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지금은 위기의식의 시기, 내년은 종단개혁 20주년의 해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해인리포트 - 해인 편집실 2013년 12월 382호

어느새 12월이다. 오랜 경기 침체 탓인지 한 해의 마지막 즈음이면 으레 나타나기 마련인 분주함이 없다. 차분해서 좋긴 하지만, 가라앉은 분위기를 떨치고 싶어지기도 한다. 지나간 시간들이 아득하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지나왔는가.

올해 우리 종단은 34대 총무원장선거를 치렀다. 자승스님과 보선스님 등 다섯 스님이 경쟁을 벌였고, 자승스님이 33대에 이어 재임에 성공했다. 경쟁이 치열했던 탓인지, 경쟁이라는 상황이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축하의 분위기 한편으론 집행부의 행보를 지켜보겠다는 심사가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경선을 치르면서 자연스럽게 종단정치에서 여-야 구도가 형성되었다. 선거 후 처음 열린 중앙종회가 매우 치열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격돌은 없었다. 그러나 집행부에 대해서 예전과는 다르게 따질 건 꼼꼼하게 따지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는 평가다.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11월 8일 취임식을 거행함으로써 대내외에 새 출발을 알렸다. 이 취임식에서 자승스님은 “우리 사회는 조계종이 단지 구성원만을 위한 종교 단체에 머물기를 바라고 있지 않는다”며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출가 수행자와 불자들은 한국불교가 지닌 대승(大乘)의 가치를 실제 구현해야 할 역사적 의무, 시대적 소명을 지니고 있음을 깊이 깨달아야 하며 제34대 총무원 집행부는 이러한 시대적 소명을 앞장 서 실행하고 이루어내겠다”고 말했다. 대승의 가치를 구현하겠다고 천명했다.

자승스님은 조계사 성역화도 강조했다. “조계사 주변은 경복궁과 인사동, 북촌 등 서울을 대표하는 전통과 근현대 문화가 어우러진 지역”이라며 조계사를 시민과 함께 하는 역사 문화 공간으로 조성하는 일은 모두가 지혜를 모으고 힘을 합쳐 이루어내야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취임사에서 특정한 사업의 추진을 거론한 것에 대해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원로의장 밀운스님과 중앙종회의장 향적스님의 연설도 의례를 넘어선 것이어서 관심을 모았다. 교계의 한 언론은 “격려사와 축사를 통해 ‘청정•투명‧혁신’을 ‘주문’해 관심을 모았다. 취임식이니만큼 축하의 말을 건넸지만, 의례적인 데 그치지 않았다”고 평가하며 연설 내용을 분석했다. 새 총무원장에 거는 기대가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요청하는 어법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예전의 격려사와 축사와는 분명히 다르다. 이 같은 요청에 자승스님이 어떻게 부응할지 관심을 모은다. 기사의 일부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밀운스님은 334자 분량의 짧은 격려사에서 절반 정도를 의견 제시에 할애했다. 간략하지만 분명한 메시지를 담았다. 밀운스님은 격려사 첫 문장에서 “제34대 총무원장 취임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며 짧은 축하의 말에 이어 곧장 “자승스님은 이미 제33대 총무원장을 역임하여 종단 대소사의 문제를 잘 파악하고 계시리라 믿는다” “격려사를 대신하여 몇 가지 의견을 드리니 임기 동안 적극 추진하여 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밀운스님의 주문 사항은 ▶현실에 맞는 승가청규를 제정하여 청정한 승풍 진작 ▶투명한 사찰운영을 통해 불자들의 신뢰를 회복 ▶승가복지를 통해 스님들이 더욱 수행에 정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세 가지였다. … 향적스님의 축사는 “…민주적인 선거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에서 나타나듯 사안을 제시하고 주문하는 어법을 사용했는데, 축사에 그치지 않고 총무원장이 해야 할 일을 자승스님은 물론 대중들에게 전달하려는 의지를 담아낸 것으로 볼 수 있다.“[불교포커스, ‘밀운‧향적스님, 의례 벗어던진 취임식 ‘파격’연설‘, 2013. 11. 8.]

올해 또 하나 기억해야 할 사건은 한국전쟁 정정 60주년 한반도 평화대회가 범어사를 중심으로 해서 열렸다는 것이다. 남북관계가 극도로 경색된 상황에서 전쟁과 평화의 의미를 새기는 여러 세미나와 대회가 지난 3월 이후 9월까지 이어졌다. 한반도 평화대회는 지난 9월 27일 부산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열린 대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는데, 이날 전국에서 모인 5만 불자들은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한 부산 선언’으로 회향했다. 부산 선언은 정전 60주년을 맞아 가장 활발하게 평화운동을 펼친 불교계는 물론 이후 우리 사회에 기억될 문건으로 남을 것이다. “… 이제 우리는 지난날을 대오각성하고 ‘위로와 경의’ ‘화해와 상생’ ‘미래와 희망’이라는 인류번영의 꽃을 한반도와 동북아 그리고 세계에 만개시켜야 합니다. 공동번영을 위해 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의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 차별과 분별의 벽을 넘어서야만 진정한 평화와 자유가 도래합니다. 한국전쟁 정전협정 60주년을 보내며 우리는 지혜와 자비의 가르침을 본받아 깊은 불신과 상처를 극복하고 아시아의 공동번영과 전쟁 없는 지구촌 건설을 위해 매진할 것을 선언합니다.”

내년에 조계종은 ‘94년 종단 개혁’ 20주년을 맞는 해이다. 종단 개혁은 조계종은 물론 한국불교 현대사에서 획기적인 전환의 계기로 기록되어 있다. 종단 개혁은 1947년 ‘부처님 법대로 살자’고 했던 봉암사 결사, 1962년 통합종단 출범과 함께 해방 후 조계종 3대 사건으로 평가된다. 서의현 당시 총무원장체제의 전횡과 정부에 대한 비자주적 행태를 사부대중의 궐기로 몰아냈다는 점에서 대중이 종단의 중심임을 보여주었다. 총무원은 권력기관이 아니며, 총무원장은 권력의 정점일지라도 종도들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 일대 사건이었다. 이런 의미와 함께 선거제도 개선, 교육원 ‧ 포교원을 별원화함으로써 종단의 초석을 다지고 사회에 회향하는 조계종의 기치를 세웠다.

종단 개혁 20주년을 맞는 가장 큰 의미는 무엇일까. 개혁정신의 계승도 의미있는 작업이겠지만, 지난 20년을 지나오면서 개혁 또한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94년 체제는 어느덧 구체제가 되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개혁 정신의 계승은 승단의 청정성을 회복하고, 공동체성을 복원하는 일이다. 이 과제를 이루기 위한 새로운 체제와 이에 맞는 인물들의 전진배치, 이것이 종단 개혁 20주년에 이루어야 할 합의다.

선거제도는 지난해 10월 총무원장선거를 치르면서 그 한계를 드러냈다. 제도로서의 생명을 다 했다. 종도들의 의사를 결집해내는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중앙종회의원과 교구선거인단이 뽑는 현재의 제도는 폐기되어야 한다. 더 많은 종도들이 참여해 종단의 대표를 뽑는 방안 또는 존경받는 원로와 그에 준하는 그룹이 지명하는 방식이든 합의를 통한 새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교육원과 포교원의 현재 모습으로는 조계종은 소수 종교로 전락하고 만다. 불을 보듯 뻔하다. 위기의식을 가져야 하는 긴급한 시기에 놓여 있다. 지금 조계종은 호교적‧포교적 관점으로 사회와 국민을 보고 있다. 불교에 무엇을 원하는가를 찾아내야 한다. 물어서 해답을 찾으려 해서는 찾을 수 없다. 말하지 않는 속에 스며있는 그것을 찾아내야 한다. 내년은 새 총무원장체제의 사실상 1차년도다. 94년 종단 개혁 20주년이 해이다. 새 기운이 흘러넘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