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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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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해인삼매 - 법장 1996년 01월 167호
무슨 사연 있었더냐고 물어들 오는데,
실없기는, 그만한때 사연은
무슨 사연이 있었을라구
그리움이야 없었으랴만
왜 남은 슬픔이야 없었으랴만

그 어린 나이에도
엄니의 망종눈물 떨어냈던건
돛배 타고 큰바다로 떠나는 설레임 느껴,
그렇게도 가고 싶었던
그렇게도 오고 싶었던 마음이더니

그렇고도 그렇고도 어디로를
몇 생이나 헤맸던지, 짧은 낮을 꼬박
삼십리나 걸어서 지쳐 허둥대는
걸음으로 동구에 당도했다.
남루함과 두려움을 동반하고야,

이 문門으로 들어서니
늦은 가을 해거름이라 서성댄 석문石門 앞에 서 있는
늙은 느티나무 세 나무 위로 낯달이 걸려오고,
생솔가지 쪄다 조밥 안친 마을집
아궁이에선 맵싸하게 연기
피어오르다가 가엾은 시장기를 돋구웠었다.

돛배에 몸을 부리고 망망의 큰바다를 향해서 떠나가고, 나는……
……

그런데 지금 생각하여도
그토록 지쳐 허둥댈정도로 먼길을
걷기 시작했던 것은 뜨거움을 놓아 버리려도
아픔을 잘라내려는 것도 아니라
정말 아무것 없었다.
참 깜박 잊을뻔하게 생각났다.
동구에서 대처승 아들과 만나 한참
도란도란 벗하며 올라왔는데, 그놈
무거운 가방 좀 들어줄 생각도 않드라.

그 때, 대처승아들이라던 그 사람
지금, 어디에서 무얼하며 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