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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에 참생명이 실로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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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살며 - 장원 1996년 01월 167호
난을 키우면 난이 죽고 물고기를 키우면 물고기가 죽던 시절이 있었다. 여간 신경 쓴 게 아닌데도 들여놓기만 하면 얼마 못 가서 비실비실 죽어 나갔다. 다행히 요즈음은 죽지 않고 잘 큰다.
왜 그랬을까? 이것은 기氣의 문제로 볼 수밖에 없다. 삼십대 초반 당시의 내게는 \'살림\'의 기운보다는 \'죽음\'의 기운이 승昇했기 때문이리라. 우쭐거리고 큰 소리만 쳤던 그 때는 모든 것에 대한 진정한 애정이 부족했고, 강도 높은 비판의 이면에 한 자락 사랑도 깔려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 가지고 환경 운동을 한답시고 설치고 다녔으니 지금 생각하면 실로 아찔하고 부끄럽다. 이제 갓 불혹의 나이에 그 당시와 뭐가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뭇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경외감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전생을 포함하여, 나는 생명운동을 할 품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다. 그런 내가 어떻게 생명운동을 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뭔가 신령스러운 천지 기운의 지극한 사랑 때문일 것이다. 선업을 쌓을 기회, 광대무변한 우주 질서 안에서 창조적 맴돌이를 할 기회를 부여 받은 것이다. 득도得道하고 해탈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어쨌든 이제 공부를 포함하여 환경 관련 일을 한지가 이십 년쯤된다. 이제 조금 \'생명\' 이라는 것의 참 실체를 알 것 같다.
환경 문제 해결의 첫걸음은 당연히 모든 것에 귀한 생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로 귀하고 귀한 영적 존재라는 사실을 사려 깨닫지 않으면 환경 문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과학과 기술 그리고 경제적 메카니즘만으로 환경 문제를 궁극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내 주위에는 이런 나를 어리석다 하는 똑똑한 사람들도 많다. 자연이 보호되고 환경이 깨끗해져야 한다는 것은 오직 인간을 위해 합목적적으로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 진정 그들과 교감하며 함께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고상한 사람들도 많다. 이들의 취미는 주로 난 기르기와 수석 채집이다. 청초한 난 한 분 방에 모셔 두면 그 기품이야 말할 수 없이 고고하고, 기묘한 수석 한 점 들여놓으면 또한 천지조화가 바로 거기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생명\'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결코 고상한 일이 아니다. 모든 것은 본디 있던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그대로 있어야 한다. 무자비하게 캐어져 인간들의 방을, 사무실을 장식해 주어야 할 의무는 난에게 전혀 없다. 참으로 인간 중심적인 인간들이 온 산천을 다 짓밟고 다니면서 그것도 소위 귀하다는(다른 말로 하면 비싸다는) 난만 골라 캐오는 행위는 살생에 다름 아니다. 수석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이 천지우주에서 생명 없는 것이 어디 있으며, 또한 천지공사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을까.
모든 것은 정도의 문제이다. 지족知足과 과유불급過猶不及이 이 경우에는 꼭 맞는 말이다. 누구든 수석 몇 점, 난 몇 촉쯤과 같이 사는 것이야 뭐 어떠랴? 문제는 도를 넘어 집착하는 것이다. 더구나 난과 수석을 돈 가치로 따져서 매매까지 하는 것은 더 문제이다. 더러운 자본주의 속성이 미쳐서는 안 될 곳까지 속속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고상하고 똑똑한 존재, 바로 우리 인간들 때문에 지구 환경이 파괴되고 있다. 만물은 무엇이든 똑같이 다 잘 살려고 하는 숭엄한 의지를 갖고 있다. 환경 문제 궁극 해결의 근본 실마리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하고 또 하는 얘기지만 세상 온 것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동등하다는 것을 우리 인간이 통으로 깨우치지 않으면 환경 문제, 결코 해결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