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진리와 과학적 진리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유마의 방 - 소흥렬
1988년 05월 75호
이 세상에 관한 진리는 모두 과학적 진리로 밝혀질 수 있는가? 자연에 관한 사실만이 아니라 인간 사회나 역사에 관한 사실까지도 그것이 진리라면 과학적 진리로 인정을 받아야 하는가? 그러면 진리에 관한한 과학적 방법이 아닌 다른 어떠한 방법도 자신있는 주장을 할 수 없는 것인가? 과학적 탐구가 계속되고 있는 한 비과학적인 방법에 의거하여 진리에 대해 주장하는 것은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지 임시적인 것에 불과하므로 결국은 과학적 방법에 의해서 확인되고 검증되어야만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과학적 방법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에 대해서는 진리에 대한 어떠한 주장도 일단 보류해 두는 것이 옳은가?
현대과학의 위력을 피부로 접하고 있는 우려는 적어도 진리 문제에 관한 한 과학적 방법에 모든 것을 맡겨 버리려고 하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종교적 진리까지도 그것이 과학적으로 확인되어야만 신빙성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종교인들 중에는 그들의 종교적 산조가 과학적으로 입증이 될 수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과학적 종교”임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결국 “과학적이기 때문에 믿는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과연 그것이 사실이라면 종교를 포기하고 과학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한편, 종교의 과학화가 아무래도 못마땅하게 여겨지는 종교인들 중에는 과학적 진리와 종교적 진리를 아예 다른 성질의 것으로 구별해 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종교적 진리가 이 세상에 관한 사실을 말하지 않고 어떤 당위적 삶의 길을 말한다고 한다. “진리”라는 말의 뜻이 전혀 다르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옳고 그른 것, 또는 좋고 나쁜 것을 참되고 거짓된 것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진리는 참과 거짓에 관한 주장이어야 한다. 종교적 진리와 과학적 진리가 다르다면 그 대상 영역이 다르기 때문이지 진리의 문제도 아닌것을 종교적 진리로 혼동하기 때문에 다른 것은 아니다.
그러면 종교적 진리가 왜 과학적 진리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되는가? 또한 과학적 진리의 기준이 어떤 것이기에 종교적 진리가 비판을 받지 않을 수 없는가?
첫째, 종교적 진리는 객관성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주관적인 체험에 의존해야 하므로 독단적일 수 있으며 또한 오류를 범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객관적 방법으로 비판하고 시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과학적 진리는 실험이나 관찰 자료라는 객관적 사실에 의거한 검증을 조건으로 하기 때문에 독단적 주장이 있을 수 없으며 객관적 방법에 의해서 오류를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과학적 언어는 합리성에 근거한 것이지만 종교적 언어는 역설적인것 까지도 허용하기 때문에 비합리적 언어라는 것이다. 즉 과학적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사실에 대해서도 종교는 역설적 주장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과학적 합리성은 수학과 논리학이 허용하는 기준 안에서의 합리성이다. 그런데 종교는 그러한 한계를 넘어서는 체념의 세계를 말해야 하므로 역설적일 수 있으며, 따라서 합리적 진리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세째, 과학적 진리는 보편적인데 반해 종교적 진리는 문화적 특수성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과학의 언어와 논리가 보편적이라는 말과도 같다. 그래서, 보편적 논리와 언어를 초월하는 종교적 진리는 문화적 특수성의 제한을 벗어나지 못하므로 엄밀하게 말하자면 진리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네째, 종교는 신비적 체험의 세계와 기적적 사실을 인정하는데, 이것은 과학적 설명을 허용하지 않는 세계라는 것이다. 그래서 과연 그러한 세계가 있는지, 그러한 체험도 사실의 체험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가 문제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과학적 사실에 비교해 볼때 기적과 신비의 체험을 뜻하는 종교적 사실 이 사실로서의 의미를 인정받을 수 있느냐가 문제시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종교에서 말하는 기도의 힘이라든지 초능력적 현상 같은 것은 과학의 대상 영역이 될 수 없으므로 그러한 것은 진리의 문제라기보다는 심리적 현상으로서만 의미를 갖는 것으로 취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리의 문제를 이처럼 과학적 진리의 기준에 따라서만 해결하고자 한다면 종교적 진리를 주장할 아무런 근거도 찾을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과학적 진리가 아니라면 그 어떠한 것도 진리의 주장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과학적 진리가 위력을 갖는 것은 그 대상 영역을 제한해주기 때문이다. 즉 과학적 방법에 의한 진리라는 것은 결국 검증이 가능한 대상 영역에 국한되어서 주장되는 진리이기 때문에 위력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세계는 그렇게 국한되어 있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과학적 탐구의 대상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복잡해서 과학적 실험이나 관찰의 방법으로 볼 수 있는 세계보다 훨씬 더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 이처럼 다양한 세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났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과학적 도구로써는 볼 수 없는 세계까지도 마음의 능력을 통하여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종교적 수도의 길은 바로 그러한 마음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방법이며, 종교적 체험의 진리 또한 그러한 능력이 보여 주는 진리이다. 물론 이러한 진리는 주관성을 면치 못하는 체험적 진리이기 때문에 독단적일 수도 있고 오류를 범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러한 능력이 우리 마음에 주어져 있어서 종교적 수도를 통하여 개발되고 개선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주관적 체험이면서도 독단적인 것만은 아닐 수 있기 때문에 진리로서의 주장이 가능하고 오류의 제거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종교적 진리의 정통성이 주장될 수 있으며 이단적 주장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있다는 것은, 종교의 세계에서도 독단과 오류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과학적 실험이나 관찰에 의한 검증과는 다르다. 오랜 역사를 통한 그리고 종교적 체험을 공유하는 공동체의 집단적 판단을 통한 검증 방법이다.
종교적 역설이라는 것도 형식 논리적 모순과는 다른 것이다. 과학적 언어와 논리는 대상세계를 단순화하거나 추상화함으로써 수학적이고 외연적인 논리로 서술하고 설명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대상세계를 총체적으로 보거나 그것이 내포한 의미와 질적 관계까지를 포함하는 설명을 하기에는 과학적 언어와 논리가 아직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그러므로 선형적이고 외연적인 과학의 논리로 보면 역설적인 종교적 진리도 그 자체로서의 합리성을 가질 수 있다. 즉, 어떤 체험적 내용으로서의 사실 세계를 말해주는 진리일 수있다는 것이다. 역설적이기 때문에 믿는다라고 하는 말의 뜻은 무엇인가? 과학적 논리로 보면 역설적일 수 밖에 없는 새로운 차원의 체험이기 때문에 종교적 가치를 갖는다는 뜻이 아닌가?
종교적 기적이라든지 신비적 체험이라는 것에는 사실이 아닌 환상이나 환각 작용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환상이 아닌 사실의 세계, 그러한 차원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에 종교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종교적 진리의 세계는 일상적 경험의 세계와는 다른 차원의 세계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일상적 경험의 세계와 관련된,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체험되는 세계이다. 우리의 마음은 그두 가지 차원의 세계를 다같이 체험할 수 있기 때문에 종교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과학적 탐구의 일차적 목표를 우리의 일상세계에 대한 설명과 이해에 둔다면, 종교적 탐구는 그러한 과학의 목표와는 다른 차원의 세계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모든 인류사회에서 지금까지 각기 다른 문화적 특수성에 따라서 개척해온 종교적 수도의 길은 얼핏 보기에는 어떠한 보편성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현상은 바로 종교적 체험이 일상적 경험의 언어만으로는 충분히 표현될 수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것이다. 과학에서도 경험적 개념이 아닌 이론적 개념의 세계로 들어가면 여러 가지 이론들이 서로 다른 의미의 개념들을 사용하면서 병립할 수 있는 것처럼, 종교적 체험에 관한 표현도 문화권에 따라서 다른 의미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사람이면 누구든 본래의 자기 문화권을 지배해 오는 종교와는 다른 새로운 종교로 개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종교의 보편성은 사람이면 누구든 어떠한 새로운 종교라도 체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발견된다. 물론 그것은 참종교이어야하며, 그것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종교적 진리는 과학적 진리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과학적 진리와 동일시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과학시대라고 하는 오늘에 살고 있는 우리는 과학적 진리와 종교적 진리가 동일시되어야하는 것처럼 착각할 수가 있다. 그러나 종교가 그 자체의 진리 탐구를 포기해 버릴때 그것은 세속화된 또 하나의 사회적 기구로 전락하고 만다. 종교가 과학적 합리성의 차원에만 머물게 될 때 그것은 다른 기업체나 정치 집단처럼 세속적 목표를 위해 경쟁하게 된다. 과학적 종교임을 자랑하는 것일수록 종교로서는 타락한 사교가 되기 쉽다.
이러한 종교의 세속화와 그로 인한 사회의 세속화를 염려하는 종림스님의 말은 종교적 진리에 관한 올바른 인식을 요청하고 있다. “종교가 그 창조력을 잃고 대중으로부터 매력을 상실할 때 사회는 세속화된다. 신적인 어떤 것에 대한 외경이나 궁극적인 진리에 대한 신념이 사라질 때 그 문화는 세속화될 수밖에 없다. 종교가 그 사회나 시대의 주도권을 잃고(그 반면) 비종교적인 이념이 지배하게되면, 종교적 진리는 현세적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해인, 1988.3, “세속화된 사회에서의 불교”)
종교의 창조력이란 무엇인가? 과학의 창조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모두 진리탐구를 발전적으로 이끌어가는 힘이다. 과학적 가설을 새롭게 세우는 창조력과 마찬가지로 종교적 체험의 세계를 넓혀주는 창조력이 필요하다. 그러한 종교적 창조력을 위하여 수도자들은 온갖 어려움을 감수하는 길고 험난한 길을 걸어야하는 것이다. 과학자의 길과 수도승의 길이 공통점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아마 창조적 영감을 기다리며 준비해야 하는 오랜 노력의 과정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인슈타인 같은 과학자도 나중에는 종교적 체험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는 고백을 했을 것이며, 수도승들 중에서 멘델 같은 과학자가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과학적 진리와 종교적 진리는 다른 차원의 세계를 그 대상으로 하지만, 우리 자신은 그 두 가지 차원의 세계를 함께 살고 있으므로 우리 안에서 그 두 세계의 연관성이나 상호의존성을 체험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