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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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의 염화미소 - 성전
1996년 02월 168호
동네 한 쪽에 커다란 일제식 목조 건물이 있었다. 화단이 길게 이어져 있고 그 가운데 비둘기집 같은 하얀 백엽상이 있었다. 넓은 운동장 한 켠에 철제 그네가 있고 그 아래 맑은 물이 흐르는 샘이 있었다. 우리들의 학교였다.
세상이 온통 즐겁기만 하던 우리들의 유년. 우리들 유년의 꿈과 난만한 함성을 그대로 머금은 채 세월의 의미와는 무관하게 우리의 국민학교는 그렇게 예쁘게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의 국민학교 시절에는 모든 것이 드물었다. 운동화가 드물었고 책가방이 그랬었다. 면에서 멀리 떨어진 아이들의 가방은 괴나리봇짐 같은 책보가 전부였다. 흑백 사진 속의 독립군들처럼 그들은 그것을 등에서 어깨 너머 허리까지 끈을 길게 메어 있고 굽은 산길을 돌고 돌아 먼 길을 걸어 오곤 했었다.
그들의 학교 도착 시간은 언제나 늦었다. 수업이 시작되기 바로 전이나 수업이 막 시작한 직후였다.
선생님은 그들을 나무라지 않았다. 먼 길을 숨가쁘게 걸어 온 그들의 노고를 이해할 것일까? 선생님은 그들이 늦은 이유를 묻지도 않았고, 그 아이들 역시 늦은 이유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다만 겸연쩍게 선생님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자기 자리에 돌아와 앉을 뿐이었다. 수업은 중단 없이 계속되었다. 자리에 와 앉은 아이들의 몸에서는 찬 기운이 불거져 나왔다. 어쩌면 시린 하늘의 한 쪽이 그들의 손등에 내려 앉은 것만 같이 그들이 뿜어 내는 찬 기운은 오랫동안 교실 주변을 맴돌았다.
점심 시간. 강냉이와 커다란 감자를 서꺼어 만든 밥이 그들 도시락의 전부였다. 다만 몇 명만이 하얀 이밥의 도시락을 싸왔을 뿐 대개는 잡곡류의 밥이 주종을 이루었다. 쌀밥을 싸 가지고 다니던 나는 내 옆의 국화와 언제나 도시락을 바꾸어 먹었다. 국화의 도시락은 늘 맛있었다. 면에서도 먼 오지에 사는 국화는 감자의 속살처럼 맑은 심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이상한 노래도 많이 알고 있었다. 도시락을 까먹고 난 뒤면 볕이 잘 드는 양지녘에 쪼그리고 앉아 나는 그에게서 노래를 배우고는 했다.
교실에 나로를 피우기는 했지만 낡은 목조 건물에는 언제나 바람이 스며들었다. 곱은 손을 입김으로 녹이며 판서를 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수업을 듣던 우리가 기다린 것은 수업이 파하는 종소리였다. 무슨 공습경보처럼 다급하게 울리던 종소리. 우리는 그 종소리가 울리면 누구나 할 것 없이 환호성을 질렀다.
수업이 끝난 뒤 아무도 바로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집이 먼 오지의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산언덕을 뛰어내리며 칼싸움을 하고 그것에 지치면 신작로에서 말타기를 했다. 우리들이 내뿜는 동심의 함성에 얼어 붙은 겨울의 거리와 산야는 언제나 따뜻이 녹아 내렸다.
창에 성에가 시린 겨울을 그리고 있다. 겨울의 창턱에 걸터 앉아 나 그날의 겨울을 떠올린다.
춥고 아리던 그 시절이 따뜻하게 밀려 온다. 만일 내게 회귀의 시간이 허락된다면 국민학교 시절로 달려가 유년의 풍경 속에 몸을 담그고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