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빠가 세상을 떠난 지금 나는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얼핏보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비관한 고뇌에 찬 연인의 절절한 사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얼마전 자살한 한 소녀의 유서 중 일부이다. 십오, 육세로 기억되는 그 소녀는 자신이 좋아하던 인기 가수가 자살하자 삶을 비관하고 화장실에서 목을 매 그의 뒤를 따랐다.
지난해 말부터 대중 가수들으 자살이 잇따르면서 모두 이런 일이 있지나 않을까 걱정하던 터여서 안타까운 마음을 더욱 금할 길이 없다. 일상에 찌들린 많은 사람에게 마음의 휴식과 즐거움을 선사하며 그저 행복하게만 보이던 이들의 죽음을 선뜻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다. 일부의 비판처럼 공인으로서의 책임 의식이 결여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고, 얼마든지 또 다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그럼 무엇이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우리 사회의 거울로서 대중문화의 정점에 올라 있던 이들이 왜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
정신의학자들과 대중문화 평론가들의 의견은 대개 몇 가지로 요약된다. 나이가 어린 가수의 경우 예민한 감수성과 확고한 가치관의 부재라는 연령적 특수성이 보태어지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볼 때 인기 유지에 대한 중압감과 자아 상실과 사회적 가치관의 혼란을 꼽는다. 입맛 까다로운 대중의 기호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언제라도 그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며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수단과 방법,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야 한다. 더욱이 대중 스타를 꿈꾸며 뒤쫓아오는 신인들이 호시탐탐 그들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 대중적 인기를 유지하고 그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거의 모든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한가롭게 사생활을 희망하거나 자기 자신을 되돌아본다는 것은 곧 추락을 의미한다. 그들의 사소한 행동거지 하나도 모두가 대주으이 얘깃거리가 디고 그들은 완전히 발가벗은 채로 늘 대중 앞에 서 있어야 하며 이러한 현실을 부정하면 언젠가 잔인한 대중들에 의해 파괴되고 만다. 여기에는 언론 방송 매체가 눈과 발이 되어 세세한 부분까지 상품 가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무엇이든지 파헤쳐 내어 한 몫을 한다. 이쯤 해도 그들이 얼마만큼 정신적 벼랑에 내몰려 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모든 연예인들이 다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그들 가운데는 독보적인 자기 자리를 마련하고 대중 여론에 연연해 끌려 다니지 않고 오히려 자기 스타일로 이끌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철저한 직업 의식을 가지고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 나간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대중문화의 현실이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그러한 토양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대중문화의 본질을 들여다봄직하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대중문화란 동시대의 사회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곧 그 사회가 어떠한 가치를 보편적으로 추구하고 있느냐에 따라 대중문화의 기본 골격이 형성되는 것이다.
구소련에서 페레스트로이카(개혁)가 한참 추진될 즈음 한국인3세 빅트로 최라는 대중 가수가 가히 전설적인 인기를 누린 적이 있다. 그 뒤 그 엄청난 인기를 바탕으로 할아버지의 나라 한국을 방문하려 했지만 애적하게도 30대의 나이에 사고로 죽고 말았다. 그의 인기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서방 자본주의 진영의 대표적인 대중 음악 장르인 록밴드를 택했다는 점도 있겠지만, 이를 러시아적 정서로 흡수하는데 성공했으며 특히 개혁의 이념을 가사로 담았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광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그의 노래를 통해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어가려 했다. 그것은 사회와 정치적인 변화의 반영이었으며, 그랬기 때문에 대중성을 가질 수 있었고 희망의 미래를 갈구하는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심각한 사회적 가치의 아미노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사회 현실 속에서 우리의 대중문화는 비판적으로 올바른 대안을 찾으려는 경향보다는 현실을 도외시한 채 감각적이고, 즉흥적이며 개인주의적인 측면으로 함몰되었다는 느낌이다. 마치 아편과 같이 그때그때의 개인적 편암함만을 추구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곧 사회, 정치적 허무주의 반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를 이끌어 가는 위정자들이 좀더 희망찬 정치를 하고, 모두 다 함께 잘 사는 건강한 사회의 비전을 제시해 왔다면 이는 곧 건강한 대중문화의 배젖이 되고 따라서 착실한 한 소녀가 그렇게 쉽게 목숨을 끊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는 조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부처님꼐서 중생들에게 가르치신 밝은 진리의 말씀 중에 인과응보가 있다. 뿌린 대로 거두고 원인 없는 결과란 있을 수 없다는 너무도 자명한 가르침이다. 위로부터 독약이 가득찬 물을 흘려 보내고서 아래에 살고 있는 물고기들이 건강하게 자라길 바란다면 그것은 너무도 바보스러운 소망이 아닐 수 없다.
정치란 기본적으로 정권욕 권력욕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누군가 해야 하는 것이라면 그 욕심이 삿된 욕심으로 머무르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백성들의 불만과 불편함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책임지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곧 나로부터 그런 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시작되고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그리고 죽는 것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결코 명예와 권력은 천년만년 영원한 것이 아니다. 다 버려 두고 오직 빈손으로 돌아가야 한다. 육신의 옷을 빌려 입고 잠시 머무르다 가는 것이다. 참으로 나를 낮추어 어깨 다독거리며 서로가 서로를 위하여 살기에도 짧은 시간이다. 어차피 죽을테니 되는대로 살겠다는 허무주의적 사고를 가져서는 안 된다. 잘 살지 못하면 잘 죽을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을 가져야 한다. 이는 비단 정치인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되새겨 볼 일이다.
치열하게 수행하던 한 젊은 스님이 큰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도대체 죽는다는 것이 무엇이옵니까.\"
큰스님이 답하길
\"네 놈이 사는 것도 다 모르거늘 하물며 어찌 저승의 일을 알려하느냐.\"
죽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것은 게으름과 한탕주의의 극단적 표현일 수도 있다. 어둔 마음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기보다 좀더 노력하고 정진하여 스스로 멋진 삶을 개척하여 맑고 맑은 죽음을 맞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함께 잘 사는 맑은 사회를 만드는 길이며 미물의 생명까지도 소중히 여기는 부처님의 자비행을 좇아가는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