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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바로잡기의 숨은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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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성전 1996년 01월 167호
롤랑 조페가 감독하고 「사랑과 영혼」이라는 영화로 우리에게 친숙한 데미 무어가 주연한 「주홍글씨」는 미국 문학의 고전인 나다니얼 호손의 대표작 「주홍글자」를 원작으로 각색한 영화다. 원작의 도입부에 \'식민지의 건설자들은 자신들이 생각했던 인간의 선과 행복의 이상향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우선 실제적인 필요에 의해서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처녀지의 일부를 묘지로, 다른 일부를 감옥으로 쓰는 것을 예외 없이 인정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꿈이 어린 땅에 세운 바로 그 묘지와 감옥에 청교도들은 다른 인종들을 매장했고 다른 교과들을 구금했다.
자신의 조상이 마녀 재판의 판사였고 퀘이커 교도의 박해자였던 미국 작가 나다니얼 호손은 신대륙을 개척하는 꿈 속에 숨어 있는 악마의 요소를 인식하고 비판했다. 실용주의와 함께 미국 정서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청교도주의의 위선과 독선을 고발하고 그들이 신대륙에 세운 꿈의 나라 미국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골똘했던 용기 있는 작가였다.
우리는 지금 \'역사 바로잡기\' 라는 입맛 당기는 제목의 연극을 지켜보고 있다. 사람과 자연에 대한 애정이 없이는 좋은 작품이 탄생될 수 없듯이 올바른 국가관 없이는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한낱 한시적 권력자일 뿐이다. 12.12와 5.18의 진상 규명과 관련자 처벌은 전후 뉘른베르크, 도쿄의 전범 재판, 프랑스의 나치 협력자 재판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하고 그렇게 집행되어야 한다. 이는 국민들의 복수심이나 감정 해소 또는 부정 부패 비켜 가기 차원에서가 아니라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는다는 차원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우리의 역대 정권은 국민들에게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하고 개선책을 도모할 수 있는 토론장을 만들어 주지 못했다. 지금까지 갈등의 표출은 침묵 또는 폭력을 동반한 저항이라는 두 가지 극단적인 방식으로 나타났고 어느 한쪽으로 힘이 쏠리느냐에 따라 정책이 집행되기 일쑤였다. 아직도 우리는 사회의 성숙도에 걸맞는 의사 표현 방식을 갖고 있지 못하다. 현정권은 문민정부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과거 독재정권 시절의 비민주적 형태를 답습하고 있다. 권력 차원에서 과거의 매듭을 풀려하지 말고 국가가 본래의 기능과 역할에 충실할 때 갈등과 균열은 극복될 수 있다. 권력자의 부패가 노씨 사건만 해결되면 더 이상의 부패가 없을 것처럼 몰고 가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까지 집권당과 권력자의 자금줄이었던 재벌들의 뇌물을 대체할 만한 재원이 확보되지 않으면 비자금 사건은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다.
모름지기 지도자는 올바른 역사관과 국민에 대한 겸허한 애정이 있어야 한다. 명예와 권력욕에 사로잡힌 노인네의 독선과 아집으로 이 나라를 끌고 가면 많은 백성이 가치 혼란과 의욕 상실로 국가적인 손실을 입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나라를 다스리는 자리에 있는 요즈음의 대통령은 옛날의 황제나 절대주의자처럼 사고하고 통치하면 안 된다. 국민과 나라의 백년대계를 위해 겸허한 마음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