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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노동자의 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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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6년 02월 168호
세상을 하직하는 사람들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와 노태우씨가 구속되고 재벌의 총수들이 줄줄이 검찰에 불려나오는 희대의 정치극으로 인해 사회의 모든 이목과 여론이 한 곳에 몰려 있는 듯하다.
신문을 펼쳐도 그렇고 방송을 통해 새 소식을 들으려해도 으레 머릿기사는 오, 육 공화국과 관련한 내용이기 십상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주변에서 몇 사람이 기가막힌 사연을 가슴에 안고 이승을 하직해도 그냥 스쳐가고 만다.
어려운 조건 속에서 작은 사업체를 이끌어가던 중소기업의 사장이 회사 부도를 막지 못해 자살을 한 사건도 몇 건 있었다. 잇달은 중소기업의 도산과 맞물려 이들의 죽음은 마침내 정부가 \'중소기업청\' 신설을 연구해 보겠다는 자세를 갖게 하였다.
또 난데없이 대중가수 몇 명이 죽은 일도 있다. 인기를 먹고 사는 직업을 갖고 있는 탓인지 이들의 잇달은 자살은 그런대로 관심을 끌기는 했으나 오래 가지는 못했다. 직업만큼 반짝이는 정도였다고나 할까.
지난해 12월 13일에는 경원대 학내 문제로 구속되어 제적된 장현구 씨가 분신 자살했고 이보다 앞서 노점상을 하던 이덕인씨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이어 15일에는 대우정밀에서 병역특례자로 일하다가 해고되고 수배의 지난한 삶을 꾸려왔던 조수원씨가 여의도 노총회관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노점상이나 학생 그리고 노동자의 죽음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런데도 중소기업인의 죽음이나 가수들의 죽음과는 달리 여타의 파장을 일으키지 못한 채 세상 사람들의 관심 밖에 방치되어 있다. 힘 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죽음\'의 정도에도 차이가 있는 것일까.
올해 1월12일 한국전력산하 한일병원지부 노조지원장 김시자씨가 \'어용노조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하였고 다음 날인 13일 사망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이어진 가난한 사람들의 죽음에도 아랑곳없는 정부와 사회의 냉담한 분위기는 기어이 여성 노동자의 분신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는 팔십년대 격동의 정치적 갈등을 겪었고, 그 갈등의 현장에서 젊은 청년들이 자신의 몸을 불 살라 사회를 바로잡자고 한 장면도 목격했다. \'열사\'라 불리는 이들의 염원은 군사 통치 시대를 종지부 찍게 하였고 나라의 민주화와 자주 통일의 힘찬 걸음을 채찍질하였던 \'동력\'으로 작용하였다.
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한 동안 뜸했던 분신과 자결이 최근에 들어 다시 잇고 있는 현실은 대단히 우려되는 상황을 예측하게 된다. 특히 올해 단체 협상이 고조되는 시점에 총선이 겹쳐 있어 김영삼 정부의 노동정책이 갖고 있는 한계에 댛 노동계의 반발이 전면화 되리라는 예상은 쉬이 알 수 있다. 따라서 조수원씨와 김시자씨의 자살은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니다. 그들의 죽음에는 한국노동계의 문제가 총체적으로 엮여 있으며 지금의 상태로 분신 자살이라는 비극이 연이을까 두렵다.

족쇄에 묶인 노동자
지난해 12월 18일 여의도에 있는 신한국당사 앞에서 백이십여 명의 노동자들이 쇠사슬로 자신들의 몸을 묶고 항의 농성을 하였다. 이들은 정부와 신한국당에 대해 노동자 탄압에 악용되고 있는 병역특례법의 개정, 병역특례 노동자 열한 명을 전원 제대 처리할 것, 병무청장의 파면, 오, 육공과 현정권에서 해고된 오천 여 명의 복직에 대한 대안을 제시할 것 들을 요구했다. 조수원씨의 죽음을 계기로 노동자에게 족쇄를 채우고 있는 병역특례법이 노동계의 주요 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물론 이 항의 농성은 오래 가지 못했다. 경찰의 강제 연행으로 농성 노동자 서른네 명이 잡혀갔다. 몸을 묶은 쇠사슬을 절단기로 끊어내고 끌고 가는 현상은 그야말로 한국 노동정책의 시계바늘은 여전히 칠십년대를 가리키고 있을 뿐이었다.
병역특례법은 한국의 건강한 보통 남성들에게 들씌워진 강제 의무인 국방의 의무에 따라 일정한 나이가 되면 무조건 입대하게 되어 있는 현실에서 군복무 대신 산업 현장에서 근무하는 조건으로 입대를 면제하는 제도를 입법화한 것이다. 그런데 입대를 면제하는 조건 가운데 일정한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해고가 될 경우 즉각 입대해야 한다는 조항에 묶여 병역특례 노동자들은 노예와 같은 강제 노동을 감수해야 한다.
산업현장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해야 하는 기간에서 단 하루라도 모자라면 그 즉시 군에 입대하여 고스란히 군복무 기간을 다 채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병역 기피자가 되어 수배되어 버린다.
조수원씨는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조씨가 중학교 다닐 무렵 아버지는 삼십 년의 광부 생활 끝에 진폐증에 걸려 광부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돈을 벌어야 했던 조씨는 기계공고를 졸업하자마자 학교의 추천으로 방위산업체인 대우정밀에 들어갔다. 집안을 생각할 때 군복무 대신 공장에서 계속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점이 있어 기쁜 마음으로 공장에 다녔다. 팔십육년 일월부터 구십일년 초까지 열심히 히 일을 했다. 구십일년 초부터 회사측은 노조에 대한 탄압을 시작하여 마침내 조합 간부들을 고소 고발하고 압수 수색과 연이은 노조원에 대한 구속 등이 있었다. 이에 항의 농성하던 노동자를 해산시키기 위해 공권력이 투입되어 노조 임원에 대한 구속과 해고로 조씨와 동료들은 쫓겨나게 되었다. 이런 사연으로 조씨는 해고됨과 동시에 군입대 소집자가 되었고 뒤늦게 군에 갈 수 없는 형편이다 보니 수배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오 년 동안 수배생활을 하면서 정부와 국회 그리고 병무청에 청원도 했고, 단식 농성도 했다. 이 과정에서 군복무특례 기간이 오 년에서 삼 년으로 단축되는 법개정이 있었으나 조씨의 경우 그 이전에 해고되어 군입대 소집자가 되었다는 이유로 이 개정의 혜택을 입지 못했다. 조씨는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병역특례법이 개정되어 수배자의 신분에서 벗어나고 아울러 노동자를 묶고 있는 현실이 개선되길 바랐으나 결국 수포로 돌아가자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었다.

여전한 노동정책
국제노동기구(ILO)는 한국의노동정책이 국제 관례를 무시하고 있다는 점을 수차례 한국 정부에 보내왔다. 특히 제삼자금지 조항이나 복수노조의 불허 등은 가장 대표적인 조항으로써 국제적인 비판을 받고 있다. 세계화니 이십일세기를 지향하는 신한국이니 하지만 실제로는 구태의연한 정책으로 인해 국제적인 망신을 사고 있는 것이다.
한일병원 노조위원장 김시자씨가 분신자살한 배경도 이렇게 낡은 노동정책과 그 동안의 관례가 작용하고 있다. 김씨의 주장에는 우리가 오래 전부터 익히 보아온 요구 사항이 고스란히 되살아나고 있다. \"어용노조 즉각 퇴진\", \"정부의 공공기관 노조 전임자 수 축소 지시 철회\", \"민주적 성향의 지부장에 대한 징계가 부당\" 하다는 김씨의 주장은 우리의 노동 현실이 어디에 있냐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두 노동자의 죽음에는 노동정책은 제자리 걸음, 아니 뒷걸음치고 있기 때문이다.
팔십칠년 유월항쟁 이후 노동자 총파업 등으로 정부와 자본가의 노동정책이 전향적으로 개선되는 듯했으나 구십년대 들어 그 사정은 차츰 나빠지고 있다. 기업의 경쟁력을 높힌다는 이유로 인원을 감축하는가 하면 임금도 거의 동결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노조에 대한 탄압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으며 해고자 복직 문제도 답보 상태에 있든지 아니면 아예 쟁의의 대상으로 삼지 못하게 하고 있다.
최근 재벌들은 경영 혁신을 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자신들의 자식들에게 기업을 물려 주는 \'세습\'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러면서 이들은 세련된 재벌의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해 새로운 노무관리를 도입하고 있다. 엘지그룹의 경우, 각 계열회사의 상회를 바꾸면서 \'정도경영\'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으나 십여 년 전부터 해고된 노동자를 단 한 명도 복직시키지 않는 \'비정도경영\'을 실현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깨달음의 사회화\'를 실천하는 종단은 거의 수수방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히려 병역특례 노동자들이 총무원에 법개정을 위한 지원을 요구하였으나 총무원 문사부 실무자에게 일임하는 수준에서 그쳤다. 불교계의 단체 가운데 현재 노동운동을 지원하는 단체가 거의 전무하다는 현실도 안타깝기만 하다. 과거 팔십년대의 성과마저 제대로 잇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올 봄에 노동 현장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아직은 미지수이나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중시하고 있다면 이번 노동자의 죽음을 그냥 넘기는 안일한 자세만큼은 시정되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