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카우치서핑을 하면서 불자, 불교나 수행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만나 함께 시간을 같이 보냈습니다.유럽만행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친구는 독일 뮌헨에서 만난 마누입니다. 티베트스님과 함께 찍은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올려놓은 것이나, 불자들을 만나고 싶다고 적어놓은 자기 소개가 한껏 저를 궁금케 했던 마누.
마누는 미국인 아버지와 크로아티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국적상 독일인 스물 두 살의 친구입니다. 그는 현재 뮌헨에서 어머니, 남동생 필리스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와 인사를 나누고 난 뒤, 저는 무엇보다도 무슨 연유로 그가 그렇게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의 대답은 여자친구였습니다.
마누의 여자친구는 뮌헨에 거주하는 베트남 친구였는데, 그녀와 교제를 하면서부터 불교에 많은 관심과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녀와 함께 카우치서핑을 시작하고 같이 프로필을 작성하면서, 그렇게 다른 나라에서 오는 불자들을 만나고픈 생각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그러한 차에 한국에서 온 스님이 카우치서핑 요청을 보낸 것은 너무나 뜻밖이었고 반가웠다고 저에게 대답했습니다.
사실 10월 초 뮌헨 거리는 옥토버페스트란 축제로 절정으로 부쩍이는 때입니다. 그러나 저에게 옥토버페스트는 음악과 맥주란 두 가지가 절제 없이 과잉되어 도시 전체가 야단법석으로 흥청망청 들떠있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그러한 축제 가운데에 마누와 그의 멕시코 친구 소피아, 그리고 저는 날씨 좋은 날을 골라서 함께 뮌헨의 근교에 퓌센에 있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함께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비가 오는 날에는 주로 집에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하루는 마누가 저를 여자 친구네 집으로 데리고 가서 같이 식사를 했습니다.
한국에서 스님이 찾아온다는 언질을 주었는지 여자 친구네 가족은 저를 차분하게 환대해주었습니다. 집에 불단을 마련해 놓고 거실의 작은 라디오를 통해 남방 스님들이 경을 읽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저는 우선 향을 사르고 난 뒤에 부처님 앞에서 예를 표했습니다. 마누 여자 친구 아버지 손에는 조금 전까지 읽던 경전이 들려 있어서 정말로 신심이 좋은 집안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베트남어나 독일어를 하지 못하는 바람에 저는 마누를 통해서 그 가족들과 간단한 통성명과 소개를 나누었습니다. 그들로부터 다가오는 깊고도 안정된 눈길에서 말이 없음에도 많은 것들이 오가는 교감을 했습니다. 그들은 저를 위해서 나름 공양청의 형식을 갖추어 채식으로 국수와 월남쌈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비록 다른 나라 스님이언정 이렇게 정성스레 음식을 준비한 것에 감사하면서도 제가 그 공양을 받기에 부족한 것만 같아 사실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공양청을 받는 뒤에 거실을 거닐다 저는 직접 만나볼 수 없는 마누 여자 친구를 불단의 한 쪽 귀퉁이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손바닥 크기의 작은 액자 안에 영정 사진으로 있는 소녀의 모습을 말입니다.
마누 여자 친구는 꼭 한 달 전 인도의 히말라야 산에서 죽었습니다. 그녀는 티벳의 한 약초 전문가의 지도하에 민간 처방을 배우고 있었는데 산에서 약초를 채취하다가 벼랑에서 그만 실족사하고 만 것이었습니다. 여자 친구가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 난 뒤에 마누는 곧장 인도 대사관으로 향했습니다. 인도 비자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대사관 측에서는 일주일의 비자 발급 기한을 들먹이며 비자를 내주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직원을 통해 마누의 이야기를 들은 대사는 특별한 경우임을 감안하여 그날로 바로 비자를 발급해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마누는 열시간을 넘는 비행을 거쳐서 곧장 인도 델리로 들어갔습니다. 델리에서 하룻밤을 자고 난 뒤에 그는 다시 열 두시간 버스를 타고 인도 북쪽의 마날리에 도착했고, 또 그곳에서 다섯 시간 버스를 타고 난 뒤에야 여자 친구가 있는 히말라야 가까이 있는 인도의 작은 마을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불자인 여자 친구였기에 그녀의 장례는 티벳 스님들이 주관하는 불교 장례가 되었습니다. 황망중에 소식을 듣고 고생스럽게 찾아온 인도였지만 그녀의 장례식은 너무도 손쉽고 빠르게 지나가서 마누는 마치 꿈을 꾸는 것 같다고 합니다. 도무지 낯선 이국에서 생소한 사람들이 행하는 알수 없는 읊조림, 묘한 향이 진동하는 절 한가운데서 받아들여야만 했던 여자 친구의 죽음. 그 모든 상황이 꿈처럼만 느껴지는 어지러운 가운데서 그렇게 여자 친구의 장례는 쏜살같이 끝났고, 마누는 맥없이 그 자리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난 뒤에 그는 하루동안 마날리를 정처없이 거닐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마날리는 수려한 산세와 천연 온천이 있는 멋진 휴양지로만 기억되는 곳이었지만, 마누에게 있어서 마날리는 도무지 꿈처럼, 환영처럼 보이는 아연한 이국으로만 회상될 뿐이었습니다.
하루는 마누 여자친구의 사촌 동생들과 볼링을 하고 난 다음에 베트남 절 보보사普寶寺 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여자 친구의 부모님은 딸의 극락왕생을 바라며 매일같이 기도중이었습니다. 절에 갑작스레 방문한 저를 보고 여자친구의 아버지는 아무말 없이 제 손을 꼭 잡으면서 저를 계속해서 쳐다보았습니다. 이런 때 실감을 합니다. 머리를 깎고 회색 승복을 입는다는 건, 이렇게 말없이도 다른 사람에게 위안을 주기도 한다는 걸. 출가해서 스님이 된 것에 대한 자긍심과 함께 좀 더 무거운 책임감은 같이 뒤따르는 것 같습니다.
스님 제가 잘 견뎌낼 수 있겠지요? 지금까지 잘 그래왔는데, 너무 염려하지마. 프라하로 가는 버스를 타러 가는 저를 배웅하며 마누는 이렇게 묻고 저는 대답합니다. 사람은 참 이렇습니다. 시종일관 보였던 온화한 미소 뒤에서 그렇게 보이지 않게 아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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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圓帝 스님은 2006년 해인사로 출가 후 선원에서 정진하였으며 2011년 해인사 퇴설당에서 은사스님을 모시며 수행하던 중 2012년 가을, 유라시카(Europe, Asia, Africa) 만행을 기획하여 2012년 9월부터 세계 만행 중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