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대장경 세계문화 축전기간 동안. 1200년만에 마애불 부처님이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다행히도 나는 세 번이나 부처님을 뵙는 영광을 누렸다. 한번은 남편과 함께, 한번은 수능 전날 예불때, 또 한번은 마애부처님 개방 회향할 때.
어쩌면 난 전생에 해인사에서 기거하는 보살, 아님 스님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정대불사 때 육법공양을 하고, 월요일마다 천도 예불을 하고, 하루하루 절에 오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안과 내용을 얻게 되었다.
남편과 함께 처음으로 마애불 부처님을 뵈러 가야산 중봉을 오르던 날, 가을의 색깔과 내음이 온 몸을 감싸 돌아 우리는 소풍 나온 아이들처럼 마냥 즐겁기만 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둘이서만 함께 한 시간이 뜸했던 탓에 룰루랄라 가벼운 마음으로 산길을 오른다. 한 손에 부처님께 올릴 참기름과 들기름을 들고서…. 바람에 휘날려 떨어지는 낙엽을 넋 놓고 바라보기도 하고 중고등학교때 예쁜 이파리 주워 시를 적어 선물하던 일도 생각해내고, 누구한테 코팅해서 주었냐며 서로 따져 묻기고 하고. 한 발짝 앞서가던 남편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까 뒤돌아 조심하라고 말해준다. 매사에 미덥지 못한, 생기다만 마누라를 염려해서.
드디어 각자의 염원을 담은 빨강, 보라, 노랑, 초록의 소원등이 보이고, 마애불 부처님의 옆모습이 나타났다. 공양물을 올리고 삼배를 하기위해 자리를 옮기는 순간 부처님의 얼굴은 복스럽게 미소짓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 그대로였다. 남편과 나란히 서서 얼른 삼배를 한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기도는 부처님 감사합니다.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마애불 부처님의 자비로운 미소를 뒤로한 채 더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가을 산을 내려왔다.
수능 전날 예불과 마애불 부처님 개방 회향날, 해인사 스님들과 도반님들과 산을 오른다. 각자의 마음을 다지며 한걸음씩 내딛는 발걸음에 엄숙함마저 느껴진다. 스님의 정성어린 예불에 감사하는 마음에 가슴이 뭉클해 온다 “부처님 우리 아들 원하는 대학에 합격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왕복 두 시간의 길을 걸으며 난 늘 하듯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염불했다. 해인사 오기 전 다니던 절에서 신묘장구대다라니 108독 100일 기도를 쭉 해오던 탓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나를 초조하게 할 때. 원인 모를 외로움이 밀려올 때. 목이 아파올 때. 시시때때로 다가오는 여러 일들 앞에서 난 늘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야…”를 중얼거리곤 한다. 염불의 횟수가 더해갈수록 불안감은 없어지고 마음의 평안을 찾게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이렇듯 나는 생활하는 모든 일상에서 부처님을 찾고 부처님께 의지해 살아가는 나약한 불자이다.
세 번째 마애부처님을 뵙고 내려오던 날, 마음 가득 환희심이 내몸을 감싸안는다. 앞으로 내 인생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모르겠으나 좋은 일들이 더 많을 것이다. 혹여 좋지 않은 일들이 있더라도 마애부처님 일러부시는 지혜로 이겨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을 안고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는다. 공양간 앞 가을 깊은 길 한복판에서 환히 웃으며 도반들과 사진을 찍는다. 불국토가 따로 있겠는가. 지금 이 순간이 부처님 세상인 것을.
해인사에서 좋은 경험과 추억을 쌓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고 도반님들과 정성어린 예불로 참회의 시간을 마련해주시는 스님들께 감사의 합장을 한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