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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꿈을 바로 깨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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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 혜암 1996년 01월 167호
卓炷杖一下云授, 假使棒如兩點하고 喝似 雷 하여도 未能當得向上宗乘事하나니 到這裏하야는 黃頭碧眼도 更參三十年하야사 始得다.
한번 주장자 내리치고 말하되, 설사 몽둥이로 때리기를 비오듯 하고 할 하기를 우뢰같이 하더라도 향상종승向上宗乘의 법에는 합당치 못하니 여기에 이르러서는 누른 머리 석가와 푸른 눈 달마도 다시 삼십 년을 더 참구하여야 되리라.

基餘歷代善知識과 天下大宗師는 盡是似附草木精靈이니
千七百公案은 是  乾 미 분 還會 
그 밖의 역대 선지식과 천하 대종사는 모두 초목에 붙어 사는 잡귀이니
천칠백 공안은 이 무슨 마른 똥막대기인가 알겠는가.

滿山紅葉 枯落하니 三冬結制降雪花로다.
盤山이 示衆云 向上一路는 千聖도 不傳이어늘 學者勞形하나니 如猿촉月이로다.
온 산에 단풍잎 시들어 말라 떨어지니 삼동 결제에 흰 눈송이가 내리네
반산 보적스님이 대중에게 법문하였다. 향상일로는 일천 성인도 전하지 못하거늘 학자가 애를 쓰나 원숭이가 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고 하는 것과 같다.

假使 三世諸佛과 歷代祖師와 文殊 普賢과 天下善知識이 說盡未來際하여도
모탁不及이며 千里縣릉이라 是故로 句外에 明宗하고 機外에 明旨하야사 始得다.
가령 삼세제불과 역대 조사와 문수 보현과 천하의 선지식이 미래제가 다하도록 설한다 해도 털끝만큼도 미치지 못할 것이며 천리 길이나 멀리 어긋 나리라.
그러므로 언구 외에 종지를 밝히고 기틀밖에 그 의지를 밝혀야 비로소 되는 것이다.

倒這裏하야는 세豪有佛見法見이라도 箭過西天이니라 畢竟에 作 生고?
이 속에 이르러서는 털끝만치라도 부처라는 소견이나 법이라는 소견이 있다면 벌써 화살은 서족 하늘을 지나 감이라 필경에 어떻게 할 것인고?

石女騎牛歸後洞이요
木人차笛過前村이로다
석녀는 소를 타고 뒷 골짜기로 돌아가고
목인은 피리를 불며 앞 마을을 지나간다.

喝一喝하고 遂下座하다.
할, 할 한번하고 법상을 내려가다.

법문을 마쳤지마는 신도님이 많이 오셔서 간단하게 몇 마디 하겠습니다.

정각正覺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큰 꿈을 바로 깨쳐라\' 이 말입니다.
꿈을 깬 사람이라야 꿈을 꾸었던 소식을 알게 됩니다. 이 말은 꿈을 꾸는 동안은 실제 행동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세상의 착한 일 악한 일 모두가 하루 저녁의 꿈입니다.
세상 사는 일이 어제 저녁의 꿈과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그 때만 고개를 끄덕거리고 세상사로 돌아가면 그 때뿐입니다.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 모두가 깨닫고 보면 실체가 아닙니다. 꿈 깨고 나면 허깨비에 속아 사는 세상입니다. 부처님과 조사도 깨닫는 방편으로 그렇게 찾는 것입니다.
강당에서 경을 의지해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는 것은 방편으로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종지를 삼고 얽매이는 것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경전은 마음을 닦는 방편으로 공부하는 것입니다. 결국에 우리는 참선밖에 할 것 없습니다.
간단한 문제입니다.
꿈 속에서 이것이 꿈이다 하고 알면서 꿈꾸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우리 본 마음을 알고 나면, 일어났다 없어졌다 하는 마음 생멸심生滅心은 허깨비 마음입니다.
내 마음이 아닙니다.
부처님 법이 쉬운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어렵게 배우고 어렵게 깨치니까 어려운 것으로 생각되지만 어려운 것이 아니예요.
자기들 생각으로 어려움을 내는 것입니다. 어렵게만 생각할 것 없습니다.
그렇다고 가볍게 생각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을 가지고 하면 됩니다.
꿈을 깨고 나면 그 꿈이 꿈인 줄 아는 것입니다.
모르는 사람 수천 명이 아는 사람 하나를 못 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부를 하라는 겁니다.
스님들은 편하기 위해, 집에 가지 않기 위해 도를 닦는 것이 아닙니다.
삼악도에 떨어지면 숨쉬는 사이에도 고통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사람몸 받았을 때 공부해야 합니다. 이 때 살길을 찾고 바른길을 찾아야 합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 때를 놓치지 마시오.
백천만겁이 지나도록 만나기 어려운 게 사람몸 받고 부처님 법 만나는 것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도道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즐거움을 버리고 어려운 일을 능히 행하면 중생이 받들기를 성인과 같이 합니다.
사람에게는 일정한 법이 없습니다.
착한 사람에게 악한 일을 시키면 괴로워서 하지 못합니다.
무위정법이라고 일정한 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깨달음의 분상에서 봤을 때 중생계의 세상에는 옳은 일이 한 가지도 없습니다.
육근에 끄달리지 말고 전도몽상에 치우쳐 살지 말아야 합니다.
말만 다를 뿐이지 다 똑같은 말입니다.
부처님 법은 이론이 아니라 실천하는 법입니다.
법문 듣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실천하는 사람이 거룩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이 몸이 없어지기 전에 부지런히 정진해야 합니다.

천상천하를 다 돌아봐도 나를 도와 줄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자작자수自作自受입니다.
내가 지어서 내가 받는 것입니다. 남을 원망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염라국에 가서 변명을 한다고 무엇이 변할 게 있습니까.
정신 차려서 모두들 이 몸을 바꾸기 전에 후회가 없도록 열심히들 공부하시오.
불기 2539년 10월 15일 결제법문
해인총림 방장 혜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