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삿세 왕 수결경」는 부자의 만등(萬燈)과 빈자의 한동(一燈)에 관한 공덕이 드러나 있다. 난다, 그녀는 가난한 여인으로 등공양을 올릴 기름값이 없었다. 구결해 얻은 두푼을 들고 백겁에 한번 만나기도 어렵다는 부처님께 공양 올리려는 지성으로, 이에 감동한 기름집 주인으로부터 다섯푼어치의 기름을 얻는다.
궁궐문에서 기원정사에 이르기까지 아삿세 왕이 밝혀 놓은 등불 곁에 난다의 등도 불이 밝았다.
“내 후일 세상에서 깨달음을 얻게 된다면 이 기름으로써 온 방에 불을 밝혀 꺼지지 말지어다.”
오직 한가닥 굳은 심지로 발원한 터인지라, 아삿세 왕의 만등이 바람에 스러지고 기름이 다하여도, 가난한 여인 난다의 5푼어치 기름은 더욱더 생명력있는 빛을 발하며 밤의 어둠을 온통 밝히운다.
오랜 옛날 불교가 이 땅의 민족종교로서 세인들의 생활 속에 녹아 었을 때 경향 각지에서 부처님 오신 날을 민족의 대축제로 삼아 가가호호에 등불을 밝혔으니 이를 등석(燈夕)이라 전한다. 지금처럼 전기도 없었던 시절이니 짙은 어둠을 뚫고 빛을 발하는 연등의 자태는 가히 일품이었겠다.
이렇듯 민족종교로서의 불교가 우리 민중 속에 녹아 있을 때는 부처님 오신날에 등을 밝히는 것 이상으로 연등의 깊은 의미는 바로 이 땅 중생의 이정표였고 삶 그 자체였다. 그러나 불교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종교로서의 자기 본분을 다하지 못하자 부처님의 진리는 저 세상의 진리로 변하여 버렸다. 그래서 불교는 모든 중생을 제도하지 못하고 시대정신도 포함하지 못한 채 연등 행사는 몇몇 불자들에게만 형식적인 축제로 전락했다. 현실의 각박한 생활 속에서 부처님 오신날만이라도 ‘오심’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고 잊혀져 가고 있는 인간의 진정한 가치를 다시 일깨우는 날이 되기보다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즐기는 요긴한 공휴일로 전락했을 따름이다.
진리는 영원한 것이다. 그러나 그 진리를 틀림없는 진리라고 고집할 필요는 없다. 누가 진리라고 명명하지 않더라도 또한 서로가 진리의 기준을 세워 놓고 논쟁하지 않더라도 진리임을 믿는 모든 이가 스스로 그 진리를 행동으로 옮길 때 그것은 진리인 것이다. 이러한 진리는 역사속에서 역사와 더불어 존재하며, 역사의 방향을 이끌고 나아가는 시대 정신과 통한다. 또한 이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완전한 자유를 실현시켜 내는 가치관을 말한다.
이제 불교가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겸허한 반성을 하여야만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참된 지혜의 등불을 켤 수 있을 것이다. 이 땅의 모든 중생들이 연등을 밝혀도 난다처럼 진정한 마음이 그 속에 녹아들어가 있지 않다면 그것은 허망한 것이요 중생을 미혹케 하는 부질없는 것에 불과할 따름이다.
시중에 나도는 등을 사서 가족의 이름을 써넣어 복을 비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 마디마디에 붉고 푸른 물을 들이며 연잎을 말고 한편에서는 한지로 틀을 감싸 연잎을 붙이면서 불교의 참진리, 인생의 참진리를 서로 주고 받는다면 비록 어설픈 작품일지라도 그것은 진정한 연등인 것이다. 그 연동에서 빛을 발할 때 자비의 행위도 같이 빛을 발하며, 현대인에게 잊혀져 가는 인간 공동체의 자애심을 일깨워 모든 탐욕과 인간 상실의 행동을 사라지게 하고 마음 속에서 꽃피워 나오는 자비의 정신이 자신으로부터 이웃, 민족, 세계 속으로 퍼져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