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날에 붙여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특집 - 강민숙
1988년 05월 75호
친구에게 편지가 왔다. 소인을 보니 띄운 지 일주일여, 지구 이쪽과 저쪽에 뚝 떨어져 있는 거리와 시간만큼 헤매어 다녔음직한 푸른 항공봉투, 바닷물빛의 봉함엽서. 변함없이 단정하고 애잔한 글씨 그대로이다. 10년 전이나 15년 전이나, 내가 그 아이를 처음 보았던 약 이십년 전처럼.
그런데, 그 아이는 변했다는 것이다. 변했어, 너는 변했어. 먼 거리가, 가까이 닿을 수 없는 시간이 우리를 갈라 놓았는가? 하면서 나의 무정함을 한껏 힐난하다가는 제 풀에 지쳐 어차피 산다는 건 다 그런지도 모르겠다고 끝을 맺고 있었다. 어차피 산다는 건 다-, 그러고 보니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활에 지쳐 세상의 수레바퀴 아래 납작납작한 꿈을 꾸기 이전까지 내게 있어, 「세상이란, 산다는 일이란」 하고 도사연한 표정으로 말을 하게 되는 자신의 모습이 첫번째 금기 사항이었다.
어느 순간 문득 그런 자신의 후줄근한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면 이미 늙어 있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승복해야만 할 것이라는 생각도 했었다. 또한 무책임한 낙관론이나 희망과도 나는 쉽게 사귀질 못했다. 친구의 변했다는 말은 한동안 잊고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 그 친구에게 편지를 하지 않았으며(벌써 수차에 걸쳐 회신을 요구하는 독촉이 왔었음에도) 심지어 그 친구까지도 잊고 지냈었구나 하는 사실을 나에게 알려 주었다.
그래 나는 변한 것이다.
누가 나에게 ‘너는 참 많이 변했어, 달라졌어’라고 말하면 금세 어린아이처럼 섭섭해하고, 그만큼 다른 사람들로부터 또 내 스스로에게조차 멀어졌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두려워하던 날들도 있었다. 인간적이라는 미명하에 그야말로 애매모호한 수인사나 겉치레의 말만 가지고도 한나절쯤은 유쾌하게 보낼 수 있는 기술을 배우기도 하였다. 아아 그릇된 처세학 개론의 일장일절(一章一節).
그뿐인가, 비누거품 같은 유쾌함. 적당히 향기롭고 오색빛 나며, 그러나 손대거나 입으로 후우 하고 불어버리면 이내 스러져 버리고 형체없이 날아가 버리는 부질없고 허망한 쾌락과 즐거움. 그것을 위해 때로는 사람을 만나고 때로는 영화를 보고 끼리끼리 모여 낄낄댔으며, 그러는 동안 돈이 즐거움을 살 수도 있고 돈이 고독을 메꾸어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얼마간 곁눈질로 알게 되었다. 돈이 사람에게 위안이 될 수 있다니!
변했다고 한껏 힐난하는 그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할 것인가. 몇 년 동안 변함없이 사계가 바뀌어 꽃이 피고 지고 하는 동안 옛 한시의 한 귀절처럼, 해마다 피는 꽃은 같으나 해마다 사람은 같지 않음〔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을 흉내내어 읊어보기에는 겨운 나날의 연속이었음을 어떻게 말해 주어야할지. 우리는 그동안 멀리 떨어져 있었고, 시간이 많이 지났으며, 나는 참 많이 변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은 오늘도 아니고 현재도 아니다. 함께 공유했던 추억이나 어린 날의 기억 뿐. 그러나 회고조의 취미를 가지고 옛 일을 더듬어 보기에는 내게 아직 두꺼운 돗수의 안경이 준비되지 않았고, 양지바른 땅 한조각도 없으니.
그 친구는 아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둘이서 돌려보던 강소천의 동화 「꿈을찍는 사진관」의 주인공과 순이. 주인공이 꿈을 찍는 사진관에 들러 어렸을 때 헤어진 순이의 꿈을 찍어 달라 했더니, 현상되어 나온 사진의 어이없는 장면. 자신은 현재 어른인 모습 그대로인데 순이는 헤어질 때 모습 그대로 어린아이였다는 그 이야기. 그 친구와 내가 그 책을 읽을 때는 순이의 모습만 했었다. 이제는 그 주인공 청년처럼 자라, 사진을 들여다보듯, 동화의 내용을 다시 새겨본다.
‘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짧지도 않은 동안 세상은 참 많이 변했다’라고 그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의 서두를 시작한다. 그러다가 다시 고쳐 쓴다. 내가 참 많이 변했다지만 사실 우리 모두가 변한 것이다. 세상이 변한 것이 아니다. 의구한 산천, 인걸만 간 데 없으니. 여기까지 쓰고나면 그동안 그 친구를 잊고 있었으므로 닫혀져 있던 말들이 얽힌 실타래처럼 술술 풀려 나온다. 너는 변하지 않았는가. 많은 장점, 속 깊고 넉넉함, 남을 헤아리는마음. 옳은 일을 향해서 거리낌없이 열려 있던 빛나던 눈. 이웃을 잊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고, 그들을 위한다는 따위의 허위의식을 버리고 다만 잊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고 하던 다짐의 말들은 간혹 나의 기억 속에서나 새롭지 이제 네게 있어서는 아주 낯선 말이 된 듯하다.
만날 때마다 너는 아주 달라보였다. 일제시대 많은 지식 청년들이 과장된 비분강개, 돌아보면 우습기 짝이 없는 허장성세로 목소리를 높이다가 관부 연락선을 타고, 혹은 어찌어찌 멀고먼 길을 마다 않고 낯선 대륙으로 떠나며 일순 한숨을 내쉬던 소리. 고작해야 가, 갸, 거, 겨로 문맹 퇴치나 하면서 거룩한 표정은 혼자 다 짓고 있는 촌스러운 브나로드의 모방자일 뿐인 동년배들에게 하고 싶은 그들의 말은, 그들의 비웃음은, 요즘 말로 표현하면 ‘촌스럽기도 해’이거나 ‘순진하기 짝이 없어’ 정도가 아닐까.
그들은 그렇게 떠나가서 빛나고 휘황한 렛텔을 불어고 돌아왔으며 현재까지 결코 촌스럽지도 순진하지도 않게 잘 살고 있다. 그들은 영생복락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친구를 잊고 있었고, 그래서 굳이 편지를 쓰거나 해야겠다는 마음이 일지 않았던 동안 전혀 떠오르지 않았던 생각들. ‘이건 뭐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변한 것 하나 없지 않나’ 하는 궁금증에 그 친구는 무어라고 답해줄 수 있을 것인가.
바쁘고 힘든데, 이런 물음 따위로 편지질이나 오락가락 하는 것은 정말이지 시간낭비일 뿐이다. 당분간 너에게 편지할 수 없으리라고, 또 물어봤자 속시원한 해답 구할 수 없는 질문도 접어두기로 하겠노라고? 나는 쓰다만 편지를 구겨 버리고 쓰레기통에 집어 넣는다. 그렇지만, 그리운 내 친구, 꼽사진 속의 순이. 이번 부처님 오신날은, 그동안 너무 잘 살고 행복해, 잊어도 결코 별고 없던 네 동(燈)도 하나 밝히겠다고 마음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