ‘신학유심주의’라는 용어는 중국 고유의 사상 양식을 나타내는 용어가 아니라 F. 엥겔스(Friedrich Engels,1820~1895)가 반종교(反宗敎) 선전을 한해 채택한 용어이며 기독교신학에 대한 반종교, 무신론 선전을 위한 비판 용례인 것이다.3l) 트레버. 링(T. Ling)에 의하면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말한 「종교」란 주로 19세기 중엽의 유럽의 종교를 지칭한다는 것’이며 ‘마르크스 등이 시도했던 종교 해석은 19세기 개신교적인 유럽에 대해서는 잘맞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오늘날 아시아에 있는 불교적 상황에는 들어맞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종교비판〉이란 19세기 서양기독교 비판이라고 주석을 달아야 마땅한 것’32)이라고 말한다. 불교경전의 도처에서 마음〔心〕의 문제와 깊이 결부되어 있는 표현으로 ‘만법유심(萬法唯心)’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등의 어구가 보이는데 이와 같은 표현들은 불교가 마음의 문제를 관념적, 선험적 실체로 고정시키고 있지 않은가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한다. 그러나 여기서 마음이란 연기(緣起,Pratityasamutpada)를 내부구조로 하고 있기 때문에 불교의 유심주의를 마음의 실체적인 범주화, 내지는 주관주의의 절대화로 보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효교정일(孝橋正一)은 ‘불교가 철학적으로 관념론의 한 형태라고 하는 판단도 대체로 기독교신학으로부터 유추된 것으로 불교에 대하여 철학적 관념론의 레텔을 붙이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서양의 철학에 있어 전통적으로 기본적인 과제 즉 의식과 존재와의 관계에서, 그 어느 것이 먼저인가 등으로 말하는 것에 대해서 불교는 애초부터 문제삼지 않았다’23)고 한다. 고(苦)에서부터의 해탈(解脫)이라는 불교의 명제는 역설적으로 자유를 향해 격동하는 인간 존재의 비극적 한계를 보여 주는 한편 철저하게 그 한계를 초극하려는 인간의 자발적 의지에서 불교는 출발한다. 특히 선(禪)불교는 인간의 지성(知性)에 투영된 이데올로기, 전통, 분자 이전의 행위하는 자아의 역할을 강조한다.34) 당대(唐代)의 선사(禪師) 임제(臨濟, *~867)는 말한다. ‘그대들이여!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진정한 견해를 깨닫는 것이며 이 삶을 자유롭게 누리는 것이다. 온갖 선전과 교시를 퍼트리는 귀신과 도깨비〔精鬼惑亂〕들에게 끄달림이 없이 그대로 살아 있는 평상(平常)의 참 나를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다’고 설파했듯이 선불교는 어떤 제한된 정치 형태나 도구적 이념을 매개하지 않는 인간의 돈오적(頓悟的)인 실천에 근거하는 것이다.
(5) ‘신학유심주의’ 극복을 위한 접근
중공 학계의 불교신학유심주의라는 의미 규정 속에는 연기적 의미가 탈락된 마음의 문제가 범하는 물적(物的) 토대없이 심리적 상상력만이 존재하는 주관적인 범주 착오를 반복하게 될 여지가 충분하다. 그것은 중공 학계가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교조적인 노선을 불교 해석에 그대로 전용시킨 결과 생겨난 미묘한 격의적(格義的) 오류로서, 이점은 마치 위진(魏晋)의 격의 불교가 공(空)과 무(無)를 선명히 구분하지 못했던 경우와 같다. 무(無)의 시상을 철학적 형식으로 확립한 노자(老子)는 ‘천하의 만물은 유(有)에서 생기고 유는 무(無)에서 생한다〔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 『老子』 제 40장〕’고 하여 무(無)를 만물 발생의 시원적(始原的) 실제로 서술하고 있으나 불교의 공(空)은 어떠한 ‘시원적(始原的)실체 관념’도 깨는(破) 변증법적 지양(止揚, Aufuhben)의 구조를 갖는다. 따라서 불교의 ‘마음’에 대한 역할 강조는 시원적(始原的) 실체(實体)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를 얽매고 있는 갖가지 사회구조적 불안(不安)과 고(苦)에 대한 바른 인식과 해탈지향적 실천을 목지(目指)하는 것이다. 나가르쥬나(Naga-rjuna)는 『대지도론」에서 설(說)한다.
‘선(禪)은 모든 불교적 실천〔Pramita〕의 근본이다. 선(禪)을 체득해야만 일체 중생을 애민히 여기는 대자비심(大慈悲心)이 생기며 선정(禪定)의 묘약(妙藥)이 있으므로 밖에서 부정(不淨)하고 고통스러운 외면적(外面的)인 약을 구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들은 마땅히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선정(禪定)의 내약(內藥)을 구하여 얻게 하리라’ 선(禪)에 있어 깨달음〔覺〕은 자비(慧悲)와 상즉(相卽)관계에 있음을 우리는 주의해야할 것이다.
‘신학유심주의’와 같은 마음의 선험적 실체화는 물(物)과 심(心)이라는 이분법적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깨달음’은 언젠가 실현되어져야 할 유토피아가 아니며 일상의 삶과 조금도 격리되어 있지 않다. ‘몰록 깨닫는다’는 어법(語法)으로 자주 말해지는 돈오(頓悟)는 일부에서 알고 있듯이 ‘체제의 전복이나 정권을 뒤집어 엎는 급격한 체제 변혁의 원리’가 아니라 어떠한 권력의 실체화, 유토피아니즘을 부정하며 인간의 인식과 행동을 역동적으로 발전시키려는 인간의 실천 자세 그 자체이다. 선불교가 갖고 있는 간명직재(簡明直裁)한 직관과 반권적(反權的) 가치 체계는 정체된 현상을 타개하기 위한 비판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지만 혁명과 같은 권력의 타도와 정권수립, 반혁명의 진압에 필요한 이데올로기가 아닌것이다. 불교의 마음 수행에서 깨달음은 어떤 정형화(定型化)된 사상의 범주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더욱 강화된 불교의 실천적 지표인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마음의 세계관을 전제로 하지 않은 채 마음의 선험적 실체화, 돈오(頓悟)의 이데올로기적 이해, 종교적 인식이 아닌 사회과학적 방법으로서 불교사상을 다룬다면, 그것은 현상적이며 표면적인 인식에 그치고 말 여지가 충분한 것이다. 어떠한 사회과학적 방법론도 인간의 고와 소외에 관한 유형별 분석과 예측은 될 수 있을지언정 고와 소외를 자각하고 극복하려는 인간을 이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공의 인문과학, 특히 철학은 ‘인간의 이해’에 관한 역사유물주의적 원리의 기계적 적용에서 벗어나려는 새로운 시각을 모색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인민일보」 1986년 11월 17일자는 그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는데 한 예를 들어 보기로 한다.
‘우리나라의 현행 철학체계와 범주, 원리와 내용, 그리고 논증 형식은 신 기술혁명 시대의 과학적 진보에서 뒤떨어져 있다. 또한 현대 자본주의와 현대 사회주의에도 모두 적용하기에 곤란하다. 그 주요 결점은 다음과 같다.
①우리나라의 현행 철학체계는 단순한 변혁과 획일적 가치만을 강조하는 인과결정론적 사유방식으로서 사물과 과정의 본질적 발전을 설명할 수 없다.
②우리나라의 현행 철학체계는 객관세계를 강조할 뿐 인간의 의지가 자연 역사과정에 전이(轉移)되어 주체적인 능동작용을 하는 것을 소홀히 함으로서 인성(人性), 인격(人格), 인간의 가치, 인간의 전인적 발전 인도주의(人道主義), 인간의 소외와 같은 철학의 근본 문제를 배제하고 있다. 철학의 이와같은 낙후상황은 반드시 개변(改變) 되어야 한다.35) 이와 같이 중공 학계 자체에서 제기되고 있는 철학의 개혁에 대한 요구는 사회주의적 이념과 체제 속에서도 여전히 남아 있는 인간의 소외에 대처하기 위한 철학의 인간화에 대한 요구일 것이다.
(6)중공 학계의 화엄(華嚴)사상 이해
중공 학계는 중국불교의 여러 종파에대해서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는데 주로 불교사상은 고대중국의 일부분으로서 통치계급의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복무한 반동이론(反動理論)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화엄종(華嚴宗)에 대해서는 그 비판의 도를 더하여 ‘당대(唐代)에 발전된 화엄사상은 당시의 부패한 반동적인 통치계급의 잔혹한 착취제도의 이론적 근거를 건립하였으며 당연히 통치계급의 환영을 받으면서 일종의 어용학파(御用學派)로서 발전하였다’36)고 한다. 중공 학계의 화엄종 비판은 화엄사상의 유심주의(唯心主義)적 특질 때문에 더욱 그 강도를 더하는 것으로〔一切宗敎都是唯物主義的 死敵宗敎哲學首先要全力反對客觀物質世界的 眞實性〕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중공의 역사유물주의적 불교 해석을 그대로 수용하는 일부 인사들은 화엄사상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는 실정이다.37) 왕권의 비호에 앞장 섰다는 화엄종의 특성은 비판되어질 수 있지만, 화엄사상에 대한 신랄한 비판은 화엄사상이 근본적으로 철학의 대상이 아닌 종교적 실천, 그것도 보현행원(普賢行願)과 같은 열렬한 종교적 실천을 호소하는 종교언어로 이루어진 경전의 사상이라는 사실을 도외시한 결과이다. 『중국사상통사(中國思想通史)」라는 잘 알려진 대표적 저작을 주편(主編)한 바 있는 후외려(候外盧)는 「신해혁명전자산계급 혁명파의 무신론사상의 역사적특질」〔辛亥革命前資産階級革命法無神論思想的歷史特点〕이라는 그의 논문〔신해혁명 오십주년 기념 논문집, 1961〕에서 근대중국의 혁명사상 가운데 불교의 주관적 관념론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는데38) 신해혁명전후의 혁명사상가로서 큰비중을 차지하는 강유위(康有爲), 담사동(潭嗣同), 장병린(章炳麟) 등은 모두 불교사상 특히 화엄과 유식(唯識)에 큰 영향을 받고 있음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하여 시마다 겐지(島田虔次)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오늘날의 중국에서는 이런 것은 모두 주관유심주의, 신비주의 시대의 비극적 모순의 표현으로 간주하고 궁극적으로는 이를 부정적인 면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렇게만 평가해도 좋을까? 중국근대혁명 사상사 제1편의 첫머리에 두는 것이 상례로 된 청조(淸朝)의 공자진(龔自珍)은 한편으로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무술정변의 사상적 지도자 아니 청말의 개혁, 혁명운동 그 자체에 직접 불을 당긴 강유위, 개혁파라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혁명사상가이며 나중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담사동, 그리고 신해혁명의 ‘삼존(三尊)’의 한 사람이며 철저한 민족혁명주의자였던 장병린 등과 같은 사람은 각각 천태, 화엄, 유식 등 그 으뜸으로 삼은 것은 다르지만 결국은 모두 불교에 조예가 깊었다. 불교와 급진적인 사상과의 관련에서 단순히 그 부정적인 면만이 아니고 그 긍정적인 면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39)
인용이 다소 길어졌지만 시마다 겐지의 지적대로 ‘불교가 가진 리얼리즘’ 또는 전통적인 교리적 권위나 교권체제를 돌파하는 선(禪)의 ‘실존주의적 「의지력」’에 유의하지 않은 채 인간의 인식과 행동을 유물론과 유심론적 패턴으로 간단히 구분해 버리는 도식적인 방법과 관점으로 화엄사상의 교의적 범주체계를 해석하는 경우; 불교사상특유의 인식론(認識論)적 구조가 그대로 전달되지 않는 양식과 내용의 양 측면에서 불일치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즉, 화엄사상의 유심주의는 관념론, 유심론이므로 반동 철학이라는 마르크스 레닌주의 저작의 관습적인 저작인용에 의한, 획일화 내지는 규격화된 이론의 틀으 벗어나지 못한다. 예를들어 임계유는 ‘화엄종의 이(理)와 사(事)는 고전철학 중의 현상과 본체 혹은 법칙과 관련이 있다. 단 실제상으로 화엄종은 근본적으로 독립된 의식밖의 객관세계는 모두 부인하기 때문에 오직 일심진여(一心眞如)의 현현이다’40)고 하는데 불교적인 유심주의를 위와 같이 실체적인 범주 내지는 관념의 극대화로 보게 될 경우 불교에 있어 마음의 문제는 물적(物的) 토대 없이 심리적 상상력만이 존재 한다는 범주의 착오를 피할 수 없게 된다. 불교는 유물론이나 유심론 내지는 관념론의 범주에 명확하게 고정시킬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의 문제에 대한 생동하는 자각이며 인식과 실천의 연동적(連動的)인 상호 결합을 통해 심화되고 발전하는 ‘움직이는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E. 콘제는 ‘불교는 지식의 획득을 목적으로 하거나 실재의 추구에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불교는 붓다의 가르침과 그 정신적 전통을 준수하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해탈에의 도(道)이다. (이것을) 굳이 유럽의 언어로 불교사상을 정의한다면 「불교는 철학으로서 심리학적 경향을 가진 변증법적 실용주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Buddhism,as a ‘philosphy’ could then bedescribed asa “dialectical pragmatism” with a “psychological” turn.」’41)고 말하고 있다. 화엄사상은 분명히 마음의 문제를 통해 세계와 인간의 삶을 조명한다. 마르크스주의의 해방지향적 관심의 체계와 불교신앙의 신념과 목적, 실천 또 넓게는 불교사상의 성향내지 체계는 일반적으로 흡사하게 보이지만42) 불교 인식론의 기초로서 이 마음은 어떤 이데올로기의 범주에 의해 고정되어 버리는 심리적 명제가 아니라 마음 ↔ 삶(totallife)이라는 ‘ 움직이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 움직이는 삶의 주체에 대한 총체적 실천을 종밀(宗密) 스님은 「직현심성(直顯心性)」이라고 불렀는데 그의 지적에는 인간의 존재에 관한 치밀한 사유와 행동양식이 담겨있다. 아무리 과학적인 인식일지라도 경직되고 실체적인 독단내에서의 상황 인식은 또 다름 이념의 경직화, 관념화라는 한계를 돌파할 수 없는 것이다. 화엄에서 강조되고 있는 이(理)와 사(事)의 교섭 관계는 고립적 실체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혁명이 데올로기는 본질상 형이상학적이며 관념의 실체적인 독단이다. 왜냐하면 변화에 대한 불변(不變)을 추구하는 자기 모순적 성격 때문이다.〕를 지양(止揚)하는 운동이며 초월〔破邪〕과 수용〔顯正〕이라는 역동적인 화쟁(和諍)의 당겨있는 실천이 것이다. 불교는 바로 이와 같은 특유의 해탈지향적解脫指向的 인 전제 아래서 신앙인가, 철학인가, 이론인가, 실천인가라는 가치 분할적 명제를 지양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불교사상과의 이론적 교량을 확보하려는 사회과학적 인식들은 먼저 이와 같은 불교의 시각 아래서 확인-분석되어야 할 것이다.
4. 현행 우리나라의 역사유물주의적 불교해석 수용에 나타난 문제
최근들어 불교계에서 민중불교 운동에 관여하고 있는 몇몇 운동가들에게는 역사유물주의적 관점에서 해석된 중공의 불교해석을 그대로 답습하는 경향이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여 익구는「민중불교 구현을 위한 몇가지 철학적 문제」라는 글에서 중공의 불교해석을 아무런 인용 표시 없이 그대로 옮겨 적고 있는데43) 이러한 상황에서는 ‘민중불교를 구현’한다는 명목도, 또한 무슨 ‘혁명’을 외칠 수 있는 바탕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한 「월간법회」(1987.8)에 실린 오 삼일의 글은 「민중불교철학을 위한 대승불교사상 비판」이라는 제목에 걸맞지 않게 임 계유 주편의 『중국철학사』 제3책(冊)의 「수당불교종파철학(隋唐佛敎宗法哲學)」을 그대로 자신의 논문인 양 내놓고 있는데 이와 같은 지적(知的) 불성실함으로는 「민중불교 구현」도 「민중불교철학의 창출」도 되지 않으며,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피땀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일일 뿐이다.
여 익구는 그의 「민중불교 구현을 위한 몇가지 철학적 문제」에서 역사유물주의의 관점을 유지하면서 ‘불교도 역시 상부구조의 하나로서 토대에 봉사해 왔기 때문에… (同 논문 p.55)발달 이후의 불교철학은 역시 당시의 봉건 지배 귀족에 맞는 주•객관적 관념철학으로 변신했기 때문(同 논문 p.55)’이라고 쓰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토대에 봉사해왔기 때문’ 또는 ‘토대에 봉사했던 봉건적 관념불교(同논문 p.77)’라는 그의 논지는 논문의 전체적인 논지에 어긋날 뿐 아니라 마르크스 레닌주의 이론의 기초인 ‘상부주조-토대’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 토대란 무엇인가? 신 인철교수는 ‘마르크스 이론의 이원적 구조를 가진 설명가설(說明假說)은 토대와 상부구조간의 관계에 있어서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경제결정론을 이끌어내고 있다’고 설명한다.44) 또한 이는 ‘사회의 기초, 생산관계의 총체 또는 사회의 경제적 구조인데 이것을 비유적으로 사회생활의 토대라 한다’45)는 설명에 비추어볼 때 여 익구는 용법상의 착오를 한 것같다. 왜냐하면 불교가 경제적 하부구조 즉 토대 〔생산제 관계의 총체는 사회의 경제적 구조를 결정한다. 이것이 실재적 토대이며 그 위에 하나의 법율적 정치적 상부구조 ein juristischer und politischeruberbau가 세워지고 그리고 이것에 (이실재적 토대에-필자) 일정한 사회적 의식 형태가 적응한다 entsprechen〕46)에 봉사해 왔다면 중공 학계의 불교 해석이나 그 해석을 충실히 따르는 국내의 민중불교 운동가들이 설명하는 것처럼 불교가 ‘객관적 관념론에 흘러 봉건 지배질서의 상부구조로 봉사하게(여 익구 同 논문 p.82」)’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토대에 봉사해 왔다면 오히려 노동대중이 역사의 주체가 되는 민중적 불교사관을 형성해 왔어야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힘들여 그런 운동을 하지 않아도 좋은 것이 아닌가? 이제는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기초 이론에 대해 좀더 깊이 연구해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다음으로 문제되는 것은 여 익구가 그의 논문에서 밝힌 불교사(佛敎史) 이해에 관한 것이다. 그는 ‘철학은 유물론과 관념론의 두 진영의 대립’이라는 레닌주의의 이론과 그것을 원용하고 있는 중공학계의 역사 이해를 그대로 모방하여 ‘계급사회에 대한 철저한 계급적 인식 위에 설 때에만 비로소 불교의 영구혁명 철학은 그 효용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쓰고 있다. (同 논문p.87) 그러나 필자가 본고에서 계속 언급해 왔듯이 불교사를 유물론과 유심론의 투쟁이라는 도식적인 역사관의 틀에 맞추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며 역사유물주의의 과학성이란 마르크스 레닌주의자들의 비젼이 담긴 정치적 신념일 뿐이다.47) 법성 스님은 ‘요사이 불교계 일각의 몇몇 운동가들은 불교를 간단히 신학적 범주로 처리함으로서 불교운동을 철저히 정치운동, 사회운동에 종속시켜야 한다는 식의 몰 주체한 불교운동 이론을 재기하고 있다’48)고 밝히고 있는데 필자는 법성 스님의 언명(言明)에 공감하는 바 크다. 그리고 여 익구가 내세우는 불교의 ‘영구혁명철학’이란 분명히 비(非)혁명적인 사고방식이다. 혁명이 영구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이미 우상(偶像)의 형이상학이며 사람을 관념에 얽어두는 이념적 독단일 뿐이다. 마르크스는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49)고 밝혔지만 ‘혁명이야말로 민중의 아편’인 것이다.
여 익구는 그의 논문의 부제에서 보이는 바와찰이 ‘초기 불교철학을 중심으로’ 그의 논리를 서술하고 있는데 ‘오늘날의 불교철학에 대한 재해석과 비판이 초기 불교사상을 중심축으로 해서 재해석되지 않는다면 불교의 변혁은 조금도 성취될 수 없을 것이다’(同 논문p.55)고 말한다. 따라서 ‘후기 불교는 봉건적 관념불교’(同 논문p.77)라는 공식을 만들어 놓고 있다. ‘초기 불교의 정신을 회복하자’는 전제는 좋지만 후기 불교를 봉건적 관념 불교라고 단정하는 것은 좀 성급하다. 초기 불교를 불교의 가장 이상적(理想的)인 형태로 파악함으로서 초기 불교는 순수, 후기 불교는 타락내지는 퇴화라는 도식적 불교사관은 불교사에 대한 불철저한 이해에서 빚어진 복고적인 불교사관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붓다께서 생존해 계셨던 불교의 황금 시대를 그리워 하는 것 이상의 아무것도 될 수 없는 것이다.50) 초기 불교(Primitive Buddhism)는 불교의 원구조(原構造)인 이상 불교사 발전 단계의 초기 단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붓다의 정신적 전통과 고유의 불교정신을 개화(開花)시킬 수 있다면 후기의 불교를 불교의 타락, 퇴화 형태라고 볼 명분이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불교의 장점은 그 자체의 사유구조를 스스로 부정할 수도 있는 반권(反權)적 가치 체계일 것이다. 수 많은 종파의 형성과 경전의 팽창은 불교가 인식과 설득을 통해 전파된 가르침이며 교단 내부의 다양한 가치체계를 끊임없이 수렴해 온 역사를 반증하는 것이다. 초기 불교의 정신을 회복하자는 외침은 엄중한 자기 비판을 통해 불교 본연의 진리성에 보다 가깝게 접근하려는 노력일 뿐이다. 이것은 마치 불교의 말법(末法)사상여 역설적으로 ‘정법(正法)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게 되는 동기를 부여하는 것과 같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중공 학계의 역사유물주의적 불교해석의 수용은 아직 시작되는 단계에 있다고 보여지지만 이미 중공 학계에서는 역사유물주의에 입각한 중국의 인문과학연구에 혹독한 비판이 속출하고 있다. 남들이 다 쓰고 버린 나머지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며 우리의 관점과 시각을 성숙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바른 시각의 정립과 부단한 노력-즉 사람, 돈, 이념의 정확한 운용이 필요할 것이다.
5. 중공 신(新) 불교의 평가와 전망
(1)현대 중공의 종교이해
중공은 다(多)종교 국가이다. 불교뿐만 아니라 도교, 이스람교, 천주교, 기독교가 있으며 각 종교는 매우 많은 교파와 신도를 갖고 있으며 종교문제는 중국의 사회문제 가운데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l949년의 중공 정부의 수립후 중공 정부는 헌법에 규정된 종교신앙의 자유에 대한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신앙과 불신앙의 자유를 모두 인정하는 신교중립(信敎中立)의 입장을 갖고 있다. 1978년의 중공 신헌법 제3장 제46조에서는 ‘공민(公民)은 종교신앙의 자유와 종교불신앙의 자유 및 무신론(無神論)을 선전하는 자유를 가진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 레닌주의적인 무신론(無神論)을 기본적 종교 인식으로 채택하고 있는 중공당으로서는 국가적 단결과 정치 발전의 한 과정으로서, 한 국면으로서 종교신앙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을 뿐이다. 일찌기 모택동은 그의 한 정치문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들은 행정명령을 사용하여 종교를 소멸시킬 수 없으며 종교의 불신앙(不信仰)을 강제할 수 없다. 또한 사람들의 유심주의를 강제로 버리게 할 수 없으며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강제로 따르도록 할 수 없는 것이다. 무릇 사상적 성질을 갖는 문제에 속하거나 인민 내부의 논쟁에 속하는 문제는 민주적 방법으로 해결해야 하며 토론, 비평의 방법을 써서 교육을 통한 해결 방법으로 설득시켜야지 강제적인 압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51) 모택동은 이상과 같은 발언을 통해 종교 정책의 신중한 인식을 강조한 바 있지만 중공 건국 직후인 1950~60년대에는 부단(不斷)한 계급투쟁과 봉건사회의 잔재를 정리하자는 원칙에서 종교에 대한 강력한 비판과 통제가 행해지고 있었다. 중국 사상사와 불교의 연구로 잘 알려진 A.라이트 교수는 1959년경 씌여진 그의 『중국사에 있어서의 불교(BUDDHISMIN CHINESE HISTORY)」라는 저서에서 ‘마르크스의 세속주의를 추종하는 소수의 전투주의자들이 중국을 석권한 오늘날 우리들은 조직 종교로서의 중국 불교(Chinese buddhismas an organized religion)가 최후의 황혼을 맞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의식(儀式), 신앙과 같은 종교 행위들이 사회 전반을 통해 근절(根絶) 되어가고 있으며 전통적으로 불교도들인 농민계층에서조차 불교, 도교와 같은 민족종교가 얼마나 오랫동안 잔존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던져준다’52)라는 비관적인 언급으로 그의 책을 끝맺고 있다. 실지로 1955년 홍콩에서 출판된 중공당의 불교 박해에 대한 고발적 문건(文件)으로 『중국 불교의 액운(中國佛敎的厄運)」이 있는데53) 이 책은 B6판 68쪽의 소책자로서 다음과 같은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머릿말(前言)
제1장 불교에 대한 중공의 견해〔中共對佛敎的看法〕
1) 중공의 종교관
2) 중공의 불교관
제2장 중공의 불교에 대한 정책〔中共對佛敎的政策〕
(갑) 공산주의와 불교 교의〔共産主義與佛敎敎義〕
(을) 불교의 현황에 대한 중공의 견해〔中共對佛敎現况的看法〕
(병) 승니에 대한 중공의 견해〔中共對僧尼的看法〕
제2장 중공의 불교에 대한 정책〔中共對佛敎的政策〕
(갑) 안무정책〔安撫政策〕
(을) 타격정책〔打擊政策〕
(병) 개조정책〔改造政策〕
(정) 통제정책〔控制政策〕
제3장 중공의 불교박해 사실〔中共迫害佛敎的事實〕
1) 사찰 재산의 몰수와 징발〔沒收 及徵用寺産〕
2) 불교 고적 문물의 파괴〔破壞佛敎古蹟文物〕
3) 불교 내부의 분열〔分化佛敎內部〕
4) 학습, 사상 개조〔學習-思想改造〕
5) 노동생산 운동〔勞動生産運動〕
6) 승니 의 강제 환속〔强迫僧尼還俗〕
7) 어용 불교 단체의 성립〔成立御用的佛敎團體〕
8) 신도의 정치 도구화〔迫使信徒作政治工具〕
제4장 중공에 대한 불교도의 반항〔佛敎徒對中共的反抗〕
결론
이와 같은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중공의 「인민일보」 「大公報」 등과 같은 권위있는 언론지의 불교 관계 기사를 그대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반공(反共)적 문건이라는 시각을 벗어나 1950년대의 중공당의 불교에 대한 정책을 자세하게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중국 혁명 직후(1949) 중공당은 ‘종교는 정신적인 해독을 수천만 노동인민에게 끼치고 있으며 인민의 사상을 마취시키는 착취계급의 정신적 무기로 이용되어 왔다’는 전형적인 종교 비판의 기치를 들면서 종교신앙의 자유 정책에도 교묘한 이중적 정책 구조를 움직이고 있었다. 즉 ‘공민(公民)은 종교신앙의 자유를 가진다’라는 중공 헌법의 내용 자체에 대한 약간의 개념해석이 따르는데54) 종교신앙의 자유가 인정된 공민(公民)이란 중국공산당의 영도 아래 단결하는 계층을 가리키며 공산당 영도를 따르지 않는 지주계급, 관료 자본계급은 공민에게 제외된 반혁명 세력을 의미한다. 인민 내부에서 적대적 기본 모순을 조장하는 반혁명 계층의 종교신앙은 종교 활동을 수단으로 하는 반혁명 활동이라고 규정되어 온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서 ‘종교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처리〔『正確認識和處理宗敎』〕’라는 규범적인 논문을 쓴 유양(游驤), 유준망(劉俊望)은 이렇게 말한다. ‘종교계에도 두 종류의 다른 성질을 가진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하나는 반동분자의 반인민(反人民) 반혁명의 문제인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들은 종교 공작에 두 가지의 다른 상황이 있음을 보아야 한다. 첫째는 인민 내부의 모순이며 둘째는 두 가지의 다른 상황이 있음을 보아야 한다. 첫째는 인민 내부의 모순이며 둘째는 적과 우리의 모순이다. 인민 내부의 모순에 대해서는 우리들은 반드시 종교신앙의 자유 정책을 견지한다. 그러나 적과 우리의 모순에 대처하기 위해서 종교의 껍질을 쓴 반혁명 분자〔披着宗敎外衣的反革命分子〕를 반드시 숙청함으로서 이두 가지 조건을 혼동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라는 종교신앙의 자유 정책에 대한 이중적 운용 구조를 밝히고 있다. 마르크스 레닌주의 세계관은 철저한 유물사관과 무신론을 기조로 하는 혁명의 논리를 바탕으로 한다. 그러므로 종교의 소멸은 필연적인 역사의 조건이며 이와 같은 종교의 소멸올 촉진하기 위해서는 ‘명소 인민 군중에 대한 마르크스 레닌주의, 과학지식과 무신론 선전 교육을 진행함으로서 인민 군중의 인식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고 역셜한다. 그럽에도 불구하고 중공에서의 종교, 특히 불교는 격변하는 중공의 정세 변화에 따라 조직 종교로서의 자율적 기능을 더욱 확대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55)
(2)앞으로의 전망
현재 중공 대륙에서 흘러 나오는 각종의 출판물에 의하면 1970~80년대에 이르러 중공의 종교 정책은 상당히 완화된 것으로 보인다. 예를들어 사찰 보수에 필요한 재원(財源)을 사찰의 기본 재산을 운용하여 마련하려는 승려들의 자본주의적 재산증식 사업까지 아무런 장애를 받지 않을 정도이다.56) 우리가 중국 불교의 미래를 낙관할 수 있는 것은 천 수백년간 중국인의 정신세계를 신앙, 예술, 문학, 도덕적 가치체계로서 다듬어 온 불교는 마르크스 레닌주의 혁명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폐불(廢佛)을 견뎌냈을 뿐 아니라 중국인들의 제자백가(諸子百家)식의 다양한 개성은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한정된 이데올로기에 더 이상 묶여 있기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 고유의 문화, 예술, 사상에 대한 이해와 전통의 유지, 회복의 한 수단으로서의 불교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 불교를 살펴 볼 때 중국 혁명 직후의 불교가 겪은 이질적인 체험과 수난을 훨씬 능가하는 국가적 박해를 중국 불교는 수 없이 겪어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삼무일종(三武一宗)의 폐불이라고 부르는 불교말살 정책인데 국가권력에 의한 참혹한 폐불로 인한 교단적, 경제적 수난은 불교도들에게 교단 붕괴의 무구조적(無構造的)인 상황에서 오는 뼈저린 사회적, 종교적 박탈감을 갖게 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의식은 오히려 ‘정법(正法)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반성과 자각으로서 더욱 토착화된 중국 불교 특유의 적응력을 키워왔던 중국 불교의 역사가 현대 중국 불교의 새로운 가능성을 예시하고 있다. 폐불의 수난에 맞선 불교의 한 역사적 예중으로 우리는 신행(信行, 540~594)의 삼계교(三階敎)57)를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향후 사회주의 중국에서 불교는 그 동안의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식 사회주의와 불교의 결합 내지는 새로운 방식으로의 변화를 통하여 신삼계교(新三階敎)라고 부를만한 새로운 형태의 불교를 창출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것은 오늘날 중공 대륙의 불교를 이끌고 있는 「중국 불교협회」58)의 새로운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