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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등의 참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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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이지광 1988년 05월 75호
꽃망울들이 흠뻑 터지는 계절이다. 싱그런 신록들이 저마다의 푸르름을 피워내는 눈부신 봄의 계절에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하시며 룸비니 동산, 무수 향기 속에서 부처님이 오셨다. 이천오백년 전부터 지금까지 지혜의 역사를 형성함에 거름이 되었던 그분의 진리•지견의 실천행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더욱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
이즈음이면 불자들은 경축 분위기에 젖는 그분의 오심을 기뻐하며 다시금 새로운 각오로써 불자의 역할을 되새겨 보는 귀한 시간들이다.
진흙탕 속에서 가장 고귀한 생명을 탄생시키는 연꽃처럼 오탁 악세의 현세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화현하는 일, 그리하여 불국정토가 바로 이곳, 우리가 발디디고 있는 한반도에 현현하는 일이 우리의 사명임을 다짐하게 된다.
불도량은 형형색색의 연등으로 장관을 이룬다. 시청앞 분수대로부터 각 사찰의 진입로에 이르는 걸은 눈이 부시도록 이름다운 밤의 정경들이다.
무명의 세상에 부처님의 진리로 불을 밝한다는 상징적 의미 속에 불타의 지혜광명을 회복하고자 하는 만중생의 원(願)이 서린 볍등(法燈)이다. 그러나 1천만 불자 가운데 실제 이 깊은 뜻을 음미하며 둥불을 켜는 불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대웅전의 불전은 크고 비싼 연등의 순으로 걸린다. 보시액의 많고 적음으로써 공덕의 대소를 가늠하며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행사일 따륨이다. 이는 대승적 이념 속에 건강한 민주사회로의 기원과 진정한 통일에의 염원으로 연등을 달기보다는 가족의 생년월일을 적어 걸며 가내의 만사형통을 기원하기 때문이다.
사찰의 입장에서는 어떠한가. 사찰 재정 확보를 위한 연중 큰 사업으로 여기고 있지 않은가.
“죄송합니다, 5천원 이하로는 판매하지 않읍니다.”
속바지춤에서 꼬깃꼬깃한 천원짜리 지폐 두 장을 내미는 보살에게 ‘부처님 오신날’ 연등접수를 받던 종무소 아기보살은 두 손을 내어젓는다.
가난한 사람들, 그들은 부처님 오신 날, 이 기쁜 날에 등조차 켤 수 없는 소외받은 이웃이 되어 있다. 오로지 불타의 진리에 가슴 느껴워하는 것 하나만 가지고는 그 분의 오심에 등공양을 올릴 수는 없는 일일까.
부처님은 어떻게 오셨는가. 돈이 있는자, 권력이 있는 자들 곁에 오셨는가.

「아삿세 왕 수결경」는 부자의 만등(萬燈)과 빈자의 한동(一燈)에 관한 공덕이 드러나 있다. 난다, 그녀는 가난한 여인으로 등공양을 올릴 기름값이 없었다. 구결해 얻은 두푼을 들고 백겁에 한번 만나기도 어렵다는 부처님께 공양 올리려는 지성으로, 이에 감동한 기름집 주인으로부터 다섯푼어치의 기름을 얻는다.
궁궐문에서 기원정사에 이르기까지 아삿세 왕이 밝혀 놓은 등불 곁에 난다의 등도 불이 밝았다.
“내 후일 세상에서 깨달음을 얻게 된다면 이 기름으로써 온 방에 불을 밝혀 꺼지지 말지어다.”
오직 한가닥 굳은 심지로 발원한 터인지라, 아삿세 왕의 만등이 바람에 스러지고 기름이 다하여도, 가난한 여인 난다의 5푼어치 기름은 더욱더 생명력있는 빛을 발하며 밤의 어둠을 온통 밝히운다.
오랜 옛날 불교가 이 땅의 민족종교로서 세인들의 생활 속에 녹아 었을 때 경향 각지에서 부처님 오신 날을 민족의 대축제로 삼아 가가호호에 등불을 밝혔으니 이를 등석(燈夕)이라 전한다. 지금처럼 전기도 없었던 시절이니 짙은 어둠을 뚫고 빛을 발하는 연등의 자태는 가히 일품이었겠다.
이렇듯 민족종교로서의 불교가 우리 민중 속에 녹아 있을 때는 부처님 오신날에 등을 밝히는 것 이상으로 연등의 깊은 의미는 바로 이 땅 중생의 이정표였고 삶 그 자체였다. 그러나 불교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종교로서의 자기 본분을 다하지 못하자 부처님의 진리는 저 세상의 진리로 변하여 버렸다. 그래서 불교는 모든 중생을 제도하지 못하고 시대정신도 포함하지 못한 채 연등 행사는 몇몇 불자들에게만 형식적인 축제로 전락했다. 현실의 각박한 생활 속에서 부처님 오신날만이라도 ‘오심’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고 잊혀져 가고 있는 인간의 진정한 가치를 다시 일깨우는 날이 되기보다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즐기는 요긴한 공휴일로 전락했을 따름이다.
진리는 영원한 것이다. 그러나 그 진리를 틀림없는 진리라고 고집할 필요는 없다. 누가 진리라고 명명하지 않더라도 또한 서로가 진리의 기준을 세워 놓고 논쟁하지 않더라도 진리임을 믿는 모든 이가 스스로 그 진리를 행동으로 옮길 때 그것은 진리인 것이다. 이러한 진리는 역사속에서 역사와 더불어 존재하며, 역사의 방향을 이끌고 나아가는 시대 정신과 통한다. 또한 이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완전한 자유를 실현시켜 내는 가치관을 말한다.
이제 불교가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겸허한 반성을 하여야만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참된 지혜의 등불을 켤 수 있을 것이다. 이 땅의 모든 중생들이 연등을 밝혀도 난다처럼 진정한 마음이 그 속에 녹아들어가 있지 않다면 그것은 허망한 것이요 중생을 미혹케 하는 부질없는 것에 불과할 따름이다.
시중에 나도는 등을 사서 가족의 이름을 써넣어 복을 비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 마디마디에 붉고 푸른 물을 들이며 연잎을 말고 한편에서는 한지로 틀을 감싸 연잎을 붙이면서 불교의 참진리, 인생의 참진리를 서로 주고 받는다면 비록 어설픈 작품일지라도 그것은 진정한 연등인 것이다. 그 연동에서 빛을 발할 때 자비의 행위도 같이 빛을 발하며, 현대인에게 잊혀져 가는 인간 공동체의 자애심을 일깨워 모든 탐욕과 인간 상실의 행동을 사라지게 하고 마음 속에서 꽃피워 나오는 자비의 정신이 자신으로부터 이웃, 민족, 세계 속으로 퍼져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