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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초와 수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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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동화 - 정호승 1999년 03월 205호
어느 따뜻한 바닷가 가까운 산골짜기에 바위 하나가 살고 있었다. 바위는 자신을 늘 행복한 바위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자신의 몸 윗부분에 난초 한 송이가 자라고 있었고, 늘 골짜기의 물어 흐르는 몸 아랫 부분에는 수선화 한 송이가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위는 그런 자신을 늘 아름다운 존재라고 생각했다.
“이봐, 이 세상 바위 중에서 누가 가장 아름다운 줄 아니? 바로 나야. 내가 가장 아름다워 . 넌 뭐야? 켜켜이 먼지만 쌓여 있고, 기껏해 봐야 솔잎 몇 잎 떨어져 있는 게 고작이니. 도대체 그게 무슨 꼴이니?”
그는 주위의 다른 바위들에게 늘 자신을 자랑했다. 그러면서 은근히 지나가는 바람과 햇살에게 까지 자신을 자랑할 때도 있었다.
“햇살아, 날 봐. 이 얼마나 아름답니. 바람아, 넌 아마 어딜 가도 나 만큼 이름다운 바위는 볼 수 없을 거야. 난 저 난초와 수선화만 보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바람과 햇살은 그런 말을 하는 바위가 가소로웠지만, 그의 순수한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래, 맞아. 넌 참 행복한 바위야.”
바위는 바람과 햇살에게까지 그런 말을 듣자 자신이 더없이 행복했다.
그러나 바위와는 달리 난초의 마음을 그렇지 않았다. 난초는 부드러움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는 딱딱한 바위 틈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자신이 무척 싫었다. 무엇보다도 갈증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해가 떠오르고 아침이슬이 말라 버리면 하루종일 물 한 모금 얻어먹기 힘들었다. 어쩌다가 비라도 오는 날이면 목을 축일 수 있었으나 비가 오는 날은 드물었다. 더구나 요즘은 건조주의보가 내린 데다 산불이 자주 나 불에 타 죽을까 봐 겁이 났다.
난초는 바위 밑 물가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수선화가 부러웠다.
“수선화야, 넌 어떻게 물 속에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되었니? 난 참 네가 부러워.”
바위는 길게 고개를 뻗어 부러운 눈초리로 수선화를 바라보았다.
“아니야, 난 오히려 네가 부러워 . 난 늘 물에 젖어 있는 내가 싫어. 칙칙하고 너무 음산해. 난 늘 밝은 햇살에 드러나 있는 네가 부러워.”
바위는 수선화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수선화가 자기처럼 자신을 싫어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날 밤. 난초는 곰곰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자신이 이 딱딱하고 갈증 나는 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마자 난초는 수선화에게 말했다.
“수선화야, 우리는 서로 부러워하고 있잖아. 그래서 하는 말인데, 우리 서로 자리를 바꾸면 어때? 그러면 서로 부러 할 필요가 없잖아. 서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도 있고.”
“좋아, 좋아. 나도 어제 밤에 곰곰 생각해 보았어. 마침 나도 그런 제의를 하려던 참이었어.”
난초와 수선화는 서로 자리를 바꾸었다. 수선화가 뿌리를 내리고 있던 자리에 난초가 뿌리를 내리고 난초가 있던 자리에 수선화가 뿌리를 뻗었다.
“아, 이제야 좀 살 것 같군. 목이 말라 죽을 뻔했네.”
난초는 너무나 신이 나서 마음껏 물을 들이켰다.
수선화 또한 물 속을 벗어나자 너무나 좋았다. 늘 물속에 처박혀 칙칙하기만 하던 자신의 몸에 햇살이 닿자 자신이 너무나 눈부시고 아름다워 보였다.
시간은 지났다. 산에 들에 봄은 오고 있었다. 바위는 이어 오면 자신이 더욱 아름다워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난초의 은은한 향기와 수선화의 그 빼어난 자태에, 자선마저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위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바위는 자신의 온몸을 살펴보았다. 바위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난초가 있어야 할 자리에 수선화가 있고, 수선화가 있어야 할 자리에 난초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차츰 시들어 죽어가고 있었다. 이미 봄이 왔으나 수선화의 꽃줄기 끝에 꽃은 피지 않았으며, 난초 또한 꽃대가 올라오다가 도중에 시들어 버리고 말았다.
바위는 이들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난초의 향기를 맡고 싶었고, 수선화의 빼어난 자태를 보고 싶었다. 그들이 없으면 자신도 아름다워질 수 없다는 것을 빼는 잘 알고 있었다.
바위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버지처럼 준엄하게, 어머니처럼 부드럽게 말했다.
“수선화야, 그리고 난초야, 본디 네 자리로 돌0}가거라. 누구나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데서부터 삶은 시작되는 것이야. 제자리를 지키지 않는 삶에는 언제나 죽음의 냄새가 나는 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