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기초한 종헌과 각 종법에 근거해 종단을 운영하고 있다. 부처님 재세 시의 의식과 운영 방식을 그대로 재연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 정신과 대의를 반영하고 있다. 또 당시의 상황과 현재의 상황이 같지 않아 변용되는 부분도 없지 않다. 특히 소임자의 선출은 상당 부분 다른 점이 발견된다.
부처님 당시 소임자 선출은 백이갈마, 즉 한 번의 안건 공지와 한 번의 의사를 묻는 방식에 의해 결정했다. 가장 중요한 사안은 새 출가자를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지금의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갈마에 구성원 모두가 참석했다는 것이다. 만약 몸이 아파 참석하지 못하는 스님이 있다면 위임하도록 했으며, 결정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도록 했다.
부처님의 가르침과 승단의 운영 원리는 현대의 민주주의 일반원리와 다르지 않다.
오히려 민주주의의 원리가 그리스 아테네에서 유래했지만, 이미 2500년 전 불교교단은 민주주의의 운영원리를 구현하고 있었다. 의사 결정에서의 전원 참석은 구성원 개개인이 승단 운영의 주인이라는 권리를 부여함과 동시에 결정 사항에 대해 책임도 진다는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전원의 참석은 또 의사 결정에 따른 분열을 방지해 화합을 유지하려는 지혜의 소산이다. 우리 헌법 제1조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1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2항)고 국호와 정체, 주권을 밝히고 있는데, 붓다 제세 시 이미 민주주의 핵심 원리를 승단 운영의 기초로 적용하고 있었다. 이와 관련해 정천구 교수는“인류 역사에서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인 자유와 평등을 처음으로 설파한 사상가는 붓다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붓다와 현대정치, 작
가서재, 41쪽)
그런데 한국불교를 대표하고, 선불교 전통을 오롯이 이어오고 있는 현재의 조계종에서 민주주의는 활짝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다.“붓다가 설파한 자유, 평등, 우애의 이념은 아시아적 전제주의 속에서는 국가 이념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승가에 머물러 있었는데 반하여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의 경험이 있었고 문예부흥과 종교개혁, 그리고 산업사회의 등장과 더불어 근대 민주주의로 발전되었다.… 근대에 이르러 민족의식과 민권의식이 발전하면서 동아시아의 근대 지식인들이 비로소 불교에서 개혁과 개화의 이념을 발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정 교수의 분석이다.
현재 조계종의 총무원장선거 제도는 94년 종단개혁의 산물이다. 종단개혁 이전에는 51명으로 구성된 중앙종회에서 총무원장을 선출했으며, 총무원 부장이 종회의원을 겸직할 수 있었다. 중앙종회를 장악하고 있던 당시 총무원장 의현 스님이 3선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제도적 배경이 있었다. 종단개혁 후 들어선 개혁회의 상임위원회는 중앙종회의원 수를 81명으로 늘리고, 24개 교구본사에서 뽑힌 10명씩의 총무원장 선거인단이 총무원장을 뽑도록 했다. 개혁 이전과 비교한다면 참정권을 대폭 늘린 것이다. 당시 이 제도에 평가는, 특정인의 작용에 의해 총무원장이 선출되기 어렵게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많았다. 이 정도의 총무원장 선출 제도의 개혁을 이뤄낸 것도 적지 않은 진전이었다.
교구선거인단은 산중총회에서 선출하는데, 승랍 3, 40년 된 스님이나 10년 미만인 스님이나 같은 1표를 행사하게 한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 반대론의 주된 논리였다.
나아가 장로를 존중하는 오랜 전통이 하루 아침에 무너졌다는 탄식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럼에도 이 제도는 20년 가까이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이 제도 또한 종도들의 의사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거세졌다. 94년 개혁 이후 5명의 총무원장을 선출한 이 제도가 이제 그 수명을 다 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즉, 교구선거인단을 선출할 때 교구의 유력자 또는 중앙정치의 실력자들의 영향 아래에 놓이면서 교구 내 종도들의 의사가 왜곡된다는 것이다. 실제 교구선거인단 선출을 총회에서 하도록 규정했을 뿐 자세한 하위법령은 없다. 그러다보니 지명 또는 전형위원이 교구선거인단을 뽑는 사례도 많다. 반면 직할교구의 경우 선거인단이 되기 위한 입후보와 교구 내 스님들의 직접 투표에 의해 뽑는데, 이 같은 방식을 채택하는 교구는 오히려 예외적인 경우에해당한다.
지난해 개정한 선거법 중 총무원장 피선거권 조항도 지나치게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악법이다. 현 선거법 13조 1항에서는“승랍 30년, 연령 50세, 법계 종사급 이상의 비구로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격을 갖춘 자는 총무원장의 피선거권이 있다”
면서 ▶중앙종회의장, 호계원장, 교육원장, 포교원장 역임 ▶교구본사주지 4년 이상 재직 경력 ▶중앙종무기관 부·실장급 이상 종무원 2년 이상 재직 경력 ▶중앙종회의원 6년 이상 재직 경력 ▶각급 종정기관위원장 역임 등 5가지로 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불교포커스>는“총무원장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이 같은 조항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중앙종회 중심의 계파의 유지에 있다는 점이다. 계파의‘끼리끼리’ 의식의 극단이 이 조항이다. 계파의 폐해가 종법에 스며들어 제도화된 것”이라며“총무원장이 되려면 본사주지, 중앙종회의원, 중앙종무기관 부·실장 등의 경력을 쌓아야하는데, 현재의 견고한 계파구도에서는 계파로부터 초대받지 않고서는 이런 경력을 쌓을 수 없다. 이 점은 분명하게 청산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위헌 심판대에 오른‘총무원장 피선거권’, 2013. 9. 11) 선거법은 이후 반드시 개정되어야 한다. 피선거권의 지나친 제한은 원력 충만하고 능력을 갖춘 스님들의 총무원장 후보 자격을 애초부터 차단함으로써 종단의 자원을 낭비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종법에 대한 신뢰 약화로 이어진다.
종책토론회와 관련해서도 선거법에서는 의무조항이 아닌‘열 수 있다’는 선택 조항으로 두고 있다. 종책토론회는 후보와 종도들이 만나는 접점이며, 종단과 종도들의 미래를 논의하는 축제의 장 같은 것이다. 후보자와 종도들이 종책을 놓고 대면함으로써 후보자의 진정성과 종책의 실현 가능성, 이에 따른 선택의 폭을 넓혀준다. 종도들의 권리의식을 높이는 것은 물론 종단에 대한 공동의 책임을 나누는, 그리하여 종단의 주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게 해 공동체의 건강성을 높이는 중요한 장치이다.
34대 총무원장을 뽑는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의 당락에 관심이 쏠리겠지만, 불교와 민주주의, 그리고 민주주의의 불교적 구현을 생각해보았다. 민주주의의 원천인 불교라는 자긍심이 조계종 안에서 제대로 작동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