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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과 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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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원철 1996년 03월 169호
눈앞에 나타난 한 현상의 비침에 대한 반응은 개인 개인의 체험 세계와 인식 구조에 의하여 결정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한 개인의 내면 세계 역시 자신이 살아온 환경과 추구하는 가치관 등이 어우러져서 모든 걸 나름대로 결정 짓기 마련이다. 배가 고팠을 때의 맨밥 한 그릇과 배부를 때의 찰밥 한 그릇이 전혀 다른 맛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또 동일한 현상에서 개인 개인의 느낌도 다르기 마련이다.
부정적으로 살든 긍정적으로 살든 그건 개개인의 고유권한이다. 사실 한 개인 속에는 부정적 가치관과 긍정적 가치관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다만 스스로의 취향에 따라 부정적으로 보기도 하고 긍정적으로 보기도 할뿐이다.
문제는 부정적 시각보다는 긍정적 시각이 더 엄청난 인내와 노력을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흔히 비판이라는 이름 아래 부정적인 사고를 \"의식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 합리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보다는 사실 긍정적인 사고를 하기 위해선 더욱 치열한 의식적인 개인 수행을 필요로 한다. 곧 부정적인 사고보다는 긍정적인 사고가 훨씬 정신적 차원이 높다는 얘기이다. 긍정적인 것과 \"무의식\"은 다르다. 긍정적인 사고를 \"무의식\"으로 간주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부정적 사고의 한 편린일 따름이다-물론 그야말로 아무 생각 없이 습관대로 살아가는 무의식적 삶은 논외로 하고.
육조혜능 선사가 법성사에 들르게 되었다. 그 때 마침 두 젊은 스님이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깃발을 보고는 한 스님은 \"깃발이 흔들린다\"라고 판단하였고, 또 다른 한 스님은 \"바람이 흔들린다\"라고 주장하였다. 한참 옥신각신하면서 서로 옳다고 우겨대고 있는 중이었다. 지나가는 노씨盧氏 행자에게 자기 주장에 서로 동조를 구하면서 앞뒤 사정을 이야기해 주었다. 이에 대하여 그는 \"바람이 흔들리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흔들리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두 스님의 마음이 흔들릴 뿐입니다\"라고 판결해 주었다. 두 스님은 한동안 서로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명판결임을 인정하고 논쟁을 그만두었다.
바람을 바람이라고 느끼고 판단하는 것은 내 마음이다. 깃발을 깃발이라고 보고 판단하는 것 또한 내 마음이다. 보는 것은 바람과 깃발이라는 인식 대상(六境)이 눈 또는 감촉이라는 인식 기관(六根)을 통하여 비추어진 상태에서 흔들림이라는 생각(六識)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곧 내 마음에 의하여 깃발이니 바람이니 흔들림이니 하는 인식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여기에서 깃발이 흔들리니, 바람이 흔들리니 하는 것은 그 사람의 개인 개인의 주관적 판단의 한 형태일 뿐이다.
정신도 가꾸고 길들이기 나름이다. 부정적으로 길들이고 가꾸면 부정적으로 길들어질 수밖에 없고 긍정적으로 길들이고 가꾸어 나가면 긍정적으로 길러질 수밖에 없다. 낙관적인 가치관은 낙천적인 삶을 낳기 마련이다. 부정적 가치관은 비판적 삶을 만들기 마련이다. 부정적인 삶보다는 긍정적인 삶이 더 불교적이다. 부정적 사고는 정신을 황폐화시켜 아름다운 꽃을 자라지 못하게 한다. 늘 사물을 긍정적인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스스로의 마음을 훈련시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