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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력(運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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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의 얼과 멋 - 편집실 1996년 01월 167호
이른아침 공양을 마친 산사에는 아직 어둠의 잔해들이 아침 길목에 어른대고 있다. 큰방에 들어가 온몸에 내려 앉은 찬기운을 잠시 턴다. 또르르륵…, 큰방부전 스님이 도량으로 나와서 운력 목탁을 친다. 누비를 입고 모자를 쓰고 목탁 소리에 맞춰 스님네가 뽀얀 입김을 날리며 하나씩 빗자루를 들고는 큰법당에서 일주문까지 걸음을 옮긴다. 어느 새 나왔는지 노스님네가 먼저 비질을 하며 눈처럼 하-얀 웃음으로 아득한 후배 스님들을 맞는다. 들어가 안겨도 그저 한없이 아늑할 것만 같은 노스님들의 미소. 산사에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가슴 뭉클하게 와닿는 산중의 행복을 실감한다. 절집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있다. 죽은 송장도 운력 목탁이 울리면 벌떡 일어나 운력에 동참한다. 그만큼 운력이 가지는 의미가 예사롭지 않다는 이야기일게다. 누구 한 사람 예외없이 동참하는 이 시간이면 절집의 \'집\'이라는 의미의 따뜻함을 실감하고는 한다. 함께 하는 노동 속에서 건져지는 \'집\'의 의미는 한없이 새롭기만 하다.
예전에는 민가에서도 운력이 행해졌다. 길흉사가 있거나 일손이 모자라서 가사가 밀려 있는 집에 마을 사람들이 대가 없이 노동력을 제공해 주던 아름다운 협동 관행이다. 그러나 임금 노동이 자리잡고 화폐개념이 발달되면서부터 아름답던 협동 관행은 사라져 버렸다.
도반 스님들이 입김을 날리며 쓸어 나간 도량은 이제 빗질 자국만 선명하게 남아 있다. 무소유를 향한 스님네의 마음처럼 맑고 깨끗해진 도량. 그 도량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운력이 있는 한 절집은 언제나 따뜻하고 아름다운 공간으로 남을 것이라는 생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