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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달리, 불교가 인간을 존중하고 평화로운 가르침임을 드러내는 불교의 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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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민희식 1996년 01월 167호
불교의 삼학三學이란 계戒, 정定, 혜慧의 세 가지 가르침으로 여기에 수행의 길이 있다. 먼저 계를 지키기로 마음 먹고 나날이 자기를 점검하고, 좌선이나 명상으로 정신 통일을 거쳐 자기의 내면을 바라보고 자기를 정화하여 우주의 예지와 일치되는 체험을 하고, 이 처럼 계를 지키고 정을 계속하는 가운데 자연히 깊은 지혜의 눈을 뜨게 된다.
이 세 가지를 계속함으로써 해탈하게 되는 것이며 그것을 아는 지혜가 해탈지견解脫知見이다. 계, 정, 혜, 혜탈, 해탈지견의 다섯 가지가 五等分身이다. 요컨대 부처가 되는 방법을 다섯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계戒란 수행자가 스스로 지키는, 자기에 대한 계로 지키지 않아도 벌을 받지 않는다. 반면에 율은 뚜렷한 벌칙이 있다. 초기의 불교 교단은 매우 권위가 있어 비구, 비구니에 대해서는 왕도 국법을 적용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멋대로 행동하면 세상의 평판이 문제가 되므로 자치 조직으로 규칙을 지켜야만 했다. 계는 자주적으로 지키는 것이라 보리심이 근본이 된다. 깨달음은 자기 자신이 얻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처님이 달을 가리켜도 그 달을 보는 것은 수행자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가르침과 법을 제시하고 그 법에 따라서 모든 사람이 깨달음을 얻는 것 이것이 본래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마음 속에 계를 갖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불교의 계율은 매우 엄하지만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고 잘못이 생길 때 만드는 수기수제隨記隨制가 생긴 것이다. 초기의 불타 상가에서는 벌 받을 만한 일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어, 일이 생길 때는 앞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계율이 제정된 것이다.
반면 기독교는 인간의 본성을 악으로 보기 때문에 처음부터 계율이 만들어졌다. 기독교의 계율 가운데 성베네딕트의 경우를 보기로 하자. 6세기경 이탈리아에서는 콘스탄티노불의 동로마 제국과 라벤나의 동고트 왕국이 오랫동안 싸워서(5335-553) 도시는 황폐되고 인구는 격감하였다. 이 와중에 베네딕투스는 로마의 스피아코 동굴에서 수도하다 몽테 캇시노에 옮겨 계율을 집필하였다. 이 계율은 사본이 두 가지가 있는데, 그 내용은 수도원장과 수도사의 공동생활상의 역할과 구성, 수도사의 정신적 훈련의 원칙, 기도 방법, 수도사의 계급 기구와 임무, 규율, 수도생활 등에 관한 것이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이 한창일 때 로마 가톨릭은 수도원 제도와 계율을 지키기 위해서 부처님의 생애를 가르침으로써 신교에 대항하였다. 「성조 세파트와 발라릉」이야기로 알려진 중세기의 가장 중요한 문학 작품은 이렇듯 그 근원이 불교에서 온 것이다.
그러나 구교든 신교든 모두가 광신도였기 때문에 그들에게서 지혜를 찾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의 내분도 심하고 서로 이단자로 몰아 너무나도 잔인한 방법으로 반대파를 처형하였다. 불에 태워 죽이거나 토막내는 일도 흔히 있었다. 그러다 보니 특별히 뛰어난 성인이 아니고서는 마음의 평화는 찾아보기조차 힘들었다.
불교에서 계가 형성된 과정을 살펴보면 그 근원에서부터 기독교와 사뭇 다름을 알 수 있다.
부처님의 말씀에 감격한 바라문이 비가 오는 동안 자기 집에 머물어 달라고 하고 석 달 동안 자기 집에 머물어 달라고 하고 석 달 동안 보시와 식량의 문제를 보장하겠다고 하였다. 석존은 그 원을 받아들여 오백여 명의 제자를 데리고 그 마을에 갔다. 그러나 그 바라문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석가 교단은 심한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 때 말을 기르는 자가 오백 마리의 말을 끌고 가다 그것을 알고 말의 먹이를 보시하였다. 이 일고 규칙을 깨뜨리면 제제를 가해야 한다는 의논이 상가에서 나왔으나 부처님은 그를 벌하지 않고 과거의 인연에 의한 것이라며 제자들을 납득시켰다.
하지만 계율의 조문을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계율은 그 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늘어나 \'비구의 250계\' \'비구니의 380계\' 또 \'비구니의 500계\'가 생겼다. 이 계율은 모은 것을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라고 하였다. 벌칙 가운데 가장 무거운 죄를 바라이법波羅夷法이라 하는데 교단에서 영구 추방을 당하는 벌칙이다. 그러나 수행 단체에서는 추방되어도 신자의 권리는 뺏기지 않았다.
바라이법이 교단에서는 최고형이지만 기독교에서의 화형이나 마녀 사냥, 이단심문 같은 극형은 없었다. 이 점에서 불교 교단이 평화로운 가르침임을 알 수가 있다.
바라이법의 첫 번째는 \'음계淫戒\'다. 카란다카 촌의 카란다카 장자(죽림정사를 기여한 자의 아들)수딘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감동하여 출가하였다. 수행하던 중 자기 집 근처에 오게 되어 인사라도 할 겸 집에 들렀다. 그 때 어머니가 \"너는 출가하여 부인과의 사이에 자식이 없어 후계자가 없으니 자식을 갖게 해 달라\" 하고 애원하였다. 그는 어머니에게 효를 하기 위해 산에 가 부인과 정을 통한 뒤 아들을 낳았다.
이에 부처님이 그를 견책한 데서 음계가 생겼다. 이 때 수딘나가 재가로 돌아가면 그러한 행위는 허용된다. 약력사계弱力捨戒라 하여 수행할 능력이 없는 자는 계를 버리고 환속하는 것을 허용한 것이다. 바라이법은 회의에서 결정되면 죄가 인정된다.
바라이법의 두 번째는 주어지지 않는 것을 갖는 투도偸盜에 대한 것이 있다. 이 계율은 다니아 비구가 일으킨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다니아는 집이 바람에 날라가자 능의 흙을 갖다 집을 지었다. 그 때 생물을 많이 죽였다 하여 그 집을 허물게 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빈비사라 왕의 재목장에서 재목을 갖다 집을 지었다. 이에 왕이 그를 불러 문책하자 다니아는 \"왕이 이 땅의 초목은 수행자의 것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괴변을 폈다. 왕은 \"소유자가 분명하지 않을 때는 나무고 풀이고 수행자는 마음대로 써도 되지만 소유자가 있을 경우에는 그러면 안 된다\"고 했다. 그것은 도적질로 국법에 따르면 사형에 해당되는 죄였다. 그러나 왕은 국법을 적용하지 않고 그를 사면하였다. 석존은 이를 계기로 부도계不盜戒를 만들었다.
다음은 살인죄에 해당되는 단인령斷人令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가 있어 자기가 남을 죽이는 일, 남을 시켜서 죽이는 일, 자살을 말한다.
네 번째는 거짓말하는 대망어大妄語이다. 자기가 아라한이 되었다거나 신통력을 가지고 있다 하며 남에게 보시를 받거나 신자를 만드는 자들 곧 사교 집단이 이에 속한다. 부처님은 일찍이 이들의 혹세무민을 경계하였다.
폭력 혁명을 긍정하는 공산주의 사회도 이와 유사한 점이 있다. \'결과와 목적만 바르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일\' 그것이 이 지상에 끔찍한 죄를 낳게 한다. 목적이 정당한 것도 중요하지만 수단에서도 역시 타당성이 있어야 한다. 불교의 계는 그것을 밝혀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