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 근본정신으로의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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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의 부처 - 장휘옥
1996년 03월 169호
일반적으로 소승불교와 대승불교는 처음부터 따로 구별되어 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법화경」, \'방편품\'에 \"오직 일승의 법만 있을 뿐, 둘도 없고 셋도 없다(唯有一乘法 無二無三)\"는 말이 있듯이 불교에는 소승, 대승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도 학자들 가운데는 스리랑카, 버어마, 타이 등 동남아시아의 불교는 소승불교이고 중국, 한국, 일본으로 전래된 불교는 대승불교라고 간단하게 말해 버리는 사람이 있다. 또 문헌상으로도 당나라 시대의 의정義 (635∼713)이 쓴 인도 여행기 「남해기귀내법전」등에 당시 인도의 불교 상황이 소승과 대승의 구별이 있는 것처럼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불교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잘못 인식한 것에서 비롯된 오해이다.
현재 동남아시아 지역의 불교는 석가모니가 설한 교설을 그대로 준수하고 실천해서 석가모니의 행적을 그대로 답습하려는 경건한 후계자들의 유파流派로서 이들 지역의 불교를, 존경하는 선배(thera, 長老)들을 통해 전승된(Vade)불교라는 의미에서 테라바다불교(Theravada-Buddhaism, 長老說佛敎)라 한다.
이 테라바다불교는 앞에서 설명했던 인도의 원시불교와 부파불교시대에 나타나던 경향으로서, 인도의 서북 지역 특히 카슈밀 지방에 뿌리를 내린 불교도들은 석가모니의 설법과 언행을 아함(agama, 聖敎)으로서 중히 여기고 그 교설대로 신봉하고 이해하고 해석하려 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의 이해와 해석이 다른 것은 허용하려 들지 않았으므로 날이 갈수록 폐쇄적인 전통주의자에 태도를 견지하였다. 더구나 이 유파의 사람들은 엄격한 학문적 불교를 형성하여 불타의 교설을 사상적으로 체계화하는 것에 큰 공헌을 하였으나, 번잡한 학문 연구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고 개인적으로 자신의 수행 완성에만 열중했으므로 사회 교화를 위한 종교적 활동을 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소승불교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러한 번잡한 철학적 경향에 대해 이것을 시정하고 출가, 재가의 구별 없이 성불을 설한 구도자 석가모니의 근본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혁신운동으로서 일어난 것이 대승불교운동이다.
전자가 교단주의, 출세간주의인 것에 견주어, 후자는 세속과 세간을 그대로 허용하는 재가 불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 따라서 전자는 석가모니가 설한 가르침 그대로를 금구金口의 교설로써 고집하는 경향이 있고, 후자는 석가모니 가르침의 본의本意는 그의 언설을 말 그대로 음성 그대로 규정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본의가 어디에 있는지에 중점을 두었다. 그리하여 대승의 사람들은 서로 협동하고 제휴하여 이전에는 거의 생각할 수 없었던 자타自他의 구제를 심각하게 논의했으며, 출가, 재가를 막론하고 불타와 같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음을 자각하고 스스로를 보살 곧 구도자라 부르며 자리, 이타의 완성자인 부처가 되기를 원했다.
이 운동은 기원전 1세기경에 부처님의 유골을 모신 불탑을 중심으로 부처님의 덕을 찬양하고 부처님의 힘으로 안심입명을 기원하던 열렬한 재가신자들을 모체로 뜻 있는 몇몇 출가자들 가운데 일부가 지도자가 되어 인도 각지에서 산발적으로 진행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것은 처음에는 획일적이지 못했지만 다른 여러 집단과 접촉, 합류해 가는 과정에서 대승운동의 주역을 맡은 출가자들이 부처님의 덕을 찬탄하는 새로운 경전을 만들어 교리를 정비해나갔으며, 그들은 새로운 불, 보살의 개념을 도입하여 석가모니가 직접 설한 형태를 취한 경전을 서술하였다. 이것이 대승경전이다.
이러한 대승경전에 대해, 대승불교의 모든 경전은 석가모니가 직접 설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이른바 \'대승비불설大乘非佛說\'이 대승경전 출현 뒤에 때때로 제기되어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이에 대승불교를 변호하는 사람들은 불佛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존재로 보고 그 초월불, 절대불의 가르침을 불교라 한다면 역사적 존재인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리하여 그들은 진실하고 참다운 가르침은 초월불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은 사람들을 통해 설해질 수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대승비불설\'을 극복하였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대승경전을 저술한 작자들의 선한 의도를 의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만들어진 초기의 대승경전은 불탑신앙을 설하고 불전佛前에서 참회, 예배하기를 권하며 보시 등의 이타행을 설했으나 운동이 전개됨에 따라 경전 그 자체의 공덕을 고양하고, 그 숭배를 설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는 사이에 대승불교는 독자적인 교리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켜 갔으며, 대승불교의 성립과 그 활약은 불교사를 내용적으로 풍부하게 끌어올렸을 뿐 아니라 불교를 세계의 종교로 대두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대승불교의 최대의 공적은, 연기緣起사상을 실천적으로 대성시켜 공사상과 자비의 실천으로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공사상은 단순한 무집착과 설명 원리로서의 연기사상을 좀더 광대한 세계관, 인간관으로 삼은 것으로서, 이 공空에 사는 사람들의 행동이 곧 무한한 자비이고, 공의 견해가 반야(불佛의 지혜)이며, 그 구현자가 불, 보살, 명왕明王, 천天 등이 되어 무수한 대승경전이 출현하게 되었다.
「대승열반경」에서는 대비천제大悲闡提라는 것을 설하는데, 이것에 따르면 대승불교의 보살들은 고통받는 중생들을 다 구제한 뒤에 성불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모든 중생을 다 구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므로 결국 대승불교의 보살들은 그들은 큰 자비심으로 인해 영원히 성불하기를 포기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여기에 대승불교의 근본정신이 있다.
인도에서 대승불교운동이 일어난지도 무려 이천여 년이나 지났다. 사상은 시대의 요청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다. 시대에 따른 사상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완고한 전 시대적 사상을 고집하려고 하는 맹목적인 태도는 교조주의의 도그마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불교는 불타의 근본정신에 입각한 이 시대의 불교다. 진정으로 불교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우리 시대의 신대승불교운동을 한 번쯤 생각해봐야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