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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뻗는 것이 도리어 벼랑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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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 해인총림 방장 법전 스님 2013년 09월 379호

초종수수超宗垂手는
요무이철了無異轍이니라
종지조차 넘어서서 손길을 드리워야
비로소 그 자취마저 남기지 않는구나.

원오극근 선사가 말했습니다.
“동산양개 선사 문하에서는 차별된 두 가지 수법이 있다. 출세出世와 불출세不出世 즉 세간으로 나왔는가 나오지 않았는가 하는 것과, 또 수수垂手와 불수수不垂手 즉 방편으로 손을 드리웠는지 아예 거두었는지를 동시에 말했다. 세간에 나오지 않을 경우 하늘만 응시하면 되겠지만, 세상에 나타날 경우 머리에 재를 뿌리고 얼굴에 흙을 묻히게 될 것이다.”

가섭존자가 부처님께서 들고 있는 연꽃을 보자 이심전심으로 미소를 지었습니다. 염화미소 이후 선등禪燈의 초조가 되었고 그로부터 역대조사의 법등이 면면히 이어져 작금에 이르렀습니다. 그 사이사이에 손을 드리우고 저자거리로 나선 수수垂手의 선지식도 있었고, 혹은 우뚝 솟은 봉우리 깊은 곳에서 홀로 지내며 법을 청하는 납자에게 조차 종지宗旨만 보일 뿐, 절대로 방편은 보이지 않는 불수수不垂手의 선자禪者도 있었습니다.

‘수수’이건 ‘불수수’이건, 두 방식 모두 상대방에게 종지를 보여주고자 함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손을 쓸데마다 왼쪽 눈은 힘줄을 돋우고 오른 쪽 눈은 살이 도려 지도록 두 눈을 부릅뜨고 그것이 어떤 방편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낱낱의 언행마다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못한 경우임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손부터 드리우기만 한다면 도리어 그것은 만 길 벼랑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수수’와 ‘불수수’는 결코 둘이 아닙니다.
어떤 때는 머리에 재를 뿌리고 얼굴에 흙을 묻히는 방식이 만길 높은 봉우리에 머무는 일인 것이며, 어떤 때는 만길 높은 봉우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머리에 재를 뿌리고 얼굴에 흙을 묻히는 일인 것입니다. 실로 종지宗旨조차 넘어서는 인물이 손길을 뻗을 때야만 비로소 그 자취마저 남기지 않게 되는 까닭입니다.

삼복三伏과 함께 90일 여름 결제를 마쳤습니다. 더운 경계 안에서 손을 드리운 것은 덥다는 차별상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요, 더운 경계 밖에서 손을 펼친 것은 온몸이 그대로 더운 경계인 까닭입니다.
역대 모든 선지식들이 더위의 안팎에서 두 번 손을 뻗은 까닭은 하안거 대중들의 눈이 가로로 붙어 있고 코는 세로로 곧게 뻗어있길 바라는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방편은 수수垂手요, 종지는 불수수不垂手입니다. 하지만 종지는 방편으로 인하여 드러나게 되고, 방편은 종지로 인하여 제대로 의미를 가집니다. 따라서‘수수’와 ‘불수수’는 결코 둘이 아닌 것입니다. 총림의 해제대중은 ‘수수’와 ‘불수수’라는 불이不二의 두가지 방편을 동시에 갖추고서 해제길을 나설 때 이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해제라고 할 것입니다.

구정안입전수수具正眼入廛垂手하니
묘득황전불간초妙得荒田不揀草니라
정안을 갖추고 저자거리에서 손을 드리우긴 했지만
황폐한 밭을 묘하게 얻고서는 잡초도 골라내지 않는다.

불기 2557(2013) 계사년 하안거 해제일 도림법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