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운동가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20여년간 라다크(Ladakh) 에서 머물면서 진정한 행복은 무엇이며 사회의 바람직한 변화상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고찰한 책 《오래된 미래》를 간략하게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2004년에 우연히 이 책을 접한 뒤에 두시간 정도 그 자리에서 발췌해 읽어본 것이지요. 무슨 내용을 저술했는지를 자세히 기억해낼 수는 없었지만 당시에 읽었던 라다크는 문명세계와 고립되었으면서도 행복한 사람들로 넘쳐나는 도시로 제 머릿속에 뚜렷하게 각인되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이곳을 한번 찾아가봐야겠단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런 연유인지 2009년 9월에 한번, 2013년 7월에 다시 한 번 이 라다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레(Leh)는 인도 잠무 카슈미르 주州의 라다크 지방의 험한 산맥들로 둘러싸인 해발 3500미터에 위치한 고산 도시입니다. 티벳 불교의 라마교인들이 주민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건조하고 척박한 환경이나 티벳의 주도인 라싸와 비슷한 해발고도까지 겹쳐서, 라다크를 인도의 티벳 혹은 라다크의 주도인 레를 라다크의 라싸라고 불러도 무방하리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 레는 고준한 산맥들로 에워싸여 있기에 육로를 통해 이곳에 들어가려면 고산의 눈이 녹는 여름을 기약해야만 합니다. 대략적으로 6월부터 10월까지 넉 달 정도의 기간동안 마날리에서 험준한 고산으로 난 투박한 길을 따라 봉고차로 16시간 동안 이동하고, 5325m에 달하는 설산의 고개 타그랑 라를 통과하는 인내를 감수해야만 도착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레인 것입니다. 새벽 두시에 마날리를 출발하여 달밝은 한밤에 조우하게 된 설산은 한껏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꿈을 꾸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게 해줍니다.
레는 참 묘한 풍광을 보여주는 매력적인 곳입니다. 험난한 설산을 견뎌내야만 도달할 수 있는 사막의 한가운데 위치한 고립된 도시지만 이에 무관심한 언제나 푸른 하늘이 일년 내내 펼쳐져 있습니다. 어떻게든 이 척박한 터전에서 천년간 살아왔던 사람들이 일군 녹색의 평원이 펼쳐져 있고 네모난 집의 지붕위엔 형형색색의 룽다들이 바쁘게 나부끼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전에 대구 동화사를 찾았던 라다크 지방의 노스님들께서 가을의 단풍으로 물든 팔공산을 보시고서 이곳이 극락이라고 감탄하셨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에게 레는 자연의 척박함과 사람의 절실함이 묘하게 공존하는 느낌을 줍니다.
레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남걀 체모 곰파에 찾아가 가사를 수하고 미륵불이 모셔진 법당에 들어가 참배를 했습니다. 그리고 금강경을 읽고 백팔배 참회를 하고 있으려니 이곳을 관리하시는 스님이 불단에 청수를 올려주셨습니다. 후에 일본의 남묘호렌게쿄에서 세운 창스파 끝의 언덕에 위치한 산치스투파에 찾아가 참배를 했습니다. 그리고 평상시에는 레 중심지에 있는 곰파에서 참배를 드렸습니다. 인도에서는 불교 성지와 달라이 라마가 계신 다람살라를 제외하고는 절이 있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에 레가 새삼 소중하게 여겨졌습니다.
레를 기점으로 해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은 중국의 국경과 접해 있는 판공초, 그리고 누브라 밸리 지역입니다. 저는 이곳을 세계 일주를 하는 한국인 젊은 부부, 그리고 직장을 그만두고 세계일주를 하는 남자 두 분, 이렇게 모두 세계 일주를 하는 사람들과 다녀왔습니다. 판공초는 인도 영화 <세 얼간이>에서 마지막 장면에 세 친구가 모인 거대한 호수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누브라 밸리의 가장 북쪽에 있는 이슬람 마을 뚜루뚝까지 향했습니다. 사실 뚜루뚝은 인도 파키스탄간의 영토 전쟁에서 승리한 인도가 파키스탄으로부터 얻어낸 영토이고 이곳이 외국인들에게 개방된 것은 지난 2010년부터였습니다. 판공초가 티벳 카일라스 순례길을 가는 도중에 보았던 자연과 흡사하여 그닥 큰 감흥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파키스탄 국경과 채 몇킬로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완전한 이슬람 마을 뚜루뚝은 파키스탄의 훈자 지역을 연상케 했습니다. 마을 곳곳으로 생활용수로 쓰는 도랑물이 흐르고 살구나무가 마을 곳곳에 즐비한 마을이었습니다. 외국인들에게 개방된 지 채 몇 년 되지도 않아 식당이나 숙소도 변변찮았지만, 외려 그런 투박하면서도 목가적인 풍경들이 마을 본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더욱 기억에 남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시 돌아온 레. 레는 이미 1974년에 개방이 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수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았습니다. 《오래된 미래》의 저자 헬레나는 세월이 흘러가면서 외국인들의 유입으로 인해 점차로 관광화·자본화되어 가고 있는 라다크를 목도한 증인입니다. 그녀가 레에 처음 도착했을 때 어린 아이들은 자신들이 주운 살구를 건네주었지만, 이제는 아이들이 외국인들에게 빈손으로 돈을 달라고 한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여행하는 외국인들의 부유한 상황은 그들에게 상대적 빈곤감을 던져준다는 것입니다. 천년 가까이 이어져온 평화롭던 지역 공동체가 자본의 유입으로 변화되는 실상을 경험하면서 그녀는 과연 바람직한 미래의 발전상은 어떠해야 할지 이 책을 통해 고찰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만행을 하며 뚜루뚝과 같은 외부의 영향이 덜 닿은 곳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그들이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은 어쩌면 온전히 외부인들만의 생각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그 지역민들은 사실상 경제적으로 더 여유롭고, 문명의 이기들도 활용하고 싶지만 그럴만한 여건이 되지 못해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좀 더 편리하고 좋은 환경에서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그들 또한 그런 방향으로 삶을 변화시킬 기회와 자유가 있을 터입니다. 요컨대 우리는 물질과 문명을 맘껏 향유하되, 그들은 변하지 않고 예전 삶의 방식대로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어쩌면 그들의 삶을 관광의 대상으로만 여긴 여행자들의 단견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전통의 지속적인 계승과 미래로의 바람직한 발전 사이에 절묘한 접합점을 찾기란 애매한 일이기도 하려니와, 자본이란 마냥 긍정할 수도 그렇다고 부정할 수도 없는 중대한 매개를 두고 전통과 미래를 알맞게 조율하는 건 지금의 뚜루뚝에도 큰 숙제로 남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