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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파일 그 해 오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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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강윤도 1988년 05월 75호
그 해 오월은 유난히도 더웠다.
사람들은 “귀국 말년”에 몸조심하라고도 하였고 위험한 고소 작업은 가급적 삼가도록 배려하여 주기도 하였으며 정 반장은 야간 작업을 더 많이 시켜 주며 1년만가 퇴직금 정산을 배려하여 주기도 하였다.
귀국달 얼마 남겨 놓지 않았던 그 해 오월은 일찍부터 수은주 45도를 오르내리며 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사막의 여름이 흔히 그러하지만 4월경부터 시작된 여름 더위가 그 해엔 유별나게도 더욱 기승을 부리며 “귀국 말년”을 괴롭혔다.
그러던 오월 최규하 대통령이 그 곳을 방문하였고 그뒤로 얼마 안 있다가 사람들이 군데군데 모여 술렁거렸다. 한국에 전쟁이 일어났다고도 하였고 유혈 사태가 발생하였다고도 하였다. 곳곳에서 일손을 놓고 웅성거렸으며 그 날밤 휴게실에 놓여진 텔리비젼 수상기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있었고, 뉴스가 시작되면서 광주의 참상이 그대로 보도 되었다. 영어로 방명된 텔리비젼 방송은 외신을 인용하여 연등이 걸린 한국의 거리를 비추기도 하면서 광주의 야만적인 살상 행위를 그대로 방영하였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참혹한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는 수상기를 주시하며 모두들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 현장을 사직공원 앞이라고도 하고, 금남로라고도 하며, 충장로라고도 하였다.
낮에는 현장에 나가 웅성거리고 밤이면 텔리비젼 수상기 앞으로 모여 들면서 며칠을 지내던 어느 날 숙소에 돌아와 문득 달력을 쳐다보니 빨간 동그라미가 눈에 들어왔다. 5월 21일 초파일이었다. 한달 전쯤인가 그 날 하루만이라도 경건하게 지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려 놓았던 동그라미를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불현듯 시내 나갔다가 사 두었던 양초 한자루를 꺼내 들고 숙소에서 나왔다. 숙소를 조금 벗어난 사막의 언덕받이에 자리잡고 앉아 조용히 촛불을 밝혀 모래 위에 세우고 아득히 먼 사막의 끝을 바라다보았다. 사막의 밤하늘과 사막이 만나는 곳, 멀리에는 불타고 있는 유전 지역의 불꽃이 사막의 밤 한쪽을 불야성으로 이루어 놓고 있었다.
잊고 지나갈 뻔한 초파일을 생각하며 대자대비로 세상의 무명을 밝히고자 하셨던 부처님의 삶과 지금 광주에서 벌어지고 있던 참혹한 무자비를 상기하였다.
부처님이 지금 이 세상에 오셨다면 무엇을 하셨을까. 부처님이 저 참혹한 광주의 무자비를 보셨다면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 왜 우리는 역사의 진보를 자꾸 거스러 오르려고만 하는 것일까. 왜 군인들은 평화의 거리에 뛰어들어 노인들과 부녀자를 가리지 않고 해쳐야했을까. 누가 대답해 줄 필요도 없는 물음들이 자꾸만 촛불의 불꽃 언저리에서 맴돌았다. 제발 아무 일도 없어야할 텐데. 아니 이미 일은 벌어지고 있었으므로 더 이상의 참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상념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 좀처럼 가실 줄을 몰랐다. ‘이리’를 기점으로 전라남북도를 색칠한 텔레비젼의 지도도 자꾸만 떠올랐다.
귀국을 며칠 앞둔 사막에서의 초파일 밤은 그렇게 해서 지나갔고 그 뒤로 며칠이 지나 귀국 길에 올랐다.
고국 땅을 밟은 뒤 누구도 그 일에 대해 얘기하려 하지 않았으며 5월의 공기는 꽤 상쾌하였으나 광주 사람들은 웃음을 잃고 있었다. 철통같은 검문검색에도 광주의 거리는 을씨년스럽지 않았으며 나즈막히 자리잡은 남녘의 거리는 오월 오후의 햇살을 받아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광주를 지나 집으로 돌아온 뒤 누구도 그 날의 얘기를 하려 하지 않았으며 다음 날 찾은 진불암의 접동새만이 밤 새워 그 날의 얘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소쩍다! 솟다!
그것은 여느 해 초파일이면 들을 수 있었던 접동새 울음 소리가 아니었다. 끓어오르는 열정을 삼킬듯 토해내는 접동새의 울음은 마치 광주의 덧없는 영혼들을 슬피 위로하며 영혼으로부터 토해내는 피울음으로 절규하는 듯하였다. 그 울음 소리와 쏟아질 듯 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은 대흥사 진불암의 밤을 지새우게 하였다.
솟다! 소쩍다!
누가 저 젊은 영혼들을 달랠 수 있을까.
누가 접동새의 울음을 삼킬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진불암 부처님 전에 향을 사르어 놓고 조용히 앉아 그 날의 함성을, 그 날의 절규를 생각하며 잘못된 역사를 바로 세우고자 했던 젊은 영혼들을 부처께서 자비로 달래주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오월은 왔고 8년 전 사막의 초파일과 사막에서 밝히던 촛불, 그리고 삼킬 듯 토해내던 진불암 접동새의 울음을 잊을 수가 없다.
아직도 진불암의 접동새는 그 날의 이야기를 토해내고 있기에 더욱 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