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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대운사 주지 주석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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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정영(시인) 2016년 02월 408호
부산 송정 바닷가에 카페 ‘쿠무다’가 있다. 산스크리트어로 ‘하얀 연꽃’이란 뜻이지만 일반인이 종교적 선입견을 갖지 않도록 그 색을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커피 향 가득하고 책이 수북하고 그림이 전시되고 음악이 있는 이곳은 2년 전에 주석 스님이 문을 열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사찰이란 부담감을 털어내줄 방법이 없을까, 더 가깝게 다가갈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복합문화공간을 생각하게 됐어요.”
‘쿠무다’는 카페이지만 그저 차만 마시는 곳이 아니라 문화를 나누는 곳이다. 누구라도 들어와 책을 보다가 법복을 입고 계신 스님에게 눈길이 가고 그러다가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러다가 걸음이 위층의 대운사 부산불교학당의 법당에까지 닿는 곳. 그러다 보니 종교라는
거대한 관념의 문턱이 사라졌다.

“쿠무다라는 공간이 법당으로 가는 다리 역할을 해주고 있어요. 여기에 포교당만 있었다면 지금처럼 많은 사람이 찾아오지는 않았을 거예요.”
주석 스님은 오래전에 함양의 오래된 절 대운사를 만났다. 부처님도 제대로 모셔져 있지 않은 그곳을 제대로 된 도량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의지로 불사를 하며 13년을 살았다. 그러나 아무리 잘 지어놓아도 산중에 있으니 찾는 이가 많지 않았다. 한국 불교가 산중 사찰의 이미지를 벗으려면 도심에서 현대인들에게 문화적으로 다가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넓고 거창한 법당이 필요한 게 아니라 한 평이라도 실용성이 높은 법당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자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불교를 제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쿠무다는 만들어졌다.

“카페라서 맺어지는 새로운 인연이 더 많아요.
어느 날은 수녀님들이 앉아 계시기도 하고, 교회 다니는 분들이 와서 제가 내려 드리는 커피도 마시고 제 손을 잡고 가기도 해요. 종교를 초월한 사교의 장이에요. 여행 온 외국인들이 카페에 와서 차 마시다가 저를 보고 법당에까지
따라오면 한국 불교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합장이나 명상도 가르쳐줘요.”

마음 힘든 젊은이들도 찾아온단다. 카페를 통해 발을 들이니 스스럼없이 스님 앞에 앉는단다.
그렇게 해서 매일 찾아와 108배를 하는 고등학생도 있단다. 사찰 음식이나 바리스타 강습을
듣다가 불자가 된 이도 많다. 그리고 멀리서 찾아오는 스님도 많다. 크고 거창한 공간은 아니지만 제 몫을 다해내는 ‘쿠무다’는 도심 문화 포교의 모델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젠 문 닫고 싶어도 못 닫아요. 쿠무다는 당연히 있어야 할 존재가 되어버렸어요. 사회적인 책임감이 있어요.”

‘쿠무다’에는 커피와 홍차, 그리고 주석 스님이 직접 만든 프랑스 디저트 마카롱과 에클레어가
있다. 스님은 바리스타와 티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리고 프랑스에 가서 직접 디저트 만드는 법을 배워 왔다. 관심이 있기도 했지만 모두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에 빠져드는 법은 없다. 어디에 머물든 본분은 수행자이기에.
“스님이 차와 떡이 아니라 커피와 마카롱을 주면 훨씬 더 친밀하게 느끼더라고요. 쿠무다라는 복합문화공간을 통해서 불교가 조금 더 현대적이고 대중적으로 인식되면 좋겠어요. 제 목표는 비불자 그리고 종교가 없는 사람들을 불자로 만드는 거예요.”

두 달에 한 번 북 콘서트도 열고 있다. 지금까지 정호승, 안도현, 문태준, 김연수를 비롯한 작가들을 초빙해 음악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카페 한쪽 공간에는 작은 갤러리가 있는데 그곳에서 전시를 하겠다는 작가들이 줄을 서있단다. 크게 흥행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차츰 문화공간이란 인식이 자리 잡아가는 것만으로도 주석 스님은 만족한다.

“문화에 대한 투자고 그것을 보급하는 사찰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해요.”
주석 스님은 이 시대의 사찰은 신도의 보시나 기부에 의존하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깊이 고민해야 할 현실적 문제다. 종교가 이제는 보시를 받는 것이 아니라 베풀어야 하는 시대이기에, 사찰도 제 힘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경제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카페 ‘쿠무다’가 포교와 함께 그런 역할을 해주길 바랐다. 그렇다고 해서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은 결코 아니다. 사실 ‘쿠무다’ 운영은 쉽지 않다. 경제적으로는 힘들지만 그것보다 더 큰 마음의 수익이 있기에 주석 스님은 오늘도 ‘쿠무다’를 이끌어갈 수 있단다.
수익이 나면 그것의 일정 부분은 모아진다. 복합문화대안학교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 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각 분야의 스님들이 문화 전반에 대한 것을 가르치며 함께 모여 사는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때론 종교를 초월한 문화적 인재를 양성해서 배출시키는 학교를 꿈꾼다. 송정에서 멀지 않은 기장에 현재 부지를 마련하고 설계도를 그려가는 중이다.

주석 스님은 10대에 속리산 법주사로 출가했다. 출가하면서도 학인으로 살면서도 전법을 하겠다거나 포교를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현시대를 살면서 꼭 해야 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경전 공부도 하고 수행도 하고 또 더 나아가서 전법도 해야 돼요. 나만 알고 있으면 독각이 되겠죠. 나만 알고 있으면 소승이 되겠죠. 큰 법석(法席)이 아니더라도 차 한 잔 마시면서 그 사람 근기에 맞는 법문을 해주는 게 제가 생각하는 전법이에요.”

아무리 좋은 경전이라고 해도 그것이 현실에서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데에 쓰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법. 그래서 주석 스님은 그 사람의 눈높이에 맞는 법문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햇빛을 비춰줄 테니 그 햇볕을 쬐라고 할 것이 아니라 불자들이 응답할 수 있는 법문을 하려고 한다. 거창하고 크게 떠벌리는 것보다 사부작사부작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주석스님은 포교를 하면서도 규모가 아닌 내실을 다지려는 것이다. 그런데 주석 스님은 왜 도심 포교의 전면에 문화를 내세웠을까. 왜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문화라는 통로를 두기로 한 것일까.

“우리가 어떤 예술에 감동받고 그것으로 어려운 고비를 넘길 때가 있잖아요. 저도 청소년 시기에 책을 보고 음악을 들으면서 마음의 위안을 삼았거든요. 때로는 어느 작가의 글 한 줄이 부처님 말씀이나 하나님 말씀보다 빨리 그리고 더 가까이 다가올 때가 있지요.”

종교와 예술이 함께했을 때 그것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각자의 가슴 안에
숨겨진 감성을 찾으며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스님은 카페에 책과 그림과 음악을 가득 채웠고 그것이 주석 스님의 생각대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젊은 연인이 손을 꼭 잡고 들어왔어요. 창가에 앉아서 커피를 시키고 책꽂이에 있는 책을 꺼내서 각자 서너 시간 동안 책을 읽더라고요.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그 모습이 예뻐서 한참을 바라보다가 생각했죠. 카페를 하길 참 잘했구나.”

불교방송국인 BTN에서 ‘세상만사’라는 방송도 하고 여러 매체에 칼럼도 연재하고 대한불교조계종 부산연합회 문화국장 소임도 맡고 있고 학교에서 강의도 하고, 무엇보다도 카페 ‘쿠무다’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있지만 주석 스님은그야말로 텅 비어져 행복하단다.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무엇에도 끄달리지 않으니 행복하단다.

“20대엔 머리로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고요에 앉아 혼자서 명상할 때, 진짜 행복해요. 수행자는 포교를 하든 학승이 되든 자기 점검과 수행을 통해서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걸 아주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어요.”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셔도 이미 알겠다. 주석
스님 얼굴만 봐도 단박에 알아버리겠다. 어떻게 살라는 것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