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자야, 모든 법의 공한 모양은 생기는 것도 아니며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더러운 것도 아니고 깨끗한 것도 아니며, 느는 것도 아니고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공한 가운데는 물질도 없고 느낌, 생각, 행동, 분별도 없으며…
-반야심경 중에서-
우주에 있어서의 물질과 에너지의 총화(總和)는 일정하며 결코 새로이 생겨나거나 소멸되는 일이 없다. 그리고 물질은 그 형태만이 변화하며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열역학 제 1 법칙-
물질과 에너지는 한 방향으로만, 즉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사용할 수없는 것으로, 혹은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이용할 수 없는 것으로, 또는 질서화된 것으로부터 무질서화된 것으로 변화한다.
-열역학 제 2 법칙
엔트로피란 무엇인가
엔트로피(Entropy)는 독일의 물리학자인 루돌프 클라우디우스가 만들어 낸 말이다. 이를테면 난로속의 새빨갛게 단 부젓가락을 꺼내어 들고 있으면, 부젓가락이 식어감에 따라 주위의 공기가 더워진다. 이는 열이라는 것은 언제나 뜨거운 물체로부터 차가운 물체쪽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부젓가락과 주위의 공기가 같은 온도로 되어 버린다. 즉 평형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부젓가락은 다시 새로운 에너지를 소비하여 달구기 전까지는 열을 이용하여 유익한 일을 할 수 없다.
이상과 같이,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를 모두 소비하여 사용할 수 없는 에너지가 최대의 상태가 된 것을 엔트로피라고 한다. 열역학법칙에 의하면 이 지구상의 모
든 에너지의 총화는 일정한데 그것은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사용할 수 없는 것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다. 그런데 현대의 세계는 진보라는 명제 아래 한정된 에너지를 최대한 많이 사용하여 엔트로피를 증가시키고 있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세계의 모든 존재는 생기는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느는 것도 아니고 주는 것도 아닌 일정한 총화인데 인간의 욕망은 끊임없이 이것을 사용할 수 없는 에너지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형성된 엔트로피의 법칙은 이와 같이 이미 2,500여년 전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설하신 가르침에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부합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보의 실상을 더듬어 보면서 인류와 생명의 미래를 살펴보고자하는 것은, 엔트로피의 증대를 가져온 현대문명의 오류에서 벗어나 중도(中道)의 세계를 지향한 부처님의 말씀을 지금 곧 실천하기 위함이다.
모든 생물은 일종의 제국주의자
모든 생명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로운 에너지의 흐름이다. 이 흐름을 부자유스럽게 만드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다. 인간은 스스로 욕망을 채우기 위해 에너지의 흐름을 자기 자신과 같은 종류의 것으로 바꾸어 버리고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한 인간을 1년 동안 양육하는 데는 3백 마리의 송어가 필요하다. 또 3백 마리의 송어는 9만 마리의 개구리를, 9만 마리의 개구리는 2천 7백만 마리의 메뚜기를, 그리고 2천 7백만 마리의 메뚜기는 1천톤의 풀을 먹어야 한다. 따라서 한 인간이 1년동안 고도의 질서를 유지하여 가는 데는 메뚜기 2천 7백만 마리분 내지는 풀 1천톤분의 에너지가 필요한 것이다.
이외에도 현대사회의 인간은 좀더 안락하고 편안하게 삶을 살고자 더욱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 미국의 중산 계급의 경우 1인이 소비하는 에너지가 제 3세계 최하층민 2백명이 생산하는 에너지와 비슷하다고 한다.
모든 생물은 일종의 제국주의자와 같은 것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자기 자신 또는 자신과 같은 종류의 것으로 바꾸어 버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식물이나 동물의 경우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문명을 갖고 있지 못하여 에너지의 흐름을 그런대로 자연 상태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인간은 문명의 이기나 도구를 이용하여 이것을 부자유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1년간 1천톤분의 풀에 해당하는 에너지만 있어도 충분한 삶이 되는 데도 무려 이십만 톤분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현재의 문명이 과연 진보인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기술은 기술을 낳고 부작용을 낳는다
근대의 세계관에 의하면, 역사는 착실히 진보해 가고 있으며 그것은 새로운 도구와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이룩되고 있다고 한다. 세계는 이것을 능률화라고 하며 이를 통해 인간은 안전하고 쾌적한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은 자유로운 시간을 갖게 되어 이전보다 더 우월한 도구와 기술을 발명하게 되고 그 결과 더욱 많은 여유와 여가가 생겨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 즉 테크놀러지가 과연 인간이 꿈꾸는 것처럼 ‘끊임없는 성장’을 계속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낙관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지구상의 에너지가 고갈된다고 해도 첨단 우주과학 문명의 개발로 다른 혹성의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끊임없는 성장’ 이 지속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는 요원한 실정이다. 현재 지구상에서 단지 6일 동안에 태어난 수 만큼의 인류를 우주에 보내는 데도, 미국의 국민총생산액에 해당하는 비용이 든다고 한다. 또 만약 그 비용을 들여 보낸다고 해도 지구에 가장 가까운 혹성(인류가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이 있는 혹성)까지 가는 데도 10광년이 걸린다고 한다. 또한 거기까지 가는 기술은 현재 상태로는 불가능하고 기술의 진보 상태로 보아서 1백년 후에나 가능한 이야기라고 한다. 따라서 우선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는 현재의 기술과 에너지 자원 한계에서일 뿐이다. 지난호에서 보았듯이, 이러한 차원의 기술 개발은 좀더 많은 양의 에너지를 빨리 생산할 수 있는 진보를 가져왔지만, 그로 인해 인류는 환경의 파괴라는 회복할 수 없는 댓가를 치뤄야만 했다. 여기에 대해 과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지구 전체를 생각해 보면,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절대 온도가 6천도K인 자유에너지를 받아서 자연 현상을 진행시키거나 동•식물을 기르는 일 등을 하고 3백도K의 엔트로피를 지구 밖으로 방출함으로써, 지구 전체의 밸런스가 잡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술의 발달로 인해 지금 인류는 3백도K 이상의 앤트로피를 만들어 내는 구조를 갖추어 가고 있다. 만약 이 한계를 벗어나면 지구는 쓸모없는 에너지로 가득차게 되고 결국 지구의 환경은 파괴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인류는 기술의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스스로 자신의 발목을 잡는 덫을 키우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엔트로피 극복을 위한 정치 제도
현대 세계를 제 3세계 학자들은 신식민주의 시대라고 보고 있다. 다시 말하면 자본주의국가들이 자국의 고갈된 에너지를 충족하기 위해 경제적이나 정치적으로 제3세계를 종속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19세기 이후 미 •소 양 강대국과 거대한 다국적 기업들은 자국내의 경제적 공황과 에너지 고갈에 부심하였다. 그리하여 자원이 풍부한 제 3세계에 눈을 돌려 자국의 이익에 맞는 정권을 수립시키는 등의 신식민주의 정책을 펴나갔다. 결국 엔트로피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이의 극복을 위한 수단으로 신식민주의라는 정치제도를 낳게 되었으며, 이들국가는 이 정책을 강행하기 위해 군사 침략과 경제종속을 서슴치 않았으며 인권 유린을 일삼는 독재정권을 인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개인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소수의 집단을 구성하고 정치 제도를 확립하여 무소불능의 권력을 누리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가까운 예를들면 우리나라의 경우도 소수의 권력집단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 하수인을 키우고, 또 이들을 묶어두기 위해 대형의 경제 부정 사건같은 엄청난 비리를 저지른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현상 역시 정치적 엔트로피에 의한 결과이다. 자유스러운 에너지의 흐름은 물질뿐만이 아니고 정신이나 사회 제도에도 필요한 조건이다. 이것은, 모든 존재는 상의상관 관계에 있으므로 한 존재가 무절제하게 욕망의 증대를 꾀하면 다른 존재뿐만이 아니라 스스로의 생존까지도 위협받게 된다는, 연기의 진리를 그대로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