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 스님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다가 출가했다. 좋은 조건의 회사에서 물질적으로는 허허로움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인생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 있는 삶인가, 가장 근원적인 질문을 붙잡고 정신적으로는 허허로웠다.
\"그때 저는 인생을 더 잘 살고 싶은 욕심이 있었는데, 인생이란 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았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죠.\"
퇴근을 하면 서점에 가서 불교 서적을 읽었다. 그러는 중에 숭산 스님이 제자들과 문답한 서간문을 모아놓은 책인 <오직 모를 뿐>을 읽게 되었다. 그 책을 통해 불교라는 것은 언어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설사 잡혀먹는 한이 있더라도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출가를 결심했다. 그러나 집안의 반대로 인해 마음은 출가했으나 몸은 출가하지 못한 채로 1년이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어느 날 스님은 답답한 마음에 가방 하나 들고 집을 나와 우연히 김천으로 향했다. 하룻밤을 자고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근처의 절을 물으니 문경 김용사를 일러주었다. 스님은 그대로 그곳에 가서 한 달을 머물렀다. 그곳에서 동일 스님은 첫 번째 수행체험을 하게 된다. 아침 새벽 예불 때 종각에서 종을 치는 분이 절에서 일하는 처사님이었다. 동일 스님은 그 종을 정말 치고 싶었다. 언젠가는 그 처사님이 늦잠을 자리라 생각하고 늘 종각 앞에서 기다렸다가 예불을 보러 가는 나날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비오는 날 정말 그 처사님이 늦잠을 자서 나오지 않았고 동일 스님은 기쁘게도 그 종을 치게 되었다. 새벽 예불이 끝나고 아침 6시 공양시간까지 각자의 방에서 보내는 시간, 동일 스님은 그 시간에 방에 들어가서 조는 게 여간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그날은 새벽 예불이 끝나고 나서 방에 들어가지 않고 대웅전 마당을 서성였다. 마당에 산안개가 자욱이 깔린 참으로 고요한 시간이었다. 포행을 하다가 어느 순간 마음이 환하게 밝아지는 느낌이 들면서 스님은 자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한지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때까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잘난 체 하며 살아왔던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부끄러운 모습으로 대했던 주변 모든 이들의 얼굴들이 떠오르기 시작하는데 한 두 사람이 아닌 거예요. 옆에 있으면 큰절이라도 올리며 사죄하고 싶을 만큼 미안했어요. 그때서야 나를 보게 된 거예요. 그러면서 사람은 정말로 진실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죠.\"
출가 전이었지만 스님에게 있어 첫 번째 수행체험이었다. 스님은 그것이 수행으로 접어드는 첫 걸음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 해에 스님은 범어사로 출가하게 된다. 세속에서의 습관을 버리기도 전혀 다른 환경에 적응하기에도 쉽지 않았을 것만 같은데 스님은 말씀하신다.
\"기뻤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행복하게 힘들 수 있죠.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하면 아무리 쉬운 일이어도 고통스럽게 쉽잖아요.\"
스님은 그때그때의 상황 속에 놓인 길 위에서 주어진 일을 하며 살았다. 범어사에서 행자생활을 하는데 한 스님이 말하길 해인사에 가면 스님들이 굉장히 많이 살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수행을 잘한다고 했다. 그만큼 최고로 힘든 곳이라고도 했다. 그 말을 듣고 강원에 가려던 생각도 없던 스님은 해인사 강원으로 갔고 그곳에서 4년을 보내고 졸업했다. 졸업 후 도반들이 선방으로 갈 때 스님은 광명시에 있는 금강정사에서 1년간 은사스님을 시봉하며 살았다. 그때가 아니면 스님 곁에 머물 시간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고는 그 이듬해 문경 봉암사 선방을 시작으로 참선을 하러 다녔다. 그 후 송광사 율원을 권하는 스님이 있어 그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선방을 다니며 서장을 제대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율원에서 경도 보고 참선 관련 책도 볼 심사였다. 그렇게 율원을 마치고선 송광사 강원에서 강사로 3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송광사에서 보낸 5년이란 시간은 좋은 선지식들을 가까이 모시고 감화 받으며 수행할 수 있었던, 수행자로썬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스님들의 수행이나 공부란 것은 글이나 말을 통해서 전달되는 가르침도 있겠지만 선지식들의 무언의 가르침이 더 큰 것 같아요.\"
송광사 방장이신 범일 보성 스님과 율주이신 지현 스님, 현재 통도사 강주이신 현진 스님을 모시고 살면서 많은 무언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저 당신들이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가 가르침이었다. 주변의 모든 존재들을 자비롭고 온화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며 무엇이 수행자의 옳은 모습인지 알았다. 그리고 그렇게 닮아가고 싶었다.
\"내가 가진 기존의 생각들이 많이 정리되면서 내면의 변화가 가장 많았던 시절이었어요.\"
김용사에서의 첫 수행체험이 수행의 문으로 들어가는 과정이었다면 송광사에서의 수행체험은 동일 스님 스스로를 다듬어갈 수 있는 과정이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물 흐르듯 순리대로 흘러가야 한다는 것. 수행자라면 모든 존재를 자비롭고 온화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 그런 것들을 알게 되면서 많이 성숙됐다고 할까요. 송광사에 있기 전과 후의 변화가 크지요. 안 보이던 부분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게 변화 아니겠어요?\"
스님은 이어 말씀하신다. 내 자신이 보이기 시작하면 상대방도 보이기 시작한다고. 그러나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보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인가?
\"아주 간단해요. 진실하면 돼요. 자신에게 진실하고 솔직한 그 마음을 양심이라고 하지요. 누구에게나 양심은 다 있어요. 그런데 왜 못 본다는 거예요. 안 보는 거지. 안 보는 이유는 욕심 때문이지요. 욕심이 개입되는 순간 자기 합리화를 하며 양심을 잠시 덮어버리죠. 그나마 자신이 그렇다는 걸 아는 사람은 다행이에요. 많은 사람들은 그 사실조차도 또 한 꺼풀이 덮고 있어서 알지 못하거든요.\"
동일 스님은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 일관된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다른 듯 하지만 결국은 하나인 이야기. 사람은 진실해야한다는 것, 거짓말을 하면 나쁘다는 것. 그렇게 기본적이면서도 살면서 결코 실행이 쉽지 않은 이야기. 그래서 가장 소중한 이야기. 그래서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누구나 살짝살짝 타협하며 살죠. 그러면 참회를 해야죠. 세상에 살면서 참회할 일 천지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