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중에 처음 내 마음을 사로 잡은 건 바로 타지마할이었다. 타지마할은 인도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유적지 중 하나이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리석 건물, 무굴제국의 제 5대 황제였던 샤 자한의 아내, 뭄따지마할의 무덤이다. 뭄따지마할에 대한 샤자한의 사랑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지혜와 총명함으로 사랑을 듬뿍 받던 그녀가 출산 도중 세상을 떠나자 샤자한은 머리가 하얗게 셀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아내에 대한 변치 않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던 그는 아내와의 약속(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을 지어줄 것과 그녀가 죽은 후에 다른 여인과 결혼하지 말라는 것)을 지키기 위해 역사상 유래가 없는 화려한 무덤을 건설하게 되었다. 타지마할이 불교 유적은 아니지만 정방형의 완벽한 건물로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만큼 인도 여행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장소이다.
인도 여행에서 특히 불교 성지순례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 곳은 바로 버스 안이다. 하루에 7~8시간은 버스로 움직여야 되고 가장 많이 버스를 이용한 날은 14시간동안 버스 안에서 보낸 적도 있다. 버스는 또 왜 이리 불편한지, 인도인의 체형에 맞게 만들어져서인지 다리 짧은 한국인들에게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버스 안에 있는 시간이 지겨운 것만은 아니다. 인도는 거리 곳곳이 볼거리로 가득했다. 특히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는 소, 힌두교인이 믿는 3대 신 중 하나인 시바신이 타고 다니는 것이 바로 \'소\' 라고 해서 인도인들은 소를 신성시 여긴다. 그러다 보니 소가 도로 한복판에 앉아버리기라도 하면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니다. 소가 비켜주기 전에는 차가 움직일 수도 없고, 거리 곳곳에는 배설물로 가득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힌두교인들은 소고기를 먹지 않고 이슬람교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하지만 서로가 믿는 신을 존중하고 분쟁을 막기 위해 두 종교 모두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먹지 않기로 했단다. 물론 먹을려고 하면 먹을 수는 있겠지만(힌두교인들은 돼지고기, 이슬람교인들은 소고기를 먹을 수 있음) 인도인들이 먹는 고기는 대부분 닭고기였다. 그러다 보니 우연히 닭을 보기라도 하는 날에는 왠지 가엾고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인도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어디일까? 수많은 사람들이 바라나시를 뽑는다. 바라나시는 인도가 가지고 있는 중첩된 이미지를 모두 품고 있는 3000년 고도(古都)이다. 혹자는 말한다. “바라나시를 보지 않았다면 인도를 본 것이 아니다. 바라나시를 보았다면 인도를 모두 본 것이다”라고... 그만큼 인도에서 바라나시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바로 인도인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문호인 마크 트웨인 역시 “역사보다, 전통보다, 전설보다 오래된 도시”라는 말로 바라나시를 압축했다. 우리는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작은 보트 위에 몸을 실었고, 저마다의 소망으로 작은 꽃잔등을 강물에 띄워 보냈다. 그 순간 잠시 침묵이 흐르는 듯하더니 저 멀리서 힘차게 떠오르는 태양을 볼수 있었다. 수많은 사상가들이 바라나시를 관통하는 강가에서 깨달음을 얻어서일까? 갠지스강에서 보는 태양은 유난히 붉고 강렬하게 느껴졌다. 일출 감상 후 뱃머리를 돌려 가트(강가와 맞닿아 있는 계단이나 비탈면) 주변으로 갔다. 바라나시에는 100여개의 가트가 조성되어 있는데, 빨래하는 곳 목욕하는 곳 각각 용도가 따로 있었다. 우리는 바라나시에서 가장 큰 화장터인 마니까르니까 가트를 보았다. 마침 화장이 진행 중에 있었는데 시신의 발하나가 나무토막 위로 뻗어 나와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뭐라고 말을 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한 무언가가 나의 내면을 자극했다. 얼마 전까지는 누군가의 가족이고 형제이고 친구였을 사람이 활활 타오르는 불꽃에 나무토막과 함께 힘없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 결국 한줌의 재가 되어 흩어질 우리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다시한번 인생의 무상함을 체험할 수 있었다.
우리가 수행하는 것이 부처님을 향해 걸어가고자 하는 것처럼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신 보드가야를 순례하기 위해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잠시 눈만 감는다는 게 잠이 들었는지 눈을 뜨고 보니 보드가야였다. 어리둥절하게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나에게 누군가 건네는 한마디! give me one dollar~ 무엇을 갈구하는 듯한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남루한 누더기 옷을 입고 있는 꼬마 아이들, 관광객의 뒤를 쫓는 거리의 무법자(?)라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몸이 불편한 아이들도 있고 어디서 배웠는지 악기를 연주하며 석가모니불을 열창하는 남매도 있었다. 마음이 불편해서 원달러를 주고 싶었지만 한사람에게 주면 수십 명이 몰려든다는 가이드 말에 마음은 아팠지만 그냥 모른 채 지나가기로 했다. 보드가야는 최고의 불교 성지답게 볼거리들의 대부분은 불교 유적들이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자리에 세워진 마하보디 사원을 중심으로는 각국의 불교 사원들이 각각 자국의 사원건축 양식을 뽐내고 있었다. 마하보디 사원 안에는 전 세계 수행자와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고 사원 뒤로 돌아가면 보이는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우리는 예불을 올렸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이루시고 그 깨달음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남은 생을 모두 바치셨다. ‘현상계에 나타나는 모든 사물들은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 생멸하는 존재이며, 고정 불변하는 자성이 없다’ 고 강조한 부처님의 메시지를 기억하자니 눈시울이 붉어져 떨리는 목소리로 기도를 마쳤다.
부처님께서는 죽음을 예감하시고 바이샬리에서 마지막 하안거를 보낸 후, 죽음을 위해 준비한 땅 쿠쉬나가르를 향해 나아갔다. 대장장이 춘다의 요리를 드시고 밤새 붉은 피를 쏟아 내시면서도 깨달음을 구하는 이의 발걸음을 물리치지 않으셨고 그 덕분에 수바드라는 부처님의 마지막 제자가 되었다. 우리는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쿠쉬나가르에서 순례를 마치고 국경을 넘어 네팔로 향했다. 하지만 열반지로서의 비장함보다는 작은 마을에서 느껴지는 쓸쓸함이 더 강한 쿠쉬나가르를 생각하니 어딘가 모를 슬픔이 찾아오는 듯 했다.
네팔에서 지친 우리의 몸과 마음을 한순간에 띄워 놓은 것이 있었는데 바로 히말라야 산이었다. 멀리서 보이는 안나푸르나는 우리의 갈증을 해소해 주기에 충분했다. 아침 일찍 히말라야의 일출을 보면서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고,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보고자 아침 공양 후 트레킹을 시작했다. 산에 사는 스님네들이지만 이렇게 산에 올라 자유를 만끽하기란 쉽지 않다.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한 숨막히는 순백의 설산, 포카라는 네팔과 동일시되기도 하며 사시사철 여행자와 트레커들이 대자연의 장쾌함을 즐기기 위해 모여드는 곳이다. 분명 인도와 카투만두의 지독한 매연과 대기 오염에 질린 여행자들에게 포카라의 청정함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내가 만난 네팔 사람들은 최고다. 산비탈의 소박한 농토를 일구며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그들의 소박함에 감동도 하고 눈을 맞추칠 때마다 웃음으로 인사를 건네는 그들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같이 웃어도 보았다.
여행은 나를 가치 있고 풍요롭게 만든다. 또한 한 발짝 물러나 나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나는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유가 된다면 가능한 많은 곳을 다녀 보고 싶다. 그 나라 그 사람들의 문화와 생활을 경험하고, 또 나를 찾아오는 많은 나라의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문화와 생활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 그러다 보면 인종과 성별, 나이를 넘어 하나라고 느끼는 순간이 온다. 우리나라에 있을 때는 외국인이라고 이분화시켰지만 좀 더 넓은 세상에 나가보면 나는 지구라는 나라에 한국이라는 작은 도시에 사는 사람일 뿐이지 다른 사람들과 따로 살고 있지 않다. 보름 동안의 성지 순례를 마치고 정신이 들 때 쯤 사진첩를 꺼내 다시한번 인도와 네팔의 향수를 느낄 수 있었다. 지금도 사진 한 장 한 장을 볼 때마다 그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나의 발자국을 기억하면서 햇살보다 더 환한 웃음으로 그 때의 순간을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