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찾아 첫걸음 내디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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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가족 모임을 다녀와서 - 주중식
1996년 02월 168호
「해인」지에서 \'두번째 해인 가족 모임\'을 알리는 광고를 보고, 산 속에 몸과 마음을 턱 내려 놓고 이삼 일 쉬다 오면 기운이 되살아 날 것 같았다. 마침 방학 때라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참가할 수 있겠다 싶어서 전화로 신청하였다.
12월 23일 오후 4시, 보경당(회관) 아래쪽 빈터에 차를 세워두고 모이는 방으로 갔다. 팔구십 평은 되어 보이는 너를 방에는 벌써 먼저 온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면서 들어서는데, 머리카락이 허연 어른 한 분이 큰절로 옆 사람들과 함께 내게 인사를 건넨다, 뜨끔하였다.
옿 5시에 저녁 공양을 하고, 6시에 큰법당에서 예불을 드렸다. 해인사에 여러번 왔지만 절을 하면서 예불을 드리기는 처음이었다. 염불도 모르고 절하는 법도 몰라서 맨 뒷줄에 서서 그저 앞 사람을 따라하기만 했다.
예불 마치고 다시 방으로 내려 왔다. 기획실장 일을 맡은 무착스님이 불교개혁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세상이 다 변해도 언제까지나 그 모습 그대로일 것 같은 불교도 시대에 맞게 변하지 않을 수 없나 보다.
산사에 밤이 깊어 10시가 되었는데, 홍익요가연구원장 이승용 선생님 지도만 있어서 굳어 있던 몸이 시원해지고 기운이 솟았다. 시범 보이는 분들의 몸이 마음대로 굽혀지고 휘어지는 부드러운 동작을 보면서, 몸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음도 꾸준히 갈고 닦지 않으면 굳어지고 말겠구나 싶었다.
저녁 무렵부터 눈발이 날리더니 사방이 하얗다. 이제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이다. 이제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이다. 남자들만 저 윗쪽 운동장 옆에 있는 화장원으로 가서 자야 했다. 모포 한 장 덮고 자리에 누웠다.
다음날 새벽, 3시에 일어나도록 되어 있는데 이십 분 전에 벌써 다 일어났다. 중학생인 듯한 아이도 꾸물대지 않고 바로 일어났다. 밤에 보일러가 멈췄는지 방이 사람한테 따스한 기운을 얻어간 셈이다. 덜덜덜 떨며 따뜻하고 너른 방으로 내려왔다.
범종이 가야산 골짜기를 울리면, 해인사는 이렇게 깜깜한 새벽부터 깨어있다. 세수하고 바로 예불, 백팔참회를 하는 시간이다. 예불을 드릴 때 다른 분들은 염불을 하는데 나는 천수경을 펴놓고 우리말로 풀어놓은 내용을 눈으로 따라 읽어나갔다. 문득 염불을 우리말로 고쳐서 하면 뜻을 모르고 하기보다는 그 가르침이 마음속에 자리잡기가 좋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여덟 번 절을 하면서 한없이 낮아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나\'라는 것도 붙들고 있지 않아야 한다고 속으로 되내었다. 원을 세우면 그걸 이루는 날도 오겠지.
요가하고, 아침 공양을 했다. 3시에 일어나서 네 시간이 넘게 움직였으니 새벽밥이 아니라 집에서는 점심밥을 먹는 것이나 다름없다. 공양시간에도 말 없이 고마운 마음으로 먹으라고 \'묵언\'이란 말을 큼직하게 써붙여 놓은 게 보인다.
공양을 하고 모두들 방에만 들어가 앉는다. 바깥이 몹시 춥고 눈바람이 윙윙 온절을 휩싸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해인가족 모임에는 백 명만 모이기로 되어 있었으나, 다른 수련회와 날짜가 겹쳐지게 되어 할 수 없이 함께 지내게 되었다. 「해인」편집장 진각스님이 출석을 확인하느라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부르는 동안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으니 소리가 가물가물 멀어진다. 졸다가 내 이름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버쩍 돌아왔다.
앞으로 다가올 일은 아무도 모른다든가, 진각스님이 서로 상대방을 생각해주어야 분위기가 좋아진다며 수련 모임에서 지켜야 할 점을 일러주고 난 뒤에 다음 시작 시간 십오 분쯤 남겨놓고 갑자기 나를 불러내어 이야기를 좀 하라고 부탁하였다. 나는 할 말을 미리 준비하지도 않았고, 또 나서도 좋을 자리가 아니라서 \'할 말이 없습니다\'하고 피하려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집에서나 학교에서 아이를 가르치고 키워 온 이야기를 몇 마디 하였다. 입 안이 바싹 말라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언젠가 죽음 앞에 다다랐을 때,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허둥대고 있을 내 모습을 보는 듯해 아찔하였다.
마치는 시간까지 살아가는 이야기, 법문, 강의 따위를 푸짐하게 들었다. 서로 다른 이야기이면서 하나로 꿰어지는 그 숱한 이야기들을 거기에 모인 사람들만 듣는다는 게 정말 아까웠다.
민희식 선생님 강의 가운데 프랑스 이야기를 들으면선, 마음이 메마른 사람들 이제 그 사람들이 동양의 정신 세계를 찾아오지 않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본질을 벗어난 종교의 가르침이 이 땅 위에 그대로 버티고 있는 동안에는 인류의 소망인 평화를 이룩하기 어렵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이철수 선생님 판화 이야기에서는 「해인」지에 실을 판화를 만들려고 이 절, 저 절을 찾아서 가보면 생각지도 않았던 대상이 마치 말을 하는 것처럼 눈에 들어오더라는 대목이 마음에 들어왔다. 그리고 기독교와 불교가 이철수 선생님 속에서는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하였다. 나도 그렇다.
김운경 선생님이 쓴 \'옥이 이모\' 가 오래 인기를 끌면서 지난해 12월 말에 끝났다. 그러나 작가 김운경 선생님은 그 극 속에 재미와 삶의 향기를 채우려고 가정을 떠나다시피 하면서 밤을 낮처럼 살았다고 숨은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그 자리에 가보지 않고서 그 괴로움. 그 기쁨을 내 어찌 할 수 있으랴.
장휘옥 선생님은 「해인」지에 연재되는 글을 읽고 참 쉽게 강의를 잘 해 주는 분이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시간에 빠져서 아쉬운 마음이 크다.
마치는 날 오전에 여연스님의 \'차문화 이야기\'는 잔잔하고 포근한 느낌을 받으며 들었다. GNP가 높아 갈수록 겉은 고상하고 세련되어 보이지만 가슴은 차갑기만 하다. 차가운 그것으로 무얼 할 거냐? 우리 어머니들이 아궁이에 불때서 밥해 먹을 때 얼마나 고달팠겠는가. 그러나 아궁이 앞에 앉아 생각하면서 살아간 그 삶이 따뜻한 삶이 아니었을까 하고 묻는다. 그러면서 차를 다려 마시는 것은 자연의 리듬에 따라 천천히 사는 길이요, 따뜻하고 감동이 있는 삶으로 되찾아가는 길이라고 하였다. 차가 주는 이로움이 이렇게나 큰 것인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점심공양을 마치고 다시 넓은 방에 모여 앉았다. 방장 혜암스님 법문을 듣기 위해서다.
\"불교 방송국에서 새해 맞이 특별 대담 방송을 녹화해 갔소. 그 때 이야기한 걸 조금씩 맛만 보여 주지요. 서울까지 갈 사람들 바쁘지요.\"
이렇게 시작하면서 맨 처음에 한 부탁이 \'이 똥자루한테 속지 마시오\'였다.
\"내 마음이 들어서 나를 해치고 괴롭히고 있다. 그러므로 내 마음 알고, 깨닫고, 지키고, 닦는 것이 문제이다. 그것도 내 스스로 깨달음이 불법이다.\"
\"한집안 식구란 전생에 원수 관계였거나 빚진 관계였다. 그러므로 식구들한테 다 갚아 주고 도와 주어야 한다. 애먹이는 깡패 같은 자식 보고 겉으로는 안 그렇더라도 \'우리 집에 보물 하나 있다\' 하고 고마워해야 한다.\"
\"나를 모르고 밥 도둑 먹여 살린 죄가 부모 백 명 죽인 죄보다 더 큰 죄!(큰소리로)끝!\" 하고는 법문을 마쳤다. 이 때 우리는 깜짝 놀랐으나 한바탕 웃었다.
이박삼일 동안 비록 쉴 틈 없이 꽉 짜인 수련이었으나, 「해인」지에 글을 쓴 분들과 만나는 시간이 있었고, 내 마음을 찾아 첫걸음을 내디딘 시간이 되어서 얼마쯤 기운이 되살아난다. 이제 남은 공부는 \'내 언제 똥자루 아닌 자리에서 볼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