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 푸른물에 머리 좀 감아 빗고
달뜨거랑 나는 가련다
목숨壽자 박힌 淨한 그릇으로
체할락 버들잎새 띄워 물좀먹고
달뜨걸랑 나는 가련다
삽살개 앞세우고 좀 쓸쓸하다만
고운 밤에 달그락 달그락
달뜨걸랑 나는 가련다
월북 작가 이병철李秉哲님의 \'나막신\'이다. 계급 투쟁의 길로 전향하기 전의 서정시이다. 이미지가 주는 청옥색 조화나 산뜻한 리듬도 좋지만 내가 이 시인을 잊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노들강변 지금의 노량진 나병환자 집단촌에서 \'그림 잘 그리고 노래 잘 하고 시 잘 쓰는 문뎅이가 누꼬?\' 하여 문드러진 손마디를 반갑게 잡아 흔들며 코마저 떨어져나간 한하운이를 찾아 「신천지」에 \'전라도길\', \'데모\', \'소록도\', \'황혼길\' 등 십여 편의 시를 발표하여 세상에 이름을 드러내 준 사람, 그 뒤 「한하운 시초」를 묶어 서문을 써 주었는데 그 서문이 또한 걸작이 라는 소리를 들었다. 인환의 거리, 그 누황에서 한 사람의 한을 묶어 보리피리같이 세상에 전해 준 사람으로 오래도록 따스하게 그를 기억할 것이다. 월북 작가 해금 조치에 따라 김용준의 「근원수필」, 이태준의 「무서록」은 수필공원을 편집하는 박연구 선생님의 정성으로 범우사에서 문고판이 나와 있다. 평생을 수필 하나에 모든 것을 걸고 살아온 박선생님께서 두 권의 책을 보내 주어 이 산중에서도 귀한 책을 돌려가며 읽을 수 있다. 월북작가전집에 몇 편의 시가 전할 뿐인 이병철 시인을 위해서는 내가 아는 그의 시 제목을 낮은 목소리로 나마 한번 더 불러 주는 일밖에는 \'소\', \'소야 뿔을 써라 소야\', \'역두에서\', \'다시 강가에서\', \'대열\', \'수장 水葬…….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사람 가운데에 또 한 사람은 극작가 이은성이다. 미완의 걸작 소설 「동의보감」을 쓰다가 심장이 터져 숨을 거두면서도 죽어 다시 태어난다 해도 글을 쓸 것이라고 했다는 징하게 외로웠던 사나이. 하나같이 바보스럽도록 억척같고 끈끈하고 뻑센 이 땅의 토종 인간들을 형상화시키는데 모든 것을 걸었던 그의 삶, 역사 속에서 굵은 인간만을 찾아 굵은 인간만을 만들다가 집념의 사람으로 그를 기억한다. 서민 속에 깃든 민족 정신의 맥과 민중을 발견한 자로서의 판소리 대가 신재효를 다룬 「광대가」, 대동여지도를 통한 국토 사랑의 뜻을 담은 「고산자 김정호」, 학문, 천문, 지리, 산수, 의약, 주역에 조예가 깊었던 토정 이지함의 생애와 일화를 통해 생을 투시하는 철인의 진면목을 그리고 있는 「토정비결」, 유의태와 허준을 대상으로 한 「집념」은 당시 활자에 대해 냉소를 보내며 돌아섰던 많은 사람들을 활자에 대한 기대와 소망으로 다시 돌려 세웠다는 평을 받았다. 전 조선일보 출판국 기획위원이었던 이진섭씨의 회고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시리에도, 왕명에도, 신분에도, 정분에도 한눈 팔지 않고 그게 누구의 병이든 오로지 병 낫우는 스스로의 직분, 천분에만 온 정성을 바치는 어기찬 한 인간상을 비록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서나마 대하면서 그것이 우리의 전통적인 천天, 지地, 인人 합일사상을 구체적인 인간의 몸을 통해 표출시키는 동의의 진득한 깊이에 흥건히 취해 「집념」의 향후 전개를 두고 나름대로의 비판과 아이디어를 주고 받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 전한다. 크고 올곧은 진정한 민족애를 진하게 그려 보이던 그를 어떻게 보고 싶어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가 다시 이 땅에 와 우리의 얼을 얼얼하게 소리치는 대찬 붓을 다시 휘두를 수 있기를 축원한다.
중심도 알 수 없는 세계화의 물결 애매모호한 세계화의 정의, 최소한 내가 누구인지 근원이나 알고 하는 소리인지…….
노자는 하늘의 그물은 크고 성기지만 결코, 소홀함이 없다고 하였다.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의 필연적인 과보를 피해 갈 수는 없는 일이다. 민심을 얻지 못한 자는 스스로 목숨을 재촉한다. 이것이 권력의 생리이다. 우리는 옛부터 하늘과 사람과 땅을 어우르며 융화와 화목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며 살아온 것을 상기해야 할 때이다. 이 감염시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