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진리는 이론화 철학화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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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의 부처 - 장휘옥
1996년 02월 168호
소박하고 윤리 도덕적인 성격을 강하게 띈 원시불교는 인간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초경험적인 것을 일체 배제하고, 오로지 현실의 실생활에 근거해서 윤리적 행위가 인간의 생활을 행복하고 풍부하게 한다는 것을 가르쳤다. 죽이지 말고 사랑할 것을 가르치고, 도둑질하지 않고 오히려 베풀 것을 가르쳤으며, 거짓말하지 않고 진실을 말하는 즐거움을 가르쳤다.
그러나 석가모니 입멸 뒤 세월이 흐를수록 이러한 소박한 원시불교의 사상들은 점점 이론적이고 철학적인 경향으로 발전해 갔다. 예를 들면, 석가모니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짐에 따라 석가모니는 점점 추상화되고 신격화되어 우주와 동일시하게 되고, 이와 더불어 광대, 심원한 석가모니의 인격은 현생의 수행만으로는 달성될 리 없다고 생각됨으로써 과거세에 무한한 수행을 쌓아 비로소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 불타관도 생겨나게 되었다. 또한 과거 부처님들에 대한 계보도 조성되어 과거 7불의 신앙이 성립되었다.
한편 석가모니의 직제자들 가운데 석가모니에 대한 기억이 선명한 장로나 상석의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에 대해 충실하게 따르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므로 이들은 자연히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경향을 강하게 띠었으며, 한편으로는 권위주의적인 성향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대해 같은 제자 가운데서도 말석에 있거나, 직접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들을 기회가 적었던 많은 사람들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대해 자유롭고 대담한 해석을 내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리하여 석가모니 입멸 뒤 백여 년(일설에는 이백 년쯤)이 지날 즈음에는 교단의 확장과 함께 교단의 각 성원을 규제하는 율의 해석을 둘러싸고 대립이 일어나 드디어 분열하게 되었다. 문헌에 따르면, 의견이 대립이란 지금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금, 은화의 보시를 받을 것인지 받지 않을 것인지 하는 문제였다. 절대 받아서는 안 된다고 종래의 율법을 고수하는 보수적인 장로 그룹과 보시를 받자는 진보 그룹의 대립은 결국 진보 그룹이 패함으로써 끝이 났다.
그러나 이 결과에 대해 승복할 수 없었던 진보 그룹은 새롭게 집회를 개최하여 일만 명에 달하는 참가자를 얻어 독립을 선언하고 대중부大衆部를 결성하였다. 이에 교단은 분열되어 엄격하고 보수적인 장로들의 그룹은 상좌부上座部라 불리게 되었다. 역사가들은 이 시기를 대체로 불교 교단을 전 인도적으로 확장한 아쇼카왕(재위, 기원전268∼232년 경)의 즉위 이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상좌부와 대중부의 분열은 불교 교단으로서는 최초로 일어난 분열이므로 이것을 근본 분열이라 하며, 그 뒤 다시 양자로부터 재분열이 일어난 대중부 계통은 9부, 상좌부 계통은 11부로 분열하여 모두 20부(일설에는 18부)의 부파가 성립되었다. 이것을 지말枝末분열이라 하며, 기원전 일 세기 경에 종식되었다.
이들 분파를 각각 \'부파部派\'라 부르기 때문에 이 시대의 불교를 \'부파불교\'라 부르기도 하며, 또는 각 부파간에 사상적으로 서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목표로 삼는 것은 \'진실\'이기 때문에 \'진실(法, dhrma)에 대한 (아비, abhi)불교\'라는 뜻에서 아비달마불교라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이 부파시대에 만들어진 불교 문헌을 阿? 比達磨라 한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부파불교 시대에는 보수파와 진보파의 대립은 있었지만 양파 모두 불교 교리를 주석하고 그 논리적인 의미를 밝히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 결과 이 시대에는 꽤 많은 아비달마논서가 작성되었지만 지금 대표적인 부파 이외의 논서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특히 대중부 계통은 대승불교와 융합했으므로 이 계통 부파의 논서는 전혀 전해지지 않으며, 겨우 상좌부 계통의 문헌에 단편적으로 기록되어 전해지는 정도이다. 한 마디로 부파 불교 시대의 불교 연구 자료는 매우 빈약하며, 불교사에 있어서 이 시대만큼 사상적으로 통일되지 않고 애매모호한 채로 남아 있는 시대도 없다.
현재 우리가 알 수 있는 아비달마교학의 대표는, 한역으로 전해지고 있는 설일체유부의 교학과 스리랑카의 장로불교가 전하는 팔리어성전이다. 이 중 대승불교가 가장 논란의 대상으로 삼고, 동시에 대승불교의 사상 형성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은 설일체윱의 사상이다.
설일체유부의 교학사상을 알 수 있는 대표적 개설서인 세친의 「구사론」에 따르면, 설일체유부라는 명칭은 그 이름이 말해 주는 것처럼, 일체의 존재(법)는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에 걸쳐 자성이 있다는 \'삼세실유三世實有\'설의 주장에서 유래한 것이다. 설일체유부에서는 이 독특한 삼세실유설에 의해 불교의 모든 교리를 설명하고 있다.
예들 들면 제법무아에 대해, 설일체유부에서는 행위나 윤회의 주체를 특별히 상정하지 않았지만, 인간 존재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구성 요소(色, 受, 想, 行, 識)인 오온五蘊이 찰라찰라에 변화하면서 지속해 간다고 하는 \'오온상속설\'을 주장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오온상속설이란, 인간 존재로서의 오온은 모든 법의 인연에 의해 다섯 가지 요소가 결합해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름뿐인 임시적인 것이지만, 구성 요소로서의 모든 법은 실제로 존재(實有)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설일체유부에서 말하는 \'법\'은 불교 이외의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아我\'와 마찬가지로 고유의 성질을 가진 존재, 곧 자아自我가 되므로 제법무아의 도리에 어긋나게 된다. 이러한 설일체유부의 사상에 대해 뒤에 일어난 대승불교는 일체법은 모두 공空이라 하여 법의 실유사상을 비판하였다.
한편 다른 부파에서는 무아설을 존중하면서도 행위나 윤회의 주체가 없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여 여러 가지 견해를 제시하였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경량부에서는 무한한 과거로부터 계속적으로 존속, 화합하고 있는 미세한 의식인 일미온一味蘊을 상정하여, 이것을 업과 윤회의 주체로 삼아 무아설과의 모순을 해결하려 하였다. 이 경량부의 \'종자\'설은 뒤에 대승불교의 유가행파의 \'아라야식\'으로 발전해 갔다.
이와 같이 아비달마불교가 교학의 발달은 물론 특히 많은 귀족층의 신도들에 의해 두터운 비호를 받자 정치적으로나 사상적으로 매우 보수적으로 되고, 교리도 일반적으로는 자연히 난해한 것으로 비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어난 것이 불교의 대중화 운동이며, 석가모니에의 회귀운동인 대승불교운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