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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한 바퀴를 돈 5천원짜리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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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로 본 세상 - 정은진/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 2013년 12월 382호

지난달 아프리카의 오지를 방문하던 중 아주 희한한 일이 있었다.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현지인 운전사와 통역, 현지 구호단체 관계자 등 세 명과 함께 수도 방기에서 612 킬로미터 떨어진 시골마을인 베르베라티라는 곳을 방문한 날이었다.
오후 3시쯤 게스트하우스 마당에서 통역인 ‘프린스’가 나에게 갑자기 우리 돈 5천 원짜리 한 장을 가지고 와서 “이게 한국 돈이냐 북한 돈이냐”라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물론 돈에는 영어로 Bank of Korea (한국은행) 이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에 현지인으로서는 혼돈될 수 있었다. 나는 이 돈이 한국 (South Korea)돈이라고 말해 주었다.
프린스는 내 말을 듣고 차 뒤로 가더니 다시 나에게로 와서 말했다. “저기 있는 저 바바 (아저씨) 돈인데, 혹시 이 한국 돈을 이곳 프랑으로 바꿔줄수 있어?” 라고 말이다. 나는 그 돈을 햇빛에 비춰보니 공란에 이이 선생 얼굴이 보이는 등 진짜 돈인 것 같아 돈을 바꿔주기로 했다. 아이폰에 있는 환율기를 돌려보니 2천여 프랑으로 계산됐다. 나는 지갑에 있는 2천 프랑을 프린스에게 전달하고 5천원을 받았다.
그리고는 누가 도대체 이 한국 돈을 갖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바로 베르베라티 게스트하우스의 문지기 아저씨인 ‘바바 가스통 Baba Gaston’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 아저씨가 어떻게 다른 나라 돈도 아닌 한국 돈 5천원을 갖고 있느냐고 했더니 그 사연이 흥미로웠다.
가스통 아저씨는 1년 전 2,500 프랑을 주고 시장 통에서 청바지를 한 벌 샀고, 그 바지 주머니에서 바로 5천원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앙아프리카에는 한국 대사관도 없고 은행에 가도 도저히 한국 돈을 바꿀 수가 없어 1년간 돈을 간직하고 있다가 프린스로부터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돈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가스통 아저씨는 나한테서 돈을 받고 너무 기뻐서 “메르시, 메르시” 라고 말했다. 프린스는 나에게 그 돈에 있는 인물이 누구냐고 물어보았고, 나는 “옛날에 살았던 학자”라고 말해주었다. 이이 선생이 아니라 신사임당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다.
세상에 중앙아프리카의 깡 시골인 베르베라티에 한국인이 올 줄 누가 알았단 말인가! 가스통 아저씨가 1년을 기다린 보람(?)이 있었던 것이다. 정말 희한한 일이다.
프린스에 따르면 이곳에서 옷을 사면 바지나 주머니 속에 가끔 달러나 유로화가 들어있다고 한다. 프린스 본인도 2011년 바지를 한 벌 샀는 데 주머니 속에 5 유로가 들어있어서 그 돈으로 동생에게 교과서 등을 사 주었다고 한다. 아마도 옷이 전부 기부 받은 구제옷인가보다. 그런데 그 많은 돈 중 한국 돈이 들어있다니! 그 옷을 수거함에 넣거나 기부한 한국인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 사람이 주머니에 깜빡 잊고 놔둔 돈은 이제 지구 한 바퀴를 돌고 돌아 내 지갑 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하긴 방기나 보쎔펠레 등지에서 ‘XX 소방서’나 ‘△△ 건설’ 등 한국어가 쓰여 있는 조끼를 입은 현지인들을 한두 명 본 적이 있다. 어떤 조끼에는 “단결, 투쟁”이라고도 쓰여 있었다. 현지인들은 그 조끼들이 모두 사진기자가 입는 조끼인 줄 알고 있었다. 아마도 가스통 아저씨가 산 바지의 출처는 그런 데가 아닐까 싶다.
가스통 아저씨는 나에게서 받은 2,000 프랑으로 채소와 커피 등을 샀다고 한다. 누군가 무심코 바지에 넣어 둔 5,000원이 세상의 끝인 아프리카 시골마을에 도착해 누군가에게는 양식이 된 것이다. 그 돈은 나와 가스통 아저씨와 인연이 있었던 모양이다.

<렌즈로 보는 세상 3년 연재를 마치며>
해인사에 처음 발을 디디며 인연을 맺고 독자 여러분과 만난 지 어언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전 세계를 다니며 만났던 사람들, 취재 뒷이야기를 풀어내고 독자 여러분과 저의 경험을 공유하고자 하였습니다. 아울러 부족한 저의 글과 사진을 실어주신 해인지 편집부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다른 경로와 인연으로 독자 여러분을 만나 뵙게 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다가오는 2014년 한 해도 보람차고 행복한 해가 되시길 진심으로 바라오며 해인 지와의 소중한 인연을 마음 속 깊이 잘 간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