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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번뇌, 방황, 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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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 유지호 1996년 02월 168호
형,
참으로 오랜만에 편지를 띄우게 됩니다. 형을 떠올리면 삶의 무게와 깊이가 뚜렷히 담긴 주름살과 눈이 생각납니다. 요즈음의 매서운 날씨만큼이나 강하게 살아오신 삶이기에 건강이 특별히 걱정되는 것은 아니나 연세가 연세인 만큼 염려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형,
올해는 제가 학교를 졸업한 지 꼭 십 년이 됩니다. 팔팔하던 이십 대 중반이 어느 덧 조금은 지치고, 간혹은 세월이 이렇게 빨리 흐르는구나라고 회고조에 젖어들기도 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할 때 불교를 처음 접했으니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된 것도 십오 년이 지났습니다. 사람은 대개가 에고적 성향을 갖고 있으며, 가끔은 자신의 삶을 반조하는데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증세가 약하지 않은 저도 요즈음은 자주 이 상태에 젖어들곤 합니다.
제가 어렴풋이나마 인생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중학 이 학년 무렵이었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가난 때문에 겪는 불편함과 슬픔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절적이었으며 나 개인에 국한된 것이었습니다. 인생에 대한 의문과 인간에 대한 고민은 저의 사춘기의 시작이었습니다. 텅 빈 교정에서 바라보는 석양 노을과 운동장에서 교복을 입고 뛰노는 소년 소녀는 자연과 인생을 처음 내 안으로 받아들이고 고뇌하는 대표적 편린입니다. 그래도 이 때는 쾌활한 때였습니다.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공부하고 뛰놀고 노래 부르던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입학 전 겨울방학, 그때도 요즘같이 추웠는데 나는 그 찬바람이 좋아 외투도 없이 노오란 스웨터 차림으로 정처 없이 쏘다니며 겨울을 난 적이 있습니다. 이성에 대한 욕구가 분출되었으나 저는 그걸 부끄럽게 여겼고, 자제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늘 혼자 추운 거리를 배회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은 참 많은 편지를 쓴 적에 있습니다. 말은 없어지고 흰 백지에 글을 쓰는 것으로 모든 것을 표현했던 시기입니다. 기존 나의 삶에 대한 반항이자 새로운 모색을 위한 방황기였습니다.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떨어지는 잎새에도 괴로워\' 하며 나의 사춘기는 무르익고 고등학교 시절은 끝났습니다.
시대는 10.26에 이어 12.12, 5.18로 이어지는 격변 속에서 저의 감정은 감동과 분노가 교차했습니다. 처음으로 사회와 역사에 눈뜨고 \'고향\'을 생각한 것도 이 무렵이었으며, \'역사의 현장\'을 체험하면서도 \'역사와 나\'의 관계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절은 등산, 산책, 독서, 여행, 편지 쓰기, 음악감상, 번민을 되풀이하면서 지적 호기심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나 혼자만의 고립된 생활은 자유로움의 추구 뒤편의 고독과 무료함에 치떨어야 했습니다. 한편으로 이성에 대한 애틋함과 고뇌를 경험한 것도 이 시절이었습니다.
대학 생활은 혼자만의 생활에 대한 철저한 부정이었습니다. 황량하게 부는 봄바람은 현실 적응에 몸부림치는 나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불교 학생회 동아리에서의 노래와 술, 세미나 등은 나름대로 새로운 생활에 대해 적응해 가는 도구와 방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절 무엇보다 강한 인상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특히 선배들의 헌신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경이로움과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케 했습니다. 또 나 자신의 지식이나 인간됨의 부족함을 철저히 깨닫게 했습니다.
시대와 역사는 살아가는 방법에 있어서도 큰 차이를 낳게 했습니다. 낭만과 학업의 열중이라는 표현으로 대학의 보편적 삶을 나타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런 류와 또 다른 유형의 삶은 엄청난 갈등과 충돌이었습니다. 민족과 역사 앞에, 민중과 민주를 위해 젊은 청춘을 불태우자는 외침과 열정은 그 당시 저로서는 거부키 어려웠습니다. 한 때 유행과 기분은 결코 아니라고 부모님을 설득하고 기성 세대에게 반항했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부모와 교수들은 그래도 편한 상대였습니다. 같은 동아리 내의 친구와 선후배들과의 갈등은 두고두고 아픔으로 남았습니다. 부모님은 결국 이래도 저래도 제 편이었던 겁니다. \'운동\'만이 전부인 시기였습니다.
본격적으로 불교에 뛰어든 첫 해, 9.7승려대회와 10.27법난 규탄 봉은사대회를 치르면서 스님들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정토구현전국승가회, 대승불교승가회, 선우도량으로 이어지는 내 삶의 장은 고민이 없고 몰입하는 과정은 못 되었습니다. 스님들 속에서 제 자신의 한계와 실망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꽤나 끈질기게 추진하고 견디려고 애를 썼습니다. 무언가 변화를 모색하고 시도하려는 찰라에 종단개혁불사는 시작되었습니다. 종단개혁불사에 뛰어들고 숨가쁘게 이 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고 있습니다.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자리에서 재가자들과 애환을 나누는 지금 저의 모습을 정리하기는 아직은 어려운 시기 같습니다.
형,
지난 해 말 종단의 배려로 처음 외국을 다녀왔습니다. 다녀온 결과 외국 여행에 대해 그렇게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지 않던 제가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꾸준함과 추진력 정도를 나의 유일한 장점으로 평가받아 왔지만, 사실 스스로 생각해 보건대는 너무 협소한 보편성만을 갖고 있을 뿐입니다. 사회의 변화나 커오는 후배들을 볼 때 너무도 구식이고 전문적이지 못합니다. \'미래의 준비를 위해 스스로에게 과감히 투자하라\'는 내자의 한마디가 저를 곰곰히 생각게 했습니다. 그럴 무렵의 타국의 문화와 문물은 저의 폭 좁음을 증명하고 질타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흐른 세월만큼이나 저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리버럴리스트임을 숨기지 않고 지내면서도, 혈육의 끈이 얼마나 끈끈한 것이라는 것을 체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내자와 딸의 존재입니다. 이 끈은 얼마나 뿌리가 깊은 것인지 때론 두려울 때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나의 유일한 안식처로 자리잡아 가고 있음을 숨길 수 없습니다. 평범한 한 가정의 남편과 어설픈 직장인의 모습이 현재 객관적인 나의 위치입니다.
시절은 역사 바로 세우기 국면을 지난 총선 정국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한때 목이 터져라 외치며 절규했던 광주항쟁, 전·노에 대한 이슈들이 현실화되고, 이에 앞장섰던 학생운동의 주역들이 경쟁적으로 제도권 정당에 영입되어 총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제 학원은 우리 시대의 그런 암울한 상황은 아니며, 지금의 신세대는 또 다른 조건에서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추구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펜을 들어 넋두리만 했습니다. 긴 침묵을 보내고 형에게 보내는 편지에 무슨 글을 쓸까 고민하다 먼저 제 얘기를 쓰기로 했습니다. 편지를 다 쓰고는 부칠까 말까 하는 망설임을 자주 갖곤 했습니다. 세월이 꽤 흐른 지금도 여전한 모습을 다시 확인합니다. 또 소식 전할 것을 기약하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마지막 남은 추위에도 몸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