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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불타萬人佛陀 만사예술萬事藝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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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김준기 2013년 09월 379호

천년고찰과 현대미술의 만남. 해인아트프로젝트가 여는 새로운 연緣이다. 그 뜨거운 만남의 길에 해인사 스님들과 큐레이터들의 상하이 아트투어가 열렸다. 40도를 오르내릴 정도의 무더위 속에서 일행은 상하이라는 도시와 그곳의 현대미술을 만나기 위해 분주히 발걸음을 옮겼다. 첫 번째 아트투어는 상하이당대미술관. 기획전 출품작 가운데 일행의 관심을 끈 것은 사진과 영상, 회화 조각 등의 다양한 매체 작품들 가운데서도 ‘휴식시최고적혁명休息是最高的革命’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은 설치미술 작품이었다. 휴식이 최고의 혁명이라! 낯설어 보일만한 개념미술이 우리 일행들에게는 오히려 가깝게 다가왔다.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전세계 미술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중국 상하이는 미술문화공간에 있어서도 단연 앞선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 2012년에 개관한 상하이당대예술박물관(Power Station Of Art)이다. 말 그대로 예술발전소. 원래 발전소로 쓰였던 건물을 개조한 기념비적인 이 건축물은 중국의 문화적 팽창을 상징한다. 그곳에서 앤디 워홀 전시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그의 초기작부터 말년의 대표작까지 아우른 대규모 전시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연 팝아트 대가의 면면을 속속들이 보여주었다. 주지스님은 관객참여 프로그램인 ‘워홀 식 사진 찍기’에 참여했다. 아이패드로 찍은 사진을 워홀 특유의 이미지로 편집해서 프린트한 후 기념배지로 만들어 주는 것. 팝아트와 만난 스님은 흔쾌히 대중 속에 서 계셨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방문객의 눈길을 잡아끄는 상하이의 마천루들은 현대건축이 실용적인 건축공간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상징투쟁의 장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었다. 일본 자본으로 건립한 초고층 빌딩이 상하이의 혈 자리에 일본도를 꽂아놓은 형상이라는 비판에 따라 건물 디자인을 바꿨다. 칼자루를 병따개로 바꾼 것도 모자라 그 옆에 용모양의 더 높은 건물을 짓고 있다는 점. 중국인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상징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지를 잘 알려주는 대목이다. 베를린에서 보았던 후지산 형상의 소니 빌딩이 떠올랐다. 역사 속에 깊이 박혀 있는 동북아시아의 민족과 국가 간 경쟁은 첨단의 자본주의 게임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었다.

도시를 오가는 중간에도 일행은 스님들과의 대화삼매에 빠졌다. 평소에 가질 수 없는 말랑말랑한 문답이 이어졌다. 인연(因緣)은 반드시 결과(結果)와 관계 속에서 생각해야할 문제라는 점. 운명론적 관점의 인연론을 인과론적 관점으로 전환해준 변증론에 고개를 끄덕였다. 종교의 문제뿐만 아니라 역사와 문명에 관한 통찰이 살아있는 대화였다. 종교와 예술, 종교와 과학, 그리고 과학과 예술 사이를 오가는 아름다운 말씀들. 나는 가야산이 아닌 상하이 도심에서 만난 지혜와 도량의 문답에 그저 황홀할 뿐이었다.

와이탄 지역의 근대초기 유럽식 건물들과 건너편의 마천루들, 게다가 중국 전통의 면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공원과 건축물들이 뒤섞여 있는 상하이는 급변하는 당대중국의 현장이었다. 몇해전 상하이를 처음 방문했을 때 만났던 생뚱맞은 고층건물 ‘캐피탈랜드(CAPITAL LAND)’는 더 이상 낯선 것이 아니었다. 사회주의 중국은 첨단의 자본주의 도시 상하이를 필두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급격한 변화는 또한 중심과 경계의 차이를 낳는다. 상하이 안에서도 그랬다. 중심부의 우뚝 솟은 마천루들에 대해 도시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과거의 흔적들은 ‘차이나는 차이나(China)’를 날것으로 드러냈다.

동방명주 전망대에 올라 수백미터 아래가 투명하게 내려다보이는 아찔한 현장을 만났다. 밑바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강화유리 바닥에서 가부좌를 튼 스님의 모습은 ‘모든 것이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는 걸 보여준 유쾌한 퍼포먼스였다. 뭇 중생의 삶 속에 부처의 마음이 깃들도록 하는 것이 불가의 가르침이라는 점. 깨달음과 가르침의 삶을 사는 스님들과 그 거대하고 번잡한 상하이에서 보낸 몇날며칠을 통해 배웠다. 뭔가 설명을 해야만 할 것 같은 현대미술을 스스로 친근하게 읽어내는 스님들의 모습은 큐레이터인 나에게 또 다른 깨우침을 주었다. 불가의 가르침이 ‘우리 모두가 부처’라는 생각을 갖게 해주는 것이라면, 예술 또한 생각과 태도를 바꿀 수 있겠다. 우리 모두가 예술가요, 우리가 짓는 모든 일이 예술일 수는 없겠는가! “만인불타萬人佛陀 만사예술萬事藝術”. 모두가 부처요, 모든 것이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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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미술평론가)

김준기는 예술학을 공부했으며 가나아트 기자와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등을 거쳐
현재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