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중에서 가장 위대하신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일이므로 이 얼마나 기쁘겠는가? 그러고보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무량한 공덕을 가지신 분임에 틀림이 없는 듯하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생일날 잔치하기도 쉽지 않고 그냥 잊고 지내는 경우도 있는데 2532년 전에 태어나신 부처님의 탄생일엔 전국의 사찰에서 향과 촛불, 감로수, 꽃, 과일 등으로 차린 잔치상을 받으시니 참으로 존귀하고 위대하시다.
부처님을 나타내는 열가지 칭호중에 ‘여래(如來, tatha-agata)’ 라는 명호가 있는데 이는 ‘그와같이 오셨다’ 라는 뜻이다. 한편 ‘잘 가신분’이라는 뜻으로서 ‘선서(善逝)’ 라는 명호도 있다 즉 부처님은 진리와 함께 오시고 진리와 함께 가신 분으로서 오고감(去來)이 자유롭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간다’ 라는 말속에 담겨있는 이별의 아쉬움보다는 ‘온다’ 라는 말 뜻이 우리의 가슴에 기대와 설레임을 갖고서 좀더 와닿는 듯하다.
그러면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뜻은 무엇일까? 인도에서 ‘이 세상’을 나타내는 말로 ‘loka’를 사용환다. 그 말의 어원은 ‘lok’이고 ‘본다, 인식한다’ 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감각 능력이 도달하여 그 감지되는 것들에 싸여 사는 곳이다. 우리가 무엇을 보고자 할 때는, 태양이나 촛불처럼 자연적인 빛으로 비추어 보기도하고, 달리는 우리 내면에 있는 지혜의 빛으로 비추어 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내면의 빛으로 우리 주위를 비추어 보면 절과 같이 청정한 도량이 있고, 스님들과 같이 계행을 지켜가면서 수도하는 분들이 계신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우리 주위엔 지저분하고 더럽게 보이는 곳도 있다. 도시의 오물을 나르는 하수도, 화장실 안의 휴지통, 술 먹고 거리에 토해 놓은 것, 대학가 앞의 돌멩이, 화염병에 그을린 도로, 최루탄의 매캐한 허연 분말 등은 그래도 치우면 깨끗해질 수 있는 것이지만 인간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위선과 자만, 명예욕, 권력욕, 색욕 등은 교묘하게 위장되어 좀처럼 깨끗해지기가 어렵다. 날카로운 칼로 사람을 상하게 하는 살벌한 행위가 만연되고 있고, 몇 그램 나가지 않는 입술과 혀를 이용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판단을 흐려놓고 자기의 이익을 꾀하는 무리도 또한 적지 않다. 그러한 독성은 독사보다도 무섭다고 부처님께서는 경고한 바가 있다. 이러한 곳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맞부딪쳐 살아가며 사회생활, 결혼생활을 하다 보니 힘들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한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괴로움(苦)의 범어는 ‘du•hkha’인데 이는 ‘불편한, 불쾌한, 고통, 슬픔, 갈등’ 등을 나타낸다. 이렇게 불편하고 고통과 갈등이 어우러진 곳에서는 사람들끼리 서로 신음하고 아파할 수 밖에 없다. 부처님께서는 비참한 이 세상의 고통을 외면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러한 삶의 기구한 현실을 똑바로 응시하셨고, 아 현실 속에서 자비심을 내신 것이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 기막힌 삶을 버리고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불교 신도들이 부처님을 찾고 절을 찾고 스님들을 만나뵈려고 하는 동기 중의 하나는 현실 생활에서 힘겹도록 부딪혀 오는 문제나 사건들을 자신의 능력으로 납득하거나 해결하지 못할 때이다. 그들이 힘겨워하는 삶의 무게를 종교가 냉정하게 외면한다면, 그들에게 종교란 아무 소용없는 것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초파일 행사를 되돌아보면, 너무도 고귀하고 깨끗하게 보이는 곳에서 형식적으로 치루어 왔던 면이 있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부처님의 자비 광명이 온 누리에 비추어지기를 바란다면, 사회의 어두운 곳에서 말없이 일하는 분들께 그빛이 돌려져야 한다. 다행히도 이곳 저곳에서 그러한 노력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어두움은 짙게 깔려 있다.
비싼 연등을 주렁주렁 달아 놓고 염불을 하며 시내 행진을 하는 것도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어두운 밤에 희미하게나마 그 빛을 비추는 연등의 참 뜻을 알지 못한다면, 수많은 등불이 세싱을 밝혀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러한 등은 한낱 돼지나 소기름에 심지를 꼬아 넣은 양초일 따름이다. 만일 그 양초가 다하여 불이 꺼지면 그 다음엔 무엇으로 불을 밝힐 것인가?
연등을 밝히는 것은, 심지 달린 양초를 빌어서 우리의 내면에 있는 지혜의 불꽃을 밝게 키워 그 빛이 드러나도록 하는데 참 뜻이 있다고 본다.
이 불을 누가 끌 수 있겠는가? 바람이 분다해도 꺼지지 않는 불꽃이다. 마음의 불쫓으로 켠 등불은 머리칼을 잘라 내어얻은 돈으로 부처님께 등불을 바친 가난한 여인의 등불 바로 그것이다. 그 여인의 동불은 지금 이 순간도 타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등불은 참으로 신기한 것이어서, 수백개가 함께 있다고 해도 인간들의 세계에서처럼 갈등을 하거나 다투지 않으며 또한 다른 불빛을 간섭하지도 않으면서 모두가 환하게 빛을 내는, 묘한 불빛이다. 또한 하나의 촛불로 수 없이 많은 촛불을 켤 수 있으니 참으로 신비하다.
거리의 더러움을 씻어 주는 청소원 보살님, 옷에 묻은 때를 말끔히 빼주시는 세탁소 보살님, 수술실에서 힘겹게 수술을 끝내고 나오시는 의사 보살님, 탄광에서 일하시는 광부 보살님, 아픈 짐승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사는 수의사 보살님, 도살장에서 인간이 먹을 고기를 제공하기 위해 몸을 맡기고 있는 가축 보살님들께도 부처님이 오셨다는 복된 소식이 함께하기를 바란다.
또한 따사로운 봄볕 아래서 진홍빛 진달래가 더 이상 슬픈 모습을 하지 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봄을 맞이할 수 있기를, 최루탄의 매운 냄새가 향내음으로 바꾸어지고 4,5월의 햇빛 아래 쏟아지는 돌멩이가 연꽃으로 바꾸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또한 독사보다도 더 무서운 내 마음의 더러움이 부처님의 자비광명으로 지혜롭게 되기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두 손 모아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