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탄일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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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88년 05월 75호
2532년 전 인도 카필라국 룸비니동산에서 한 사람이 태어났다. 이 사람은 비교적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귀여움을 받고 자랐다. 차츰 늙고, 병들고, 죽는 인간의 고통과 슬픔을 고뇌하며 이로부터 해방된 삶을 추구한다. 이 길은 ‘수행의 길’이었고 또한 기존의 모든 부귀와 권력을 내던지고 새 삶을 향하는 비장한 자기결단이었다. 수행 과정에서 고행과 고뇌 그리고 유혹을 물리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존귀한 것은 생명(특히 인간)이며 모든 것은 서로 관련되어서 생성, 소멸, 발전한다고 보셨다. 특히 오늘 내가 지은 업이 미래를 결정하며 과거의 실천이 현재를 규정하고 있다는 그분의 깨달음은 결코 체념적인 세계관이 아니라, 세계와 운명의 주인이 인간 개개인이며 인간집단 그 자체라는 적극적 인 세계관이기도 하다. ‘모든 인간은 불성이 있다’는 말씀도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함을 말해 주는 것이다. 또한 이 분은 혼자만의 깨달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생 동안 대중과 함께하면서 모든 개개인이 스스로 깨달음을 얻도록 도움을 주는 삶을 살았다.
이렇게 사신 부처님은 구시나가라 사라쌍수에서 열반에 드셨다.
붇다의 삶은 수많은 사람에게 귀감어 되었으며 따라서 많은 제자와 추종자들어 생겼다. 그리고 붇다의 가르침은 시대와 지역의 한계를 넘어, 이천오백년이 지나온 현재에도 세계 수십여 국가의 많은 사람들이 그 가르침을 배우고 따르고자 하고 있다. 시대와 지역을 넘어 오면서 계승 발전되어 새로워지는 한편 처음의 가르침과 뜻이 변질 •왜곡되어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이땅 우리 한반도에도 불교의 가르침이 전래된 지 어언1600여년이 되었다. 민족의 영고성쇠만큼이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현재는 700만명 이상이 불교를 신앙하고 있다. 명산, 대 •소산을 망라하여 산수 좋고 경치 좋은 곳이면 어디에서나 사찰을 볼 수 있다. 현상적으로 여전히 불교는 ‘우리의 종교’로서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주관적인 판단일지는 모르지만 최근 2~3년 사이에 불교에 대한 이미지도 매우 호전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불교의 대사회 참여의 활성화로 세인들은 불교를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으며 불교인에게는 자긍심을 높여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불교인이든 비불교인이든 “큰일났다. 무언가 개혁되어야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불교가 과연 살아 남을 수 있겠는가?” 라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주위에서, 특히 이제 갓 청년이 되는 연령층으로부터, 처음 불교를 전체적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되었을 때 깊은 애정과 실망감이 교차 되면서 많은 갈등을 겪는다는 고백을 자주 접해 왔다.
어쨌든 근래의 한국불교는 기로에 서 있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한국불교의 중흥을 위해서, 바꾸어 말하면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 그리고 해방을 위해서 한국불교는 무엇을 어떻게해야 하는가라는 고뇌의 목소리를 깊은 산사의 수도승이나 생산현장의 포교사나 거리의 불제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고는 있지만 아직 확실한 대답을 찾고 있지는 못한 살정이다.
각자가 처한 조건이나 관심사에 따라 사부대중의 교육, 경전의 번역과 보급, 포교, 사회복지, 민중불교, 수행 등이 중요하다고 저마다 자기 근거를 가지고 주장하며 정진해 왔다. 제 분야의 이러한 수행 정진이 그나마 한국불교를 여기까지 끌어온 힘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들의 노고에 깊은 경의와 신뢰를 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시점은 조그마한 성과에 만족할 때가 아니라 지난 과정을 냉정히 분석해 보고, 향후 진로를 불교 대중이 합의하여 대중적 힘으로 개척할 때이다. 왜냐하면 새로운 방향을 모색, 실천하는 대중적 기운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해가 바뀌면서 광범위하게 분출되었다. 연초 3개월 여 동안 10여개 이상의 불교 단체가 새롭게 조직된 것이다. 눈에 크게 띄는 것만 살펴 보아도, 승가진흥회(회장 밀운 스님), 대현불교법사회(회장 목정배교수), 한국교수불자연합회(회장 고준환 교수), 한국불교전법회(회장 벽파 스님), 한국불교사회교육원(회장 성열 스님), 대승불교승가회(회장 송산 스님), 한국불교사회연구소(소장 청화 스님) 등이 있다.
각 분야의 승가, 재가가 결합하고 혹은 독자적으로 체제를 정비하여 각각의 목적과 목표를 향해 새롭게 깃발을 높이 들어 진군의 나팔을 불고 있다. 그래서 서로 이해와 목표가 상충되는 것도 있고 부합되는 것도 있는 실정이다.
저회는 이러한 현상을 일단 매우 긍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불교하면 웬지 개인적인 것으로만 생각하여 어느 조직에라도 소속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불교인이 많이 있는데, 이를 극복하고 불교단체들이 새롭게 움직이고 있는 것은 불교운동을 조직운동으로서의 본격적인 자기 궤도에 올려 놓는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또한 매우 전문화 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막연히 총체적인 것보다는 자기 대상과 주체가 뚜렷한 모임과 전문적인 영역을 담당하는 기관이 많아지는 것은 고무적이라고 본다. 그리고 각 단체가 이렇게 출범하기까지는 굉장한 노력이 투여 되었다. 그래서 인적, 물적토대가 최소한의 것들은 마련되었는데 이는 불교계의 잠재역량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기에 더욱 고무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산발적인 제 부분을 조정, 통제할 곳이 현재는 없다는 것이다. 새로 출범한 단체의 지속적인 활동을 위해서는 무언가 교통 정리를 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궁극적으로 비슷한 성격의 단체들은 통폐합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당장 현실화시킬 수 없다면 상호조정 •협조 체계를 유지하여 일의 중복을 피하고 효율을 높여야 될 것이다.
스스로 맡은 분야에 최선을 다해 인간이 인간다움을 실현하는 세상을 구현하는데 기여할 때 단체의 존재 의미와 생명성이 대중으로부터 주어지게 될 것이다.
요즘불교계의 초미의 관심사가 있다면 단연 ‘불교 방송국 건설’일 것이다. 지난 12.16 대통령선거 때 여당후보의 공약으로부터 구체적으로 표면화되기 시작하면서 최근의 소식에 의하면 방송국 설립 허가는 거의 확실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 불교대중이 더욱 궁금해 하는 것은 허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주체적인 준비 정도에 쏠려 있다. 그런데 준비 상황이 오리무중이다. 불교방송국을 짓자면 몇십억이 필요하다는데 그 재원 마련은 어떻게 할 것이며 방송 기자재구입, 방송 요원 확보, 자료수집 •정리 등 해야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닌데 현재까지 공개되고 있는 것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일반 시민들로부터 주식을 매매하여 자금을 모으고 사원을 공개 채용하면서 착실하게 준비해나가는 타신문•방송의 준비와 비교해 볼때 차이가 큰 것이다.
불교 방송국의 건립은 불교인의 숙원 사업이며 이번이 절호의 기회라고 본다. 그런데 건설 그 자체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불교인의 총의와 의지를 모으는 것이다. 불교 방송국의 건립이 또 하나의 관제•어용 언론의 탄생이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소수 재벌이나 집권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 중생의 업과 귀가 되어 국민이 잘 살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하여야 한다. 혹시 불교의 이익과 다수 국민의 이익간에 상충되는 것이 있다면 다수 국민을 위하는 대국적 방송국이 되기를 원한다.
이러한 방송국이 되자면 건립 과정에서부터 세심한 배려와 준비가 필요하다. 소수 몇명의 자금만으로 건립하게 될때는 그들의 입김을 물리치기가 어려운 것이 분명하다.
때문에 방송국 건립 과정에서부터 대중과 함께 대중의 힘으로 우리의 불교방송국을 건립할 수 있도록 준비하여야 할 것이다. 혹시 방송국 건립을 계기로 사소한 개인과 집단의 이익을 추구한다면 역사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밖에 요즈음의 불교계는 전통사찰보존법 발효일(5월28일)을 앞두고 그 시행령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있다. 우리는 불교의 자율성과 발전을 위해 불재법 폐지를 주장했던 것을 상기하고자 한다.
민중불교에 대한 논의가 광범위하고도 깊이있게 진행되고 있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민중불교운동을 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학계•언론•잡지계에서 저마다 특집을 다루고 연구소 등에서는 각종 세미나를 준비중에 있다고 한다. 민중불교가 교계에 신선한 충력을 주고 있으며 불교의 사회적 지위를 현격히 높였고 이제는 불교계에서 그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는 현실에서 민중불교에 대한 공개적이고 심도깊은 토의는 불교발전에 크게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 된다. 더우기 최근의 돈오돈수, 돈오점수 논쟁과 아울러 이념의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 된다.
평범한 사람으로 태어나 물없는 정진과 결단으로 인간 삶의 귀감을 보여준 붇다의 탄생일을 맞아 그분의 삶과 사상을 배우고 따르는 우리 불제자들은 오늘 이 자리 이 시점에서 다시금 한점 부끄럼없는가를 되돌아 보며 우리의 각오를 다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