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난득人生難得 불법난봉佛法難逢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 몸을 받기도 힘들고 불법을 만나기는 더 어렵다는 말입니다. 선인들께서 법을 위하여 몸을 잊어버린 위법망구寫法忘軀의 정신으로 살아온 까닭에 오늘 우리가 이렇게 불법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고인들의 이러한 수행 정신을 늘 마음 깊이 새겨 귀감으로 삼아 닮아 가기를 애써야 할 것입니다. 제대로 된 법을 만나려고 이렇게 우리가 늘 발원하고 정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법을 위하여 눈 속에서 용맹정진을 하면서 팔까지 끊는 입설단비立雪斷臂 신섬으로 초조 달마대사의 법을 이은 2조 혜가대사의 이야기는 공부 길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를 우리에게 몸소 보여 주고 있습니다. 혜가스님의 본디 법명은 신광神光으로 그때에 제자백가서를 다 읽은 학문과 지혜가 세상에서 으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의 한구석이 뭔가 미진하여 달마스님이 서역에서 중국으로 와 소림굴에서 면벽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습니다. 그리하여 그 분을 스승으로 모시고자 하였으나 달마스님은 힐끗 한번 돌아볼 뿐 한마디도해 주지 않고 다시 벽관壁觀을 할 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큰 눈이 내리는데 신광은 뜰의 섬돌에 서 있으면서 구도심을 키웠습니다. 새벽이 되니 눈이 그 무릎 위까지 쌓였습니다. 그런데도 삼매에 빠진 채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달마스님은 그제서야 뒤를 돌아보면서 한마디 건넸습니다.
“오랫동안 눈 속에 서 있으면서 무엇을 구하느냐?”
이에 신광은 울면서 말하였습니다.
“스님께서 감로의 문을 여시어 뭇 중생을 널리 제도해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달마스님은 말하였습니다.
“모든 부처님의 위 없는 묘도妙道는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애써 정진하면서, 어려운 행도 실천해 내고 참기 어려운 것을 참아낼 수 있다 하여도 이르기 힘든 것이다. 그대는 지금 경박한 마음으로 진승眞乘을 바라니 부질없이 수고롭기만 할 뿐이다.”
신광은 꾸지람을 듣고는 이에 칼로 팔을 끊어 스님 앞에 바치니 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부처님이 도를 구할 때에도 법을 위해 몸을 잊으셨다. 그대도 지금 팔을 끊었으니 도를 구하는 태도가 되었다. 그래, 무엇 때문에 나를 찾아왔느냐?”
그리하여 제자로 받아들였고 그 유명한 달마해사의 ‘안심법문安心法門’이 나오게 됩니다.
“저의 마음이 편안하질 않습니다. 스님께서 마음을 편안케 해 주십시오.”
“그 마음을 가져오너라. 편안케 해 주겠다.”
“마음을 찾아도 끝내 찾을 수 없습니다.”
“이미 그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주었노라.”
이 한마디 말에 마음이 열렸고 또 법을 전하게 되어 드디어 2조 혜가 대사가 되었습니다.
2조께서 법을 얻은 것은 지극한 신심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기연機緣이 이미 익어 바늘 끝으로 겨자씨를 뚫은 것이지 반드시 팔을 끊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겉 모습만 흉내내면서 칼 가는 데만 힘을 쏟습니다. 법을 전하는 데 반드시 팔을 끊어야만 한다면 모든 조사가 온전한 팔이 없었을 것입니다. 부처를 이루는 데 반드시 팔을 태워야 한다면 모든 성인은 살아서 밥을 먹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끊고 태워야 할 것은 번뇌의 팔을 끊고 무명의 팔을 태워야 할 것입니다.
‘선요禪要’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원元나라의 고봉 원묘高峰原妙스님은 임안臨安의 용수산龍鬚山에 구 년 동안 살면서 싸리를 엮어 조그마한 암자를 만들고 겨울이나 여름이나 누더기 한 벌로만 지냈습니다. 뒷날 천목산天木山 서암西嚴의 바위 동굴 속에서 세로는 한 발 남짓 가로는 그 절반인 배 모양의 조그마한 방을 꾸미고는 현판을 사관死關 곧 죽음의 관문이라고 써 붙였습니다. 위에서는 빗물이 새고 바닥은 축축하였으며 바람과 비가 몰아쳤습니다. 공양물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사람을 끊고서 의복과 쓸 것 까지도 물리치며 몸을 씻지도 않고 수염도 깎지 않았습니다. 깨진 항아리를 솥으로 하여 이틀에 한 끼만 먹고 지내면서도 편안하게 여겼습니다. 동굴은 사다리가 없으면 오르지 못하므로 사다리를 치워버리고 모든 인연을 멀리하였습니다. 스님이 젊었을 때 정자사爭慧寺에서 삼 년 결사를 했는데 어느 날 부형이 선사를 찾아왔으나 의연하게 돌아보지도 아니하던 철저한 벌침 수행자였습니다.
그렇지만 꼭 만나고 싶어하는 납자가 있으면 세 가지 질문을 던져서 대답할 때만이 만나 주었습니다.
이를 삼관화두三關話頭라고 합니다.
“크게 깨친 사람은 본디 생사를 초탈하는 것인데 무엇 때문에 명근命根을 끊지 못하는가?”
“부처와 조사의 공안은 다만 하나의 도리인데 무엇 때문에 밝힘과 밝히지 못함이 있는가?”
“대 수행인은 마땅히 부처의 행을 따라야 하는데 무엇 때문에 비니毘尼 곧 계율을 지키지 않는가?”
그리하여 이르는 말이 계합되지 않으면 마침내 문을 닫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나 주지 아니하였습니다. 공부 이외의 일로는 절대로 사람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공부라고 하는 것은 지독하게 할 때만이 뭔가를 이룰 수 있는 것이지 그냥 세월만 보내면서 방석만 닳게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자명초원慧明楚圖스님은 분양冷陽스님 회상에서 공부하였습니다. 분양스님이 계신 하동 지방은 추위가 극심해서 겨울 결제 때에는 모두 잘 가려고 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자명스님은 도에만 뜻을 두어 그 회상으로 가서 아침 저녁으로 정진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밤에 좌선을 하다가 졸음이 오면 송곳으로 자선을 찌르면서 이렇게 탄식을 하였습니다.
“옛 사람은 생사의 큰일을 위해서 먹지도 자지도 않았다는데, 나는 어떤 사람이길래 이렇게 방종하여 살아서는 시대에 도움이 못 되고 죽어서도 후세에 남길 이름이 없으리니 이는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다”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다잡고는 하였습니다.
신라 때 혜통慧通스님은 선무외善無畏 화상이 인도로부터 중국에 들어와 법을 편다는 말을 듣고 천리 민리를 멀다 않고 신라에서 중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러나 가서 제자로 받아줄 것을 아무리 간청해도 거절 당하였습니다. 그렇게 삼년이나 온갖 노력을 다하여 머물기를 청하였으나 시종 거절을 당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큰 쇠화로에다가 숯불을 가득 담아 그것을 머리에 이고 선무외 스님 앞에 나아가 서 있었습니다. 화로가 달아서 머리가 익어 터지니 소리가 크게 났습니다.
이에 무외스님은 무슨 소리인가 하고 나와서 보고는 놀라 화로를 급히 빼앗아 내려놓고는
“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혜통스님이 대답하였습니다.
“제가 법을 배우려고 천리만리를 멀다 않고 왔습니다. 만일에 법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면 몸이 불에 타서 날아가면 갔지 죽은 송장으로는 절대로 나갈 수 없습니다.”
무외스님은 혜통스님의 이러한 기개를 인정하여 터진 곳을 손으로 만져 아물게 하고 법을 배울 것을 승낙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안목이 열리게 되었고 신라로 돌아와 많은 사람을 교화하였습니다.
그 뒤 머리가 나은 곳에 ‘왕王’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세상 사람들은 왕화상이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용맹정진을 제대로 하는 것이 바로 두타행입니다. 용맹정진을 할 때에는 혜가스님의 입설단비의 구도심으로, 고봉스님께서 사관으로 들어간 마음으로, 지명스님이 송곳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찌르는 마음으로, 혜통화상이 ‘여구두연如救頭燃’하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공부를 하여, 생사의 일대사를 밝히고 불조의 혜명을 이어가는 자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마하가섭은 오로지 두타행만을 하면서 늙도록 쉬지를 않는구나”하시면서도 가섭존자가 자꾸 쇠잔해지는 것을 가없이 여겨 “그대는 오랫동안 각고의 수행을 해 왔으니 좀 편히 지내도록 하라”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가섭이 여전히 고행을 하자 매우 가상히 여기면서 칭찬을 하였습니다.
“그대가 일체 중생의 의지처가 되어 줄 수 있다면 나 여래가 이 세상에 있는 것과 다름이 없으리라. 두타행을 그대처럼 하는 자가 있으면 나의 법이 머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없어질 것이다. 그대는 진실로 대법을 짊어질 만하구나.”
그리하여 가섭 존자는 부처님의 법을 전해 받고는 인도 땅의 초조가 됩니다.
목주스님에게 어떤 중이 물었습니다.
“가섭 존자께서 두타행을 하던 그 옷을 누가 입겠습니까?”
“여러 해를 털고 털어 옷자락이 찢어졌고 남루한 한쪽이 구름 따라 날아갔느니라.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사실 부처님 뒤로 인도와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참선법을 공부하는 사람을 가섭의 제자라고 부릅니다. 혜능스님 뒤 조종육엽祖宗六葉으로 법손이 번성하였는데, 석두스님은 호남에 도사리고 살았고 마조스님은 강서에 버티고서 법을 전하였으니 그로부터 백화百花가 난만爛漫하게 됩니다.
가섭 존자의 옷은 이 때부터 천 구멍 만 조각이 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오늘산승에 바늘 하나 실 한올로 완전히 꿰매려 합니다.
“불자를 들어서 꿰매는 것이 옳습니까? 주장자를 들어서 꿰매는 것이 옳습니까?”
악(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