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점득이네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장편 연재동화 - 권정생 1988년 05월 75호
승호가 총살당한 골짜기 안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만약 누구라도 들어가 시체를 만지기만 해도 죽여버린다고 했다. 몇 사람이 죽었는지, 똑똑히 누가 죽었는지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다만 미군부대를 습격한 빨갱이들은 모조리 잡아다 죽였다고 큰소리치고 있었다.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외숙모만을 저녁 무렵에 태호네 아버지께 부탁해서 공동묘지에 묻었다. 달구질도 안하고 대충 흙으로 덮어만 뒀을 뿐이다.
어머니는 눈물도 나지 않았다. 4년 전에 압록강에 아버지를 떠내려보내고부터 죽어간 사람들이 헤아릴 수도 없이 많았다.
‘오빠는 용케 피하셨어요. 승기도 잘 따라가서 살아남았으니 다행이구나.’
외갓집은 이렇게 해서 주인없는 빈 집이 되었다. 점득이네와 판순이네는 그 빈집에 모여 가슴을 죄며 밤을 맞이했다.
“할머니, 오늘은 안방에서 모두 함께 지내요.”
어머니는 썰렁해진 방안이 이상하게 싫었다.
“그렇게 합시다. 어차피 잠도 잘 수 없을 것 같구려.”
아이들도 모두 안방으로 모였다. 그러나 종대는 머뭇거리다가 건넌방으로 갔다.
“점득아, 우리 둘이 건넌방에서 자자.”
“그래.”
점득이도 선뜻 종대를 따라서 건넌방으로 갔다.
“너희 승호 형 정말 죽었을까?”
종대가 소근거리듯 물었다. 건넌방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둘은 바싹 얼굴을 마주했다
“죽었을 거야. 빨갱이는 잡히는 대로 모조리 죽이기로 했다는구나.”
점득이는 고개를 떨구었다. 승호 형이 군인들에게 포승줄로 묶여 개처럼 끌려가던 모습이 얼른 떠올랐다.
“우리 한번 찾아가 볼까?”
종대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
“지금 말이니?”
“그래. 아무도 없을 때 가서 살펴보자꾸나. 틀림없이 죽었는지 죽지 않았는지.”
“죽지 않을 수도 있을까?”
“보지 않고 어떻게 아니.”
점득이는 혹시나 승호 형이 살아났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다.
“지금 가보자.”
종대는 미리 준비라도 해놓은 것처럼 광솔가지와 성냥개비 몇 개를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둘은 방문을 열고 소리 안나게 살금살금 걸어나갔다. 어머니나 할머니께 들키면 못가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밖은 어두웠다. 초생달이 져버린 지 오래였다
사립문을 나서자 점득이는 무서워서 걸음이 잘 걸어지지 않았다. 다리가 떨리고 머리칼이 쭈삣거렸다.
“종대야.”
점득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다.
“왜 그러니?”
종대가 뒤따라오는 점득이를 돌아다 봤다. 점득이는 숨을 크게 쉬었다.
“아냐, 어서 가.”
점득이는 오금에 힘을 꽉 주었다. 떨리던 다리가 꿋꿋하게 힘이 생겼다. 아랫배에도 힘을 주고 가슴과 목에도 힘을 줬다. 이제는 신기하게 겁이 모두 달아났다.
마을 끄트머리 달구지길을 지나 조그만 개울물을 건녔다. 버드나무와 등나무가 얽힌 숲길이었다. 산모롱이를 두 개 지나면 우묵한 골짜기가 나타난다. 점득이 가슴이 또 다시 방망이질했다. 바스락 소리에도 가슴이 철렁하는 것이었다. 앞서가는 종대는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앞서서 걷기만했다. 으례 점득이가 뒤에 따라오려니 생각하는 눈치였다.
달구지길을 비껴나 골짜기는 작은 오솔길이었다. 아직 맨발에 고무신이 무척 미끄러웠다. 풀덩쿨에 걸리기도 하고 억새풀에 발등이 부벼져 따끔따끔 쓰리었다. 그러나 점득이는 점점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어디까지 왔는지 앞서가던 종대가 우뚝 멈추어섰다. 종대는 호주머니에서 성냥을 꺼내어 불을 켰다. 광솔가지에 불을 옮기려니 성냥개비는 금방 다 타버리고 말았다. 다시 한 개피를 켰다. 광솔불은 이번에는 쉽게 옮겨 붙었다.
종대가 광솔불을 치켜들고 근처를 기웃거렸다. 광솔불에 비추어진 둘레는 더 무서웠다. 조그만 불빛은 억새풀에 열기설기 누워 있는 사람을 똑똑히 비추었다.
점득이는 얼른 종대의 왼쪽 팔을 붙잡았다.
“이봐! 모두 이렇게 죽었잖니?”
종대가 속삭였다.
“……”
점득이는 숨이 막히도록 가슴이 뛰었다. 거기 누워 있는 인민군들이 모두가 승호 형만 같았다. 누가 누군지 어떻게 찾아내고 가려낼 수 있는지. 할 수 있었대도 그건 부질없는 짓이다. 승호 형만이 소중한 목숨이 아니기 때문이다.
종대는 시체의 얼굴 하나 하나를 살피며 광솔불을 낮추었다 올렸다 했다. 불빛이 일렁거리면 그림자도 흔들렸다. 숲은 검고 흰 빛이고 음산했다. 점득이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종대야 그만 돌아가자.”
“너희 형 찾지 못했잖니?”
“찾지 않겠어.”
점득이는 힘없이 대답했다.
“왜?”
“찾아서 뭘하겠니? 형은 이렇게 죽었는데, 그냥 가.”
종대는 말없이 점득이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광솔불을 꺼버리고 골짜기를 돌아나왔다.
집에 돌아와서 점득이는 이불 속에 머리를 파묻고 흐느껴 울었다.
“승호 형, 이제 알았어. 세상엔 형만큼 착하고 훌륭한 사람이 많이 있다는 걸…”
다음날 아침, 가을 햇빛이 유난히도 밝게 비추었다. 어젯밤 골짜기의 주검 같은 건 아무렇지 않게 하늘도 깨끗하고 들판도 향기로웠다.
그 북새통에서도 들판의 곡식은 누렇게 익어갔다. 자식을 잃고, 남편을 잃고, 끌려가고 잡혀간 사람들을 마음껏 부르지도 찾지도 못한 채, 그래도 남아 있는 사람들은 살기 위해 일을 했다. 아침 일찍 낫을 들고 들로 나가려는 사람들이 집을 나서는데, 철모를 쓴 군인들이 동네 이장님을 앞세우고 찾아왔다.
“오늘은 들에 가지 말고 모두 동쪽 강둑으로 나오시오. 나올 땐 깨끗한 흰옷으로 갈아입으시오.”
“무슨 부역인데 옷을 갈아입고 오라는 거요?”
“부역이 아니라, 누가 와서 연설을 하니까 한 집도 빠짐없이 다 모이시오.”
“이상하기도 해라. 하얀 옷은 왜 입고 오라는 게지.”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더 이상 물어보지도 못했다. 인민군이든 국군이든 이런 전쟁시엔 시키는 대로 따라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에 말없이 듣기만 할 뿐이었다.
점득이네 어머니도 지쳐서 가누지 못하는 몸이지만 살아남기 위해 그들의 말을 따라야 했다. 할머니와 함께 평상시에 입는 무명옷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엄마, 우리도 흰옷 입어야 하는 게 아니야?”
점례가 까만 통치마를 내려다 보고 물었다.
“너희들은 가지 않아도 될 거야. 그냥 집에서 쉬고 있거라.”
“난 흰옷도 없고 안 갈테야. 점례야 우리 둘은 가지 말자.”
판순이가 웬 일인지 어머니 말에 잘 됐다는 듯이 좋아했다.
“그래, 판순이하고 점례는 집 보고 있거라.”
할머니도 그렇게 하라고 이르고 종대와 점득이만 데리고 집을 나섰다. 점득이는 어머니한테 바싹 다가갔다.
“엄마.”
“어엉?”
“어젯밤에 승호 형한테 갔다 왔어.”
“……”
어머니는 걷던 걸음을 멈추었다.
“인민군이 삼십 명도 넘게 죽었어.”
“그만, 어서 가자.”
어머니는 점득이가 말하는 것을 일부러 막아 버리는 듯했다.
달구지길로 모여든 사람들이 점점 불어나서 줄지어 걸어 가고 있었다. 저쪽 용바위골 쪽에서도 사람들은 모두 흰옷으로 갈아입고 모여들었다.
강둑에 이르자 벌써 장터마을 사람들이 와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점득이는 목사님을 찾았다.
‘목사님은 탄실이 누나 때문에 가까스로 살아나셨다고 했지.’
그리고 그 탄실이 누나는 인민군을 따라 북으로 가버렸다.
점득이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찾았지만 목사님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어머니한테 돌아왔을 때는 강둑 사람들의 숫자는 오백이 넘을 듯했다.
“엄마, 연설을 한다더니 높은 사람은 아무도 없잖어?”
“글쎄다. 기다리면 요겠지.”
판순이네 할머니는 강둑 풀밭에 주저앉았다.
“점득이네 어머니도 여기 앉아요. 다리 아프잖우.”
어머니는 할머니 곁에 치마자락을 여미며 앉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강둑에 앉기도 하고 서성대기도하면서 패를 ri웃거리며 누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벌써 한낮이 가까와지고 있었다. 햇빛은 따갑게 쬐고 어쩐지 사방이 조용했다. 사람들은 모두 불안한 마음으로 말이 없었다. 이 며칠 동안 끔찍한 일들을 겪은 뒤여서 저마다 가슴을 조이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점득이 손을 꼭 쥐었다.
“어젯밤 어딜 갔다 왔니?”
“승호 형한테.”
“거길 어떻게 너 혼자 갔댔니?”
“종대하고 둘이서 갔어. 골짜기에 모두 총맞고 쓰러져 죽어 있었어.”
“……”
어머니는 점득이 손을 더욱 힘을 주면서 꼭꼭 쥐었다.
“오늘밤엔 엄마하고 같이 가봐요.”
“밤에 가서 승호를 찾을 수 있겠니?”
“아니야, 거기 죽어 있는 사람 모두 승호 형 같았어. 모두 하나같이 …”
“……”
어머니는 말없이 하늘을 쳐다봤다. 파란 하늘이 아득히 슬프게 펼쳐져 있었다. 곁에 앉아 있는 할머니는 종대의 팔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
비행기 소리가 난 것은 그때였다. 하지만 비행기 소리는 너무 많이 듣고 있어서 별다른 생각은 하지 못했다. 모두가 저절로 비행기 소리가 나는 쪽 하늘을 쳐다봤다. 하얀 날개가 햇빛에 반들거리며 비행기는 소리보다 앞서 강둑 바로 위에 와서 휘어지듯 둥그렇게 맴을 돌았다. 한 대, 두 대, 석대, 넉 대, 모두 넉 대의 비행기가 꼭같이 재주라도 부리듯이 맴을 돌았다.
사람들의 눈이 맴을 도는 비행기를 따라서 돌았다. 커다란 천둥소리 같은 비행기 소리와 사람들 바로 머리 위까지 낮게 내려온 넉 대의 비행기는 어쩌면 미리 그렇게 계획해 놓은 것만 같았다.
사람들은 와락 겁이 났다. 손으로 귀를 막고, 앉아 있던 사람들은 앉은 자리에 몸을 숙이며 엎드렸고, 서 있던 사람도 넘어지듯 몸을 풀밭으로 숨겼다. 그러나 그건 쓸데없는 짓이었다. 비행기는 흰옷 입은 사람들의 무더기를 향해 곤두박질치며 폭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온 하늘과 땅이 흔들리고 깨어지는 소리 속에 사람들의 아우성이 터졌다. 구름처럼 일어나는 불길과 치솟는 흙먼지와 돌멩이가 강둑을 금새 지옥으로 만들었다.
“아이고… 아이고…아이고… !”
“아이고오!”
“아이고오!”
점득이는 어머니 손에 이끌려 일어났다가 다시 주저앉아 온통 뒤흔드는 비행기 소리와 폭탄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달아나려 애썼다.
“엄마아!”
종대와 할머니가 넘어지고 엎어지고 사람들은 이리 저리 흩어졌지만 비행기는 사냥개처럼 사람들을 물고 늘어졌다.
그러나, 그 소란이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었다. 넉 대의 비행기는 번갈아 아래로 곤두박질치며 다시 위로 치솟으면서 강둑의 흰옷 입은 사람들이 모두 쓰러져 꼼짝 않을 때까지 폭격을 퍼부었다.
비행기가 떠난 다음, 강둑은 그대로 폐허가 되어 버렸다. 피투성이 흙투성이가 된 사람들이, 갈아 엎어놓은 논바닥처럼 널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