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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생활 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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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대 - 무아 1996년 02월 168호
동안거 결제중이라 온 산중이 정진 분위기로 가득하다. 해제 방학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번 방학에는 은사 스님이 청주에 새로 절을 지어 부처님을 모시고 점안식을 해서 도반스님들과 함께 불사를 도왔다. 스님 혼자 손수 공양을 지어 먹으면서 아주 힘들게 이루어낸 불사이다. 점안식 날 많은 스님들이 참석하였다. 법당에서 점안식 전에 부처님을 감싸고 있던 흰종이 고깔이 벗겨지면서 자비로운 미소를 머금은 부처님이 모습을 드러낼 때는 감회가 새로웠다. 대중 스님들의 도움으로 행사를 무사히 마치고, 모두 돌아간 뒤 혼자 남아 적막감에 싸여 보낸 며칠은 망상의 시간이었고 해인사가 그리운 시간이었다. 가야산이 그립고 마애불이 그리웠다. 지난 해 초봄 해인강원 치문반에 들어와서 대중스님들과 함꼐 지낸 시간은 조금은 힘든 시간이었다. 세속에서 나름대로 자유롭게 생활하면서 익혀 왔던 사고와 습관이 출가 수행자가 갖추어야 할 생각과 습관과의 괴리에서 오는 어려움이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옛말이 있듯이 인간의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출가가 대체로 늦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오랜 세월 세속에서 익혀 온 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다. 초발심 출가자가 특히 신경써야 할 것은 나쁜 습관을 고쳐서 부처님이 행하였던 부처님의 행을 배우도록 하는 일일 것이다. 이런저런 망상 속에서 지나온 이 년 가까운 시간을 돌아보면 지금까지 대중스님과 함께 한 생활이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참으로 보람된 생활이었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되지 않아 겨우내 얼어 붙었던 계곡물도 따사로운 햇살에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진달래가 가야산을 물들이는 봄이었다. 해인사에서 산마루 몇 굽이 지나서 수도암까지 여덟 시간쯤 걸리는 산행은 꽉 짜여진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서 오는 속박감을 풀어주고 새싹을 틔워 생기를 돋우는 봄철만큼이나 대중 생활에 활기를 불어 넣어 주어 좋았다. 유정물이 설하고 무정물이 설하는 대자연의 법문을 들을 수 있어 우리의 마음은 그만큼 넉넉해진다. 강원의 동아리 가운데 하나인 다경원에서는 토요일 저녁마다 대중스님들의 소담스러운 이야기와 차향이 어우러진 다예와 삼월 삼짇날과 구월 구일 중양절에 가야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마애부처님에게 차 공양을 올리는 헌다식이 있다. 많은 스님과 대구, 마산, 부산, 진주, 전주, 경주 등 차를 애호하는 회원들과 참석하여 행사를 치른다. 하안거 결제철에는 치문, 사집, 사교, 대교반, 선방 스님이 함께 어우러진 단오절 체육대회가 있어 대중 화합과 수행하는데 필요한 체력을 길러 주어서 좋다. 또 하안거 해제철인 늦가을쯤에는 전국승가대학 학인 체육대회가 있다. 평상시에는 일주일 가운데 수요일과 토요일 오후에 산행을 하거나 또는 체육 울력이 있어 좁은 공간에서 많은 대중이 함께 생활하는데서 오는 긴장이나 답답함을 해소시켜 주지만, 체육대회를 대비해 체육 울력이 많아지면 오히려 더 힘들어진다, 전승련 학인대회는 두 해 전에는 동국대학교 경주 캠퍼스에서, 지난해는 김천 직지사에서 이틀 동안 치루었다. 이 행사 참가는 서예, 역경대회, 설법, 운동 시합 따위도 중요하지만 다른 강원에 있는 도반들을 만날 수 있는 나들이라는 점에서 대중스님들 마음이 다소 들뜨기도 한다. 해인강원은 대중이 많다보니 능력있는 이도 많아 여러 종목에서 우승을 차지해 다른 강원의 부러움을 사기도 하고 대중스님들은 이런저런 즐거웠던 일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러나 강원에 돌아오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게 모두 수행자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 정진에 힘을 쏟는다. 하안거와 동안거 결제철에는 일 주일 동안 하루 스물네 시간 눕지도 않고 불식하면서 하는 용맹정진은 다리의 통증과 졸음으로 인해 정말 힘들다. 하지만 용맹정진이 끝나는 날 매화산 등산은 참으로 상쾌함을 안겨 주는 강원 생활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가야산을 아름답게 수놓은 단풍이 그 고운 옷 벗어 놓기가 못내 아쉬워 마지막 힘을 다할 때쯤에는 월동 준비를 위해서 문, 파초, 메주, 김장 울력이 있다. 생주이멸生住離滅의 자연법칙에 따라 한여름 그 넓은 잎으로 대적광전 앞마당에 드리웠던 파초도 잎이 시들면서 대중스님들이 관광객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고운 새옷을 두툼하게 입혀 추위를 막아 준다. 일년 열두 달 대중스님의 식단에 약방의 감초처럼 필요한 된장은 대중스님이 체육복으로 갈아 입고 삶은 콩을 운반하는 스님, 큰 함지에 넣고 밟는 스님, 메주 틀에 넣고 모양을 만드는 스님, 만들어진 메주를 그물망에 넣어 매다는 스님으로 역할을 분담하여 수고한 결과로 빚어진다. 스님네나 일반인이나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필수적인 반찬이 김치이다. 이틀 동안 하는 김장 울력 때가 되면 종무소 스님, 강주 스님, 주지 스님까지 나온다. 이 때도 저마다 역할이 주어진다. 밭에서 배추를 뽑아서 차로 운반하는 조, 철파이프와 비닐천으로 큰 방만한 세척통을 세 개 만드는 조, 배추를 칼로 자르는 조, 커다란 소금통에 담그었다가 임시로 만든 큰 세척통에 소금으로 저리는 조로 나누어 일을 한다. 한 켠에서는 모닥불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언 손을 녹여 주고 선배 스님들의 구수한 이야기도 간간이 들려온다. 메주 울력이나 김장 울력은 세속에서 구경은 했어도 실제로 해 보지 않았는데 독신 생활을 하는 출가 수행자에게는 힘들다기보다는 좋은 산 경험이다. 백 명이 넘는 대중이 함께 예불하고 공양하고, 강의 받고, 울력하고, 같이 잠자는 대중 생활은 즐거운 일도 많지만 갈등도 많다. 대중이 많다 보니 질서가 필요하며, 특히 윗반과 아랫반의 위계 질서가 아주 뚜렷한 생활 속에서 아랫반이 겪는 육체적 마음적 고통은 꽤나 크다.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함께 공부하던 도반스님들이 삼십여 명 가까이 다른 곳으로 간 것을 보면 대중 생활이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대중 생활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탐, 진, 치, 삼독심을 제거할 것을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 이 삼독심을 제거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 주는 것이 대중 처소에서 대중들과 함께 하는 생활이다. 편안하고자 하는 마음, 무엇인지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해 탐심이 일어나고, 대중들로 인하여 화내는 마음이 일어나는 일이 많으며, 탐내고 화내는 마음으로 인하여 어리석음이 있으니 이러한 삼독심은 혼자 생활하는 곳에서는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나의 행동 하나하나에 일어나는 그 마음 잘 살펴서 다스려 나가는 게 공부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행자 시절 귀에 못이 박힐 만큼 자주 듣던 하심下心하라는 말도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퇴색되고 한반씩 올라가 조사 어록이나 경전을 배우면서 쌓여가는 지식만큼이나 아상도 함께 높아가는 것 같아 걱정이다. 아상我相이란 놈이 어느 새 큰 방을 차지하고 앉아서 행패를 부리게 되면 아상을 없애야 할 수행자로서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人生難得 佛法難逢이라 하지 않았는가. 사람 몸 받기도 어렵고 더욱이 사람 몸 받아도 부처님법 만나기는 더욱 어려운데 불법 만나 출가까지 하여 좋은 도량에서 지내고 있으니 부처님의 은혜, 스승의 은혜, 시주의 은혜, 부모님의 은혜, 국가의 은혜에 고마울 뿐이다. 아만심, 삼독심, 나쁜 습 등이 모두를 잘 살펴 털끝만큼이라도 수행을 소홀히 하지 않기를 스스로 경책해 본다. 그래서 일체중생이 모두 성불하기를 발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