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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7법난의 완전한 해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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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6년 01월 167호
어수선한 시국
전직 대통령인 전두환과 노태우씨의 구속과 공판, \'5.18 특별법\'의 제정 등으로 지난해 연말은 어수선했다. 이 두 사람의 문제는 한국 정치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들이 부정부패한 정치를 만든 장본인이라는 점보다는 한국 정치에서 무고한 시민의 피로써 정권을 찬탈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두 사람 이전에 박정희가 있었고, 더 거슬러 가면 해방 직후 은신했던 반민족 행위자 같은 비극적인 한국 정치사의 장본인이 있다. 이들 반민족 행위자들이 옳게 처벌받지 않고 해방 정국의 어수선한 틈을 이용해 다시 권력의 중추를 이루었기에 이후 한국 정치사는 불행의 연속을 재생산해 온 것이다.
국가 권력을 장악한 친일 부역자들과 친미주의자들은 한국 사회를 혼탁하게 하였고 정치판에 기회주의자들만 득실거리게 하였다. 아니 정치판에 국한한 것이 아니라 사회의 요소요소에서 그런 해바라기들이 출세하는 풍토를 조장하였다.
우리의 이웃이 군화발에 목숨을 앗길 때 언론은 숨진 사람들 위에서 더욱 잔인한 행위를 일삼았다. 또 기업인은 앞을 다투며 권력을 찬탈한 살인자들에게 정치 자금을 헌납했다. 양심과 지식을 전수하는 대학에 정보요원이 공식적으로 교수의 강의를 감시하여도 대학의 책임자들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양심적인 교수를 정보가 \'좌익\'이라고 매도해도 그 제자들조차 입을 다무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다 시절이 바뀌면 언제 그랬던가 싶게, 다시 과거의 잘못을 까발리는 일에 팔을 벗어 제끼는 \'기회주의자\'들을 우리는 수 없이 보아왔다. 요즘의 언론이 바로 그 대표적인 본보기이다. 80년 말 치욕적인 언론통폐합을 겪으면서 한국의 언론은 아예 기회주의가 수습 시절의 중요한 과목이 아니었을까 싶다. 언론사의 상사는 대통령 비서실에 언제 발탁될지를 엿보고, 사원은 사원대로 떡값 챙기는 출입처에 군침을 흘렸다. 그런 그들의 속성으로 인해 양심있는 사람들이 칼질을 당했고 무고한 시민들 또한 \'불순분자의 선동\'에 놀아난 사람들로 매도당했다.
지금 더욱 우스운 것은 그런 자들이 국민의 여론을 대변한답시고 설치는 모습이다. 마치 일제에 부역하던 자들이 애국인사로 둔갑한 과거를 재현하는 것 같아 참으로 하늘 보기가 민망스럽다. 더욱이 한국 불교가 10. 27법난을 겪을 때 그네들이 어떻게 우리를 칼질했던가를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그런 자들은 그야말로 \'역사 청산\'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어디 역사가 청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 역사는 어제와 오늘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E.H 카아가 말했듯이 흐르는 물처럼 이어진다. 다만 과거의 악에 대해 심판하는 순리가 있을 뿐이다.

다시 거론하는 법난
지난 해 12월 13일 조계종 중앙종회 사회분과위원회는 \'10. 27법난 조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이에 앞서 제119회 중앙종회에서 법난 조사에 관해 위임을 받은 사회분과는 이 날 10. 27법난의 입안자를 비롯해 당시 국보위나 검찰에 진정을 제출한 사람을 밝혀내고, 아울러 교계 내부에서 법난에 일조한 사람을 조사하기로 했다.
최근 5. 18 특별법이 제정 되는 등 80년의 상황에 대한 재조사가 활발해지는 사회 분위기가 드디어 교계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어쨌든 뒤늦게라도 과거의 잘못에 대해 당사자가 정확한 심판을 내리려고 노력한다는 점이 반갑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사회 분위기에 따라 욱하는 심정에서 대책없는 특별법의 제정 청원보다는, 좀더 진진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의 처벌을 위한 조사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사실 10. 27법난은 한국 불교가 필연적으로 해결해야 할 하나의 과제임에 틀림없다. 대체 세계 어느 종교사에 이토록 무도한 탄압이 있을까. 그것도 개별 시설이나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종교 그 자체에 대한 전면적인 유린은 유래를 찾기 힘든 만행이다. 합동수사본보 요원이 일거에 들이닥쳐 각 종단의 집행부 임원을 연행하여 고문하고, 불순분자나 수배자들을 검거한답시고 전국 사찰에서 난장질을 친 사건을 그냥 묻어 둔 채로 불교의 미래를 논함은 어불성설이다.
그 난장질에 의해 연행된 불자들의 수도 정확히 밝혀 내지 못한 채 십 수 년은 지내온 것이 선현들게 죄스러울 따름이다. 일천육백 년의 역사를 내세우고 민족문화유산의 보고로 자칭하면서 정작 직접 겪은 치욕스런 현대사를 치유하지 못한 과오가 더 이상 지속될 수는 없다.
이런 중차대한 과제를 풀어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니라 당사자격인 불제자들이다. 그 책임을 통감한 교계의 몇몇 사람들이 그 동안 나름대로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는 점도 간과할 수는 없다. 그러한 과정에서 어지간한 진상은 밝혀졌다는 점 또한 가벼운 것이 아니다.
86년 해인사 승려대회에서 처음으로 공식 거론된 법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그 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집회나 성명 농성 등의 방식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88년 국회가 5공화국 비리를 위한 조사 활동을 할 때 청문회의 안건으로까지 상정된 바 있다.
88년 12월 31일에는 국무총리가 담화를 통해 사과에 가까운 견해를 밝혔고, 89년 1월에는 국방부가 80년 당시의 수사 과정과 결과에 대한 설명회도 했다. 또 교계 언론에서도 법난에 관해 소상히 다루었다.
그러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식으로 정작 당시 피해자들의 정확한 피해 사실과 그들을 연행하여 고문하게 된 사정, 그 뒤의 처리 등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함구로 일관하였다. 청문회도 결국에는 이렇다할 증언도 없이 흐지부지되었다. 당사자들이 연기를 요청하여 그렇게 됐다 하니 할 말이 없다.
이제 다시 종단적 차원에서 이 문제가 정식으로 전면에 부각되기에 이르렀는데 이번에는 절대 과거와 같이 애매하게 처리한다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완전한 해결을
10. 27법난의 진상을 규명하고 그 책임자를 처벌하려는 불교계의 \'역사 심판\'은 몇 번이고 재탕할 소재가 결코 아니다. 광주항쟁의 성격하고는 또 다른 교계의 사정을 감안하여 이번 기회에 완전한 해결을 봐야 한다. 피해 당사자의 개인적 사정이나 종단이 대중 앞에 모두 드러남을 배려하여 일단 소을 댔을 때에 그 문제의 근본부터 사후 처리까지 완전한 처리가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조사특위는 정확한 사명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법난의 원인 가운데 불교계가 스스로 자초한 점도 있다고 발언한 사람이 특위에 들어가서는 곤란하다. 물론 모든 사물이나 상황이 \'연기적\' 관계에 있고, 속담에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도 하지만 법난을 보는 시각이 그래서는 문제의 인식부터 어긋나게 된다.
10. 27법난은 어디까지나 국가 권력을 찬탈한 신군부 세력이 사회적 여론을 호도하기 위한 정치적 상징 조작이다. 그들의 야심에 불교계의 진정이나 투서가 얹혀 세계사에도 드문 불교 탄압으로 현상화되었다. 굳이 추정하여 첨부하자면 5공화국의 정치 자금을 조성하기 위한 점도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점도 법난의 피해자 가운데 한 사람이 주장하는 논리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특위의 구성원이 편협한 시각을 가져도 안 되겠으나 그렇다고 하여 양시론兩是論의 사고로 문제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 아울러 진상 규명 활동이 선언적이어서도 안 된다. 10. 27법난 특별법을 국회에 요구하겠다는 식의 선언적인 방법은 인기는 끌 수 있으나 결국에는 특위의 공신력에 손상이 온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길 바란다. 오히려 5. 18 특별법이 다루어야 할 범위에 대해 거론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아직까지 정확한 법으로 통과된 것은 아니지만 5. 18 특별법은 신국부가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에 국한되어 조사하고 처벌할 것으로 보인다. 12. 12 쿠데타와 광주항쟁을 피로 진압함으로써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하는 단초를 마련했지만 그 뒤 일련의 과정으로 자신들의 새로운 통치질서를 만들었던 것이다. 80년 여름의 \'삼청 교육대\'와 연말의 언론 통폐합 그리고 10. 27법난이라는 과정을 거치며 정권의 안정적 창출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시켰다. 따라서 5. 18 특별법의 내용과 범위에 이런 일련의 과정에 대해 조사하고 처벌하는 조항은 당연히 들어가야 한다. 사안마다 특별법을 만들자는 요구는 누가 봐도 타당성을 잃는다. 10. 27법난은 반드시 진상이 밝혀지고 책임자의 처벌이 이루어져야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재탕 삼탕식으로 우려낼 수 없는 성격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번에 완전한 처리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이 점 특위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깊이 새겼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