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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르네상스'를 꽃피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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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살며 - 장원 1996년 03월 169호
환경운동은 문화운동이다. 정치나 경제, 과학 또는 맹목적인 신앙만으로는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그야말로 우리들 삶의 양식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되는 생활 문화 운동이다. 단절과 속박 그리고 오염의 문화가 이제는 상호연결과 평등, 생명의 문화로 전환되어야 한다. 문예부흥으로 일컬어지는 첫 번째 르네상스에 대비해 이러한 생명문화, 대안 문화의 꽃핌을 \'그린 르네상스(綠色復興)\'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새로운 르네상스인 \'그린 르네상스\'는 인류가 잃어버린 녹색정서를 되찾아 녹색문명(Green Illiteracy)에서 깨어나는 것이요, 또한 생태계로부터 일탈逸脫하여 인간 중심적 삶을 살아온 인간들을 생태적으로 삶으로 복귀시키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환경적으로 건강하며 경제적으로 건전하고, 사회적으로 공평하며 문화적으로 고양된, 신과 인간과 자연이 하나된 평화로운 새 세상을 추구하고자 하는 기운과 열망들의 모임, 나아감 그리고 꽃핌이다.
그린 르네상스에 혁명은 이미 시작되었다. 요동하는 세계 질서의 새로운 주체로 불려지는 비정부 민간기구의 활동과 녹색 소비자 운동 같은 시민 스스로에 의한 삶의 양식의 변화 추구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자연과 인간과의 합일을 꾀하는 녹색 예술의 발현, 기계론적, 환원론적 그리고 인간 이익 우선적 과학관을 타파하는 신과학 운동의 태동, \'소박하게 살기운동(Voluntary Simplicity Movement)\'의 전개,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다운\' 철학과 간디의 \'스와라지 운동\', 한국의 \'물산장려운동\'과 청빈사상 등이 다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에고 중심적(ego-centric) 사고와 그에 바탕한 삶이 에코 중심적(eco-centric)으로 바뀌어 부흥하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지금 이십 세기 후반은 환경과 생태계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의 총체적 암흑기이다.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난 이후 지금과 같은 총체적 위기 상황은 실로 없었다. 위기 상황이 심각한 만큼 모든 분야에서의 자구적 노력도 차츰 활발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하나로 묶어 줄 선명한 기치와 구호가 바로 \'그린 르네상스\'이다. 사상적으로 \'그린 르네상스\'는 서구문명의 개화를 이끌어 낸 이원론(Dualism)을 극복해야 꽃 필 수 있다. 이원론은 정신과 물질, 자연과 인간을 비롯한 모든 것을 분리하였으며, 일단 분리한 것들 사이에는 담을 쌓아올려 상호 관계성을 용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린 르네상스\'의 구현에 서구의 사상이나 철학, 과학 그리고 그에 바탕한 현대문명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첨단과학의 결과인 정보화 시대는 우리 인류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정보화 시대는 아마도 우리 인류가 좀더 공정하고 정직한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며, 모든 차원에서의 협조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또한 영적으로 지적으로 성장해나가는 인간의 독특한 능력에 바탕한 창조성을 발휘할 기회를 넓혀 줄 것이기 때문이다. 서구적인 것의 무조건적 배척이 아니라 서구적인 것의 인간화와 창조적 변환을 통한 재구성을 통하여 \'그린 르네상스\'에 이바지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그린 르네상스, 이를 위해 기존의 현대문명은 단식할 수밖에 없다. 일만 년 전의 농업 혁명과 이백 년 전의 산업 혁명 그리고 첫 번째 르네상스가 정착되기까지는 세기적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우리는 불과 몇 십 년 안에 \'그린 르네상스\'를 완성시켜야 한다. 우리는 지구의 영속적 생명을 짧게 기간 안에 보장해야하는 마지막 세대인 것이다. 지구는 비상 사태이다. 오늘에 모든 것의 이름은 \'그린\' 하나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