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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불교, 기본을 튼튼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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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9년 03월 205호
정치적 배경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요즈음 우리나라에는 제2건국 운동이 한창 진행중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캐치프레이즈를 들고 나오는 것은 뻔한 관례라는 점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국민의 정부’가 추진하는 제2건국운동의 골자는 기본을 갖추자 는 것으로 요약된다는 점에서 이전 정권의 그것들과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기본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상식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자, 가만히 우리의 주변을 살펴보자. 정치를 하는 사람들의 행동거지가 언제나 정상궤도에서 이탈되어 있다 보니 오히려 양심적인 정치인이 정신 나간 사람으로 보이고 있지 않은가 법을 다루는 사법부의 관리들이 뇌물과 전별금에 길들여져 있는 세상에서 원리 원칙을 존중하는 법조인이 살아가기란 고달프기 그지없다. 구조 조정 등으로 수만 명의 노동자가 길거리로 내몰리는 데도 재벌 총수는 회사의 공금을 해외로 빼돌리고 있고, 문제 학생을 야단치는 교사가 학생에게 구타를 당하거나 학생의 신고로 경찰서에 끌려가 조사를 받는 나라. 부모를 나 몰라라 팽개치는 일이 흔해지다 보니 어쩌다 효행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큰일이라도 일어난 양 언론이 야단법석을 떠는 나라 등등. 지나치게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드러낸 듯한 인상도 없지 않지만 이런 현상은 어김없이 우리 주위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것들이다.
하기야 국민의 정신 순화와 정신적 교육을 책임져야 할 종교계에서조차 기본을 벗어난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음을 본다면 일반사회에서의 일탈 된 현상들이야 도리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몇 해 전에 어느 종교 단체에서 우리 사회에 종고가 미치는 병리현상이라는 주제의 세미나가 열린 적이 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종교인들과 종교 학자들은 우리나라의 종교들 때문에 빚어지는 사회 병리현상을 크게 걱정한 적이 있었다. 사회를 정화하고, 부패하지 않도록 목탁과 소금의 역할을 하여야 할 종고가 사회를 어지럽히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이 세미나의 주제는 당시의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종교인들에게조차 폭 넓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종교가 사회를 어지럽히는 요주의 대상으로까지 전락한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 종교인, 특히 불교인들은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사회를 어지럽히는 종교가운데 가장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곳이 아마도 불교일 거라는 뼈아픈 반성의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은 아닐까. 모름지기 지금시점에서 불자들은 이 ‘기본’이라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되돌아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불교에서의 기본은 무엇일까. 불자가 지켜야 할 기본 덕목은 어떤 것일까를 살펴본다면 우리는 스스로가 얼마나 많이 기본에서 벗어나 있었는지를 쉽게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재가불자의 기본 5계를 살펴보더라도 그 계율이 우리의 실제 생활과 얼마나 뚜렷하게 유리되어 있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살생에 무감각해지고, 응당한 노력 없이 남의 것을 쉽게 소유하려 하며, 몸과 마음을 바르게 관리하지 못한 행위들, 그리고, 가리지 않고 함부로 말을 하거나 알게 모르게 거친 언동을 한 행위들, 술어나 마약의 유혹에 꿋꿋하게 버티지 못하고 흔들렸던 일 둥…. 일반 신도들은 그냥 두고라도 요즘의 각 종교 성직자들이 보여 준 굴절된 행태들은 종교라는 이름으로 저질러 지는 온갖 병폐들이 종교가 더 이상 성역 (성소)이라는 이유로 보호 받을 수 없는 것임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불교에 입문한 사람들이 주위로부터 받는 질문 가운데 가장 곤혹스러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불교는 어떤 종교인가’라는 것일 것이다. 어떤 이는 칠불통게의 예를 들며 악한 일을 하지 않고 선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참선정진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고 불보살님에게 간절히 기원하는 종교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간혹 불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철학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비슷한 시기에 불교에 입문한 불자들이 이처럼 저마다 다른 불교관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불교가 어떤 종교라는 것을 설명하는 기본 강령조차 마련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불교라는 가르침이 워낙 심오한 것이기에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사람마다 불교에 대한 이해가 다르게 나타난 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불교를 종교로 가진 사람이 숫자로는 2000만에 이른다고 하기도 하고, 1000만이라는 통계도 있지만 그 가운데에서 교주의 생애라고 할 수 있는 부처님의 일대기를 제대로 읽은 사람이 많지 않은 현실, 다소 장황한 예이기는 하지만 이는 불교가 기본중의 기본이랄 수 있는 입문 체계부터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음을 보여 준다.
지난 97년에 인도문화사 분야에서 세계적 석학으로 알려진 일본 고마자와 대학의 나라 야스야키 총장은 한교계의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독교가 한국에서 1세기라는 짧은 기간동안에 16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불교를 제치고 가장 강력한 종교로 부장하는 까닭에 대해 큰 의문을 나타낸 적이 있다. 문화사적인 면에서 볼 때 전혀 가능할 것 같지 않은 현상이 한국의 종교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한국문화사의 전공자는 아니지만 연구를 해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는 기독교가 빠르게 성장하게 된 배경을 기독교에서 찾기보다는 한국 불교가 가지는 문제점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며, 불교가 전해
졌을 때 기존의 민속신앙과 잘 융섭한 한국불교가 막상 토착화에 성공한 뒤로는 신자들에게 불교, 곧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르치는 데 소홀했지 않았냐고 반문하여 눈길을 끌었다. 이는 종교가 한 지역에서 일단정칙에 성공하면 곧 이어 그 종파의 가르침을 효과적이고도 집요하게 전파하고 교육해야 하는 기본적인 과정의 소홀함을 예리하게 지적한 것이다. 물론 불교가 다른 종교와 비교해 쾌 교조적이지는 않지만 종교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요, 사상이며, 철학 체계인 점을 감안한다면 그 동안 한국불교가 얼마나 기본적인 부분에 허술하고 안일하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지난해 조계종의 분규사태를 겪으며 한국 불교는 총체적인 무력감에 빠져 있다. 출가자는 물론이요, 재가 불자들도 깊은 상처와 충격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불자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한국 불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은 한국 불교가 무엇인가 혁신적인 변화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의 발로인 것이다. 질리도록 계속되는 분규 사태는 한국 불교의 기본이 잘못된 데서 일어난 것인 만큼 이 땅에 불교가 처음 전래됐다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기본을 튼튼히 하면서 새롭게 시작하자는 불자들의 목소리는 확산되고 되고 있다.
불교적 시간관에서 1000년이야 한낱 티끌에 불과한 것이지만, 시기적으로도 불교는 20세기를 마감하고 새 천 년을 새로운 각오로 맞이해야 한다는 요구에 직면해 있다. 한국 불교의 21세기는 어떨 것인가. 문화적인 패러다임이 주도 할 것이라는 21세기에도 유력한 종교로서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한국 불교가 지금부터라도 얼마나 기본적인 부분을 철저히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다. 기본을 갖추는 것, 그래서 이것은 한국 불교 21세기의 성패를 가려 주는 잣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