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태백산 정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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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의 풍광과 진경 - 이호신
1996년 02월 168호
예부터 오지의 땅으로 불리우는 강원도 정선 땅을 답사할 때면, 참으로 다양한 풍광을 보게 되어 그 감흥이 여러 파장으로 물결쳐 온다. 정선에 와서는 으레 \'정선 아라리\'의 모태가 되고 있는 여량리의 아우라지강 쪽빛 강물과 뱃사공을 만났다. 다음으로 정암사를 거쳐 영월의 장릉과 단종의 한이 서린 청령포에서 그 원혼이 떠도는 강물을 바라보고는 동해로 빠져 나가곤 했다. 아우라지강의 쪽빛이 먼 타지역인 양 이내 고한읍을 지날 때면 막장이 폐광된 을씨년스러운 풍경이 차창을 지나간다. 건물과 나무와 물이 온통 검댕이를 뒤집어 쓰고 있는 광경 속에서 이 곳에서 자란 아무개는 본디 물빛이 검은 줄로만 알았다고 할 정도이다. 이 상극의 물빛을 뒤로 하고 고한읍 끝에 들어와 마주치는 태백산 자락에 \'태백산 정암사\' 일주문이 길손을 반긴다. 정암사는 태백산이 품고 있는 천의봉, 금대봉, 은대봉 아랫자락에 둥지를 틀었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언제 탄가루를 보았더냐는 듯이 정갈하고 고요한 작은 뜨락이 마음을 안정시켜 준다. 정암사는 무엇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오대 적멸보궁 가운데 하나이다. 신라의 대국통大國統인 자장 율사가 절을 세우고 입적할 때까지 머물던 곳이다. 거븝 둘러 볼수록 낮은 담장은 작은 절집 규모를 끌어 당기면서도 펼쳐 주고, 가람의 구조와 조형이 소담스럽다. 적멸궁에서 참배하고 수마노탑으로 오르는 돌계단 길은 언제나 한 줄기 바람이 등을 밀기라도 하듯이 고즈넉한 시간으로 몰입된다. 자장 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지고 온 마노석으로 만든 것이라 전해지는 \'수마노탑\'은 이 절의 특별한 상징이요, 그 터는 절집의 전경이 살펴지는 곳이기도 하다. 전체 높이가 구 미터에 이르는 칠층모전석탑으로 각층 지붕돌 모서리마다 달린 풍경은 마치 치렁치렁한 귀걸이를 떠올리게 한다. 정암사는 사계의 풍광 속에서도 주로 늦가을과 한겨울에 내 발길이 잦았다. 태백산 단풍과 설경은 천혜의 배경과 아름다운 절비으로 이내 그림이 되어 내게 달려들곤 했다. 수마노탑과 적멸궁은 천의봉의 끝자락 발목에 있고, 앞산에 펼쳐진 금대봉과 물길 너머 은대봉이 감싸고 앉은 빈터에 가람이 둥지를 틀었다. 수마노탑에서 내려보면, 금대봉 아래로 일주문과 육화정사, 관음전, 범종각, 요사, 그리고 관음전 뒤쪽의 삼성각과 자장각이 저마다 동선을 그려가며 낮은 돌담 사이로 펼쳐진다. 늦가을에 붉은 융단을 드리운 듯한 금대봉을 마주보며 수마노탑에서 듣는 풍경소리는 환희의 극치이고, 한겨울 오한의 바람 속에서는 적멸의 마음자리를 찾을 수 있다. 정암사와의 인연은 해마다 여러 갈래로 빚어졌지만, 무엇보다도 그림이 되게 한 인연으로 정암사에 머물던 홍선스님을 빼놓을 수 없다. 문화유산 답사 때의 인연으로 자주 만난 스님은 마침 정암사를 그리려고 지난 사생첩을 펴놓고 고민하던 때에 극적으로 우리 집을 방문하여 큰 도움을 받았다. 설경으로 그릴 참이었는데 눈이 덮힌 산사라 형태가 분명하지 않고 방향도 헷갈리는 터에 스님이 우연히 집에 전화를 해서 하룻밤을 묵어 갔다. 이 눈 푸른 스님은 새날을 여는 종지기로서 오랫동안 정암사를 지켜오다가 지난해 \'정암사 사적기\'를 다시 정리하여 주지 스님과 함께 「태백산 정암사」단행본을 펴내고는 절을 떠났다. 그 동안의 뜻을 실천하고 뒷날 눈 밝은 이들이 나서길 바라며 지나온 내력과 인연을 적어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살아서 천 년, 죽어서도 천 년을 간다느 주목 산지이며 열목어가 서식한다는 천혜의 태백산 정암사는 오지의 땅, 탄가루 날리는 땅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역설의 터가 되고 있다. 따라서 이 같은 역사와 환경 속에서 하나의 위안이자 경배지요, 귀의처로서 정암사는 모두에게 사랑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