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어린 아기 기르듯 애호 깊어라 해묵어 큰 재목이 될 것이어늘 어찌하여 눈에 보이는 대로 모조리 뽑아 버려 싹도 씨도 남기지 않으려는고.(중략)
스님은 목메어 말도 못하고 두 눈에서 눈물만이 비오듯 쏟아지네. 이 산에 솔 기르기 얼마나 애썼던가. 스님 상좌 할 것 없이 성심성의 가꿨으랴 땔나무 아끼느라 찬밥으로 끼니하고 골골마다 순찰 돌며 새벽종을 울리었네.(중략)
지난 여름 폭풍우에 절로 꺾인 나무들 스님이 남벌하였다고 책잡아 매질하네.(중략)
올해 들어 솔 베어선 항구까지 메어 가면 큰 배를 만들어서 왜놈 방어한다더니 항구에는 배 한 채 뜨지 않고 애매한 이 산만 벌거숭이 되었네. 이 애솔이 자라면 큰 소나무 되리니 화근을 뽑아라, 쉴새없이 뽑아라 이로부터 솔뽑기를 솔 심듯이 하였도다.
잡목이나 남겨 두어 겨울 채비나 하리라. 오늘 아침 관첩내려 비자 따서 바치라니 비자나무마저 뽑고 산문을 닫으리라.
참으로 비통한 마음마저 들게 하는 시다. 소나무 공출에 얼마나 심한 고초를 겪었으면 어린 소나무 싹을 보고도 그것에 놀라 그 싹을 뽑아야 했겠는가.
조선 후기 칠천七賤으로 전락한 스님들의 처지는 남의 집 머슴만도 못한 처지였다. 통도사의 낭백스님은 이러한 폐단을 내생의 인연으로 극복하고자 주린 범에게 자신의 육신을 던졌으니 참으로 한 맺힌 육백 년의 나날들이었다. 중국의 법난은 불과 몇 년에 걸쳐 혹독하게 전개되긴 해도 결국 호불왕好佛王의 등장으로 인해 다시 불교가 흥기를 맞곤 했다. 그러나 조선의 경우는 육백 년이라는 기나긴 시간을 두고 전개되었다. 세조와 같은 호불왕이 등장하여 불교가 일시적인 부흥기를 맞이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법난의 연속선상에서 발생한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조선왕조에서 대표적인 폐불왕廢佛王이라고 할 수 있는 세종은 초기에는 역대 왕들에 버금가는 폐불왕이었지만 말년에는 한글 경전을 펴내는 등의 호불정책을 펴기도 했다. 그러나 호불왕이라 일컬어지는 세조와 문정왕후가 호불정책을 펴고 또 태조가 무학을 왕사로 임명했다고 해서 훼불이 정책적으로 이뤄지지 않았으리라고 짐작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중국에서 만일 민중이 불교를 떠나갔다면 중국의 불교는 이미 오래전에 그 종적을 감추어 버렸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조선에서도 왕권과 국가 권력이 아무리 억불정책을 펴도 민중은 떠나지 않고 일천 년 이상을 그들의 삶속에서 면면히 이어온 불교를 버리지 않았다. 이러한 까닭으로 불교는 오늘을 이어왔고 내일을 이어갈 것이다. 조선불교의 중흥조라 일컬어지는 보우스님의 경우 민중을 외면하고 권력에 의지하여 불교를 지키려했던 활동은 결국 처참한 말로를 걷게 했다. 그러나 진묵, 서산, 신수, 해선, 탄선, 유정, 휴정, 영규, 처영, 용파, 당백 등의 스님과 보우스님의 말로를 비교해 보면 민중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했을 때 민중들은 이들 스님들을 영웅으로 받들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지난 94년 3.29 법난의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사부대중은 무엇을 배웠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권력에 아부하고 야합하는 승려와 승단의 종말이 어떠했던지를 말이다.
10.27 법난 때 전두환 군부가 자신들의 권력을 합리화하려고 법난을 일으켰다고는 하지만 당시 승단의 현실이 어떠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텔레비전과 신문에 비치는 불교의 모습은 그야말로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장이 아니었던가. 그 원인이야 어찌 되었던지 말이다.
10.27 법난의 결과에 대해 1979년, 80년, 81년의 종교 인구 분석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79년 불교인구 1천 3백 5십만, 1980년 1천 2백 3십 2만, 1981년 7백 50만, 1987년 자료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사회 변동과 한국의 종교」)
이러한 결과는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다. 법난사의 연재는 어제를 거울삼아 내일을 일구어 간다는 취지에서 쓴 것이다. 중국에서 삼무일종의 법난이 일어났을 때 그 원인을 고려말 스님들은 참으로 모르고 있었는지 의문이다. 분명한 것은 삼무일종의 중국 불교 법난이 일정 부분은 당시 승단의 부패가 한 원인으로 작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려 말의 승단이 그토록 부패했던 것은 어찌 보면 역사 의식의 결여된 승단은 물론 재가, 일반 사회 단체, 정치 권력은 결국 법난과 같은 화를 자초한다는 것을 우리는 지금까지의 법난사를 통해 배워야 할 것이다. 제2, 제3의 법난을 막기 위해서…….
김태형님은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동국대학교 경주 캠퍼스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 동국대 경주 캠퍼스 총학생회 종교부장, 1993년 5월 해동불교신문사 편집부 기자를 역임하였고, 경주 신라문화원 문화부 간사와 환경보전을 위한 경주시민의 모임 기획부 간사를 지냈다. 지금은 법보신문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