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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마다 진실한 땅을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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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 해인총림 방장 법전 스님 2013년 12월 382호

태암보장呆菴普莊 선사에게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결제 기간에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습니다.
“발걸음 발걸음마다 진실한 땅을 밟는다.”

구순九旬안거 동안 온몸으로 돌아다니며 나타났다가 숨고, 거두었다가 펼치며, 종횡무진으로 잡았다가 놓아주고, 여기저기 구멍을 뚫고는 동쪽에서 솟았다가 서쪽으로 가라앉는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이미 상근기로서 옮긴 발걸음마다 진실한 땅을 밟은 것입니다.

만약 그 정도의 경지가 되지 못한다면 오늘부터 무조건 걸망을 매달아놓고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하근기는 앉거나 서거나 눕거나 포행하거나 무엇을 하든지 언제나 선당禪堂을 벗어나지 않을 때 이것이 바로 발걸음 하나하나를 도량으로 만드는 일인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이 경계에 끄달리지 않고 청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이미 역대조사를 두루 참문한 결과가 될 것이니 이 어찌 결제의 수승한 공덕이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하지만 일주문 바깥을 나가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평탄한 대로는 아닙니다. 앉은 자리에서 한 마디 언구言句를 옮길 때마다 그 앞에는 구덩이가 있기 마련입니다. 조사들이 던져놓은 뜻과 언구言句 마저도 때로는 함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인들은 자비심으로 후학을 위해 언구문답까지 남겨둔 것입니다.

“구절句節로는 도달하지만 뜻으로는 도달하지 못한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한마디 한마디에서 진실을 보지만 걸음마다 자취를 잃는다.”
“뜻으로는 도달하지만 구절로는 도달하지 못한다는 말은 또 어떤 의미입니까?”
“다만 혀끝에서 맴돌 뿐 있는 힘을 다해도 말이 튀어나오지 못한다.”
“뜻과 구절로 모두 목표에 도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때로는 홀로 뜰의 난간에 기대어 매화나무 몇 가지에 꽃 핀 것을 본다.”
“뜻과 구절로 모두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떨어진 꽃잎이 물을 따라 흘러가며 공연히 떠도는 나그네를 등진다.”

참선은 어떤 것 혹은 무언가에 의지해서는 절대로 배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저 화두를 붙들고 열심히 정진할 뿐입니다. 식識으로도 분별할 수 없고 알음알이로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흔들리게 되면 곧바로 종지宗旨를 잃어버립니다. 성문· 연각 조차 어수선하게 만들고 십지보살마저 우왕좌왕하게 만듭니다. 말길로 표현할 방법이 끊어지고 마음으로 헤아릴 도리가 소멸하였기에 부처님이 성도하신 후 마가다국에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 아무도 만나지 않으셨고, 유마거사는 비야리성에서 입을 다물고 침묵했던 것입니다.

만고의 세월동안, 변함없는 강산이 되었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몽환夢幻이 되었건 간에 그 어느 곳에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곳곳에서 많은 경계들과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어떤 경계이건 그 경계에 집착하지 않고 화두를 들고 있다면 그 경계는 저절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본분납자가 화두의 힘으로 그 경계에 끄달리지 않는다면 자연히 걸음걸음은 진실한 땅을 밟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길마다 본래길이 될 것이요, 내딛는 걸음마다 본래고향을 밟게 될 것입니다.

설사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릴 필요 없이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며, 사로잡고 풀어주는데 자유로우며, 가두고 놓아주는 수단을 자신의 손아귀에 쥐고, 과녁을 맞히고 빗장을 푸는 경지가 나타났다고 할지라도 선종禪宗집안에서는 그저 그런 일상사에 불과한줄 알아야 합니다.

보보비신업步步非身業이요 성성비구업聲聲非口業이며 염염비의업念念非意業이라고 했습니다. 결제란 걸음마다 몸으로 업을 짓지 않는 것이며, 말마다 입으로 업을 짓지 않는 것이며, 망상으로 생각의 업을 짓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제 기간에‘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묻는 납자에게 태암呆菴 선사는 ‘발걸음마다 진실한 땅을 밟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동안거 결제를 헛되게 보낼 것인가 아니면 제대로 보낼 것인가 하는 것은 각자 들고 있는 화두의 간절함에 달려 있음을 반드시 명심하고 열심히 정진해 주길 부탁드립니다.

보살무두공합장菩薩無頭空合掌하고
금강무각만장권金剛無脚謾張拳이라
보살은 머리가 없어 공연히 합장만 하고
금강신장은 다리가 없어 넌지시 주먹만 펴보이네.

불기 2557(2013)년 동안거 결제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