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늦은 시각이어서인지, 흰색으로 산뜻하게 단장된 복지관은 텅 비어 있었다. 무료 진료 일정을 끝낸 의사들이 막 복지관을 떠났고, 복지관 현황에 관한 자료 수집차 들른 사람을 응대하던 직원도 퇴근을 서두르던 참이었다. 그러나 건물은 아직 새물 냄새가 가시지 않았으되, 입구의 벽에는 각종 프로그램을 안내하는 알림장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월보와 직업 안내 책자 따위가 수북히 꽂혀 있어 의욕적인 복지관 운영의 면을 엿보이게 했다.
일층에는 사무실과 진료실, 대기실 및 직업 훈련실, 시청각 교육실 등을 위한 다목적 강의실, 어린이방 보모실, 노인 무료 급식소 따위가 있고, 이층에는 주방 및 남녀 독서실, 서른 대 가까운 컴퓨터를 갖우어 놓은 기능 교실 따위가 이다. 넓고도 깨끗한 방들이었다.
지난 해 구월에는 아파트 단지 안에 경로당도 개원했다. 건평 팔십 평 규모의 이 경로당에는 할머니방과 할아버지방 외에도 물리치료실을 함께 갖추고 있는데, 따뜻하고도 아늑하여 복지관의 별채로 불린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시각에 따뜻한 방에서 편한 자세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할머니들이 느닷없이 들른 지현스님을 웃으며 반겼다. 그 웃음이 넓고 깨끗한 시설물보다 더 인상적이었다. 넓고 깨끗한 시설이 문제가 아니라, 그 공간을 얼마나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쓰느냐가 더 문제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천 여 세대인 아파트 주민 가운데 삼분의 일쯤이 생활 보호 대상자라고 하니 생활의 형편을 짐작할 수 있겠는데. 일요일도 문을 닫는 법이 없는 이 곳 경로당의 분위기가 막연한 우려를 많이 가시게 해 주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이 곳에 드나드는 사람이 하루에도 오백 명쯤이나 된다고 했다. 상주 직원만 해도 열대 명, 기능 교실 강사가 열댓 명,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제공되는 무료 급식자가 백오십 명쯤에 이르고, \"다정한 어린이집\" 이라는 이름의 어린이집 원생들이 백 명, 기능교실에 참여하는 주민이 백 명쯤에 이른다. 그 외에도 후원자들이나 의료진, 자원봉사자 및 기타 방문객이 있다. 오가기에 탈 것이 따로 필요없는 아파트 주민들말고도, 인근의 주민들도 쉼없이 오가는 셔틀 버스를 이요하여 이 곳의 시설과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다.
복지관 운영은 스님이 이사로 있는 사회복지법인 불국도와 후원자들의 후원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종단 차원의 보조가 아직은 없으나 앞으로는 있을 것으로 지현 스님은 기대한다.
\"복지라는 것은 저는 \'복짓는 일\'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복지 개념은 가진 사람이 못 가진 사람에게 나누어 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차별\'을 전제로 하는 것인만큼 불교적인 입장에서 보면 잘못된 겁니다. 저는 복지를 \'깨달음의 길로 함께 가는 것\'으로 이해하고 싶어요. 후원자들은 보시를 통해서 깨달음으로 나아가고, 수혜자들은 고맙고 깨달은 마음으로 회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복지관은 그 둘을 연결하는 다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지현스님은 복지관에 일 주일에 서너 번씩은 들러 직원 및 어린이집 보모들에게 \'교육\'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또 관장으로서 후원자들을 확보하는 일도 다른 사람에게 미룰 수 없는 일이겠건만, 어디에고 특별한 후원을 요청하는 법도 없이, 자연스럽게 성심이 일어나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이런 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느 여러 후원자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애쓸 따름이다.
\"이런 저런 일 벌려 놓았지만 맘에 안 들기도 하고, 걷어치우려니까 심심할 것 같고. 그만두고 편안해야 할텐데 그러지 못할 듯해서……. 이게 문명에 병 들고 욕심에 병 들었다는 거지요.\"
지현스님은 속가는 불도와 인연이 깊은 집안이었다. 그래서 스님들이 무시로 집에 들러 유숙하는 것을 보고 자라다 열아홉에 속리산으로 출가했다. 청화산 원적암에서 서암스님을 모시고 행자 생활을 하다 스무 살에 해인사에서 수계하여, 해인사 강원과 율원을 졸업했다. 출가 때도 그러했지만 지현스님은 출가 뒤로도 세상을 어렵게 살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누구하고 경쟁해 본 적 없이, \"빈자리가 있어서\" 그 자리에 앉았고, 또 떠날 인연이 생기면 그에 따랐다. 율원을 졸업하고 장경각 장주 노릇을 여섯 달 동안 한 것도 그러했고, 은사 보성스님이 있는 송광사로 가서 중강노릇을 하다가 삼십 개월 동안 재무를 본 일도 그러했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구산 노스님의 \"송광사에서도 좀 살아야지\" 라는 말씀을 그대로 받들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송광사 가기 전에 선방으로 갔든지, 강원에 그대로 머물러서 경전을 좀 더 열심히 공부했으면 좋았으리라 싶어요.\"
그의 방 벽 하나를 온통 다 메우고 있는 책들, 「한국불교전서」「근본율」「대일본속장경」「법망경직해」「퇴경당전서」「대정신수대장경」「화엄경강의」「원효성사대전서」「율장전서」「중용강의」「한국불교문화사상사」따위의 책들로도 짐작되는 일이었다.
\"부처님의 은혜가 지중해서 그 은혜 천번만번 고쳐 죽어도 다 갚지 못할 터인즉, 정신 차리고 공부 열심히 해야 은혜를 갚는 일일텐데도\", 선방에만 앉으면 몸이 아파오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아마도 \"대장경\"에의 관심에 관한 이야기인 듯 했다. 해인사와 송광사에서 경판을 조사하고 각각 사간판을 찍어 낸 인연이 있었다.
그런 것에 대한 깊은 관심 때문에 참선 공부를 못했고, 그것에 아직도 붙들려 있는 듯했다.
송광사의 재무 일을 끝내고 해인사 선방에 갈까 했는데 이미 인원이 다 차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때 도서관장 자리와 중강 자리가 비어 있어 또 그 빈자리에 앉았다. 인연 따라서, 그리고 학감 노릇도 좀 했다. 부산은 불심이 승한 지역이다. 전라도와 비교해 볼 때 경상도가 전반적으로 그러하다. 그러나 그 마음의 근원이 진정한 이타利他를 비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지, 기복 차원의 자리自利에서 비롯된 것인지 지현스님은 끊임없이 따져 묻는다. 혹 그런 형편이 스님들을 정진에 힘쓰게 하기보다는 늪의 물처럼 썩게 하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경책한다.
지현스님은 쉼이 없다. 일로도 그러하고 생각으로도 그러하다. 무슨 일을 맡아도 여법하고도 솜씨있게 일을 처리하지만 자신을 내세우는 법이 없이 맑고 고요하다. 자신에게는 엄격하나 다른 사람에게는 후하니 그 주위에 사람이 모인다.
그는 여러 덕목 가운데 다른 무엇보다 \"화합\"을 애중히 여긴다. 자신이 살면서 남을 가슴 아프게 한 일은 없었는지 늘 경책하고 참회한다. 그 일이 결과적으로 좋은 일이었다 하더라도 그렇다. 종교인으로서 견지해야 할 삶의 방법을 그는 부처님 출가 당시의 일로 자주 점검해 보곤 한다. 십 년도 채 못 되어, 자신들이 외도이자 이단자로 치부했던 부처가 인도 제일의 성자로 추앙받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던 인도의 전통적인 사상가들을 상대로 한 당시의 포교 행위란 아마도 전쟁에 견줄 만한 것이었을 터였다. 그러나 부처님은 그 과정에서 한 번도 \"대화의 방법\"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온화한 얼굴과 대화로 그들을감싸 안았던 것이다. 종단 개혁의 일만 해도 그랬다.
\"종단의 지탄받는 집권 세력들이라곤 하지만 그들이 이교도도 아니었고, 못 배운 사람도 아니었잖아요. 같은 조개종의, 그것도 우리가 어른들로 모셨던 사람들이었잖아요. 그런데도 그런 극한적인 방법까지 썼어야 했었는지는 오랜 세월 맑은 기억이 못 될 거예요. 바라보기만 한 우리뿐만이 아니라, 개혁의 주도자들도 그럴 걸요. 제가 선 자리에서 좀 더 열심히 정진하고, 그 순수한 뜻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저절로 모여 물줄기가 자연스럽게 바뀌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요. 이 세상 모든 전쟁은 \'정의로움\' 때문에 시작된다고 누가 그랬습니다만, 전 그 말에 적극적으로 공감하죠.\"
관음사는 저절로 산 중턱에 앉아 있었다. 전체적으로 경사가 급한 곳에 위치한 부산의 지형적 특성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내렸는가 싶으면 바로 방풍림처럼 둘러선 아파트군이 있고, 급한 경사가 아니었으면 숨길이 막힐 뻔한 자리에 관음사가 있다.
이 부근으로 그 옛날에는 학이 과연 살았을까. 모임이 있는지 법당 안에서 갑작스럽고도 굵은 홍소들이 터져 나왔다. 젊은 웃음소리였다.
그러나 법당 옆의 높은 나뭇가지 위에 앉은 한 마리 산까치는 미동도 없었다. 그 간단한 풍경에서 이런 것이 읽힌다. 움직이는 것이 있고 정지된 것이 함께 있어도 세상은 조금씩 바뀌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