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답(朱耷, 1625~1705?), <하화취조(荷花翠鳥)>, 淸代 종이에 수묵, 182×93㎝,
上海博物館, 中國.
실은 선화禪畵라고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가 둘이 있다. 그중에 하나는 팔대산인(八大山人)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주답(朱耷, 1625~1705)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석도(石濤, 1641~1740)이다. 이 두 사람 모두 중국의 청淸 초의 작가로 모두 성이 주朱씨, 즉 명 황실의 후손이다. 이들은 모두 명이 망하자 입산하여 스님이 되었고, 지금은 스님으로서 보다는 화가로 더 알려져 있다.
독자들께서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이 연재 초기에 선화禪畵란 무엇일까 하는 정의를 내려 본 적이 있다. 선화나 문인화文人畵 같은 종류의 그림을 두고 어떤 것이다라고 명확히 구분하기는 참으로 쉽지 않다. 이는 마치 현대 한국화의 정의를 내리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 일 것이다(한국 사람이 그린 그림?, 한국 전통적인 기법과 재료로 그린 그림?).
하지만 굳이 이렇다 저렇다 설왕설래를 해 보자면 이런 것이었다. ‘승려들이 여기餘技로 선禪의 뜻을 담아 그린 것’이라고 정리하고, 양식 특징으로 주로 수묵을 사용하고, 감필減筆 즉 붓놀림을 최소화하여 선의 종지를 단순 간결하게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것은 선 수행 결과로 얻어진 깨달음처럼 즉각적이고(돈오頓悟), 텅 빈(공적空寂) 이치를 드러내는데 매우 효과적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팔대산인과 석도는 두 사람 모두 스님이었으니 선화의 첫 번째 조건에 부합한다(문인화는 문인이 그려야 문인화고, 선화는 선승이 그려야 선화로서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첫 번째 조건을 충족하고 이후 감필, 속필(速筆, 빠른 붓놀림)이라고 하는 선화 양식특징을 두루 갖춘 그림으로는 팔대산인의 작품이 더욱 그렇다. 팔대산인의 그림에는 화면 속 여백에서 드러난 공적과 은유의 공간이 있고, 빠른 붓놀림으로 만들어낸 찰나적 느낌과 먹의 번짐 효과를 능숙하게 사용함으로써 우연적이면서 자연스러운 효과가 두루 갖추어져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그림 속에서 묘한 긴장감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팔대산인의 여러 그림들이 전해지지만, 상해박물관에 있는 <연꽃과 물총새>(하화취조도荷花翠鳥圖) 그림을 감상해보자. 연꽃과 물총새는 주답이 즐겨 취한 소재였다. 그 중에서 연꽃은 전형적인 불교 소재이자 문인화에서는 팔군자八君子 중에 하나이기도하다. 물론 연꽃의 생태적 특징 즉 씨가 많이 맺는 것, 뿌리는 넝쿨로 이어져 빨리 번식한다는 덕목을 강조하여 민간회화 소재로도 많이 그려졌다. 팔대산인의 연꽃은 강한 먹으로 그려낸 커다란 연잎이 특징이다. 활달하고 대담하게 구사한 발묵發墨과 파묵(破墨, 두 가지 기법 공히 먹을 겹쳐 사용함으로써 먹의 농담으로 입체감을 표현하는 수묵화의 한 기법)의 효과는 선사들의 일탈적 행동과 자유로운 정신을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의 작품 속에서 연잎들은 서로 호응하는 구도로 그려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화면 왼쪽의 연잎은 우 상단의 연잎과, 다시 좌 하단으로부터 올라온 백련白蓮꽃은 우 상단에서 내려온 연과蓮果와 호응을 하고 있다. 더불어 화면 속 두 마리 물총새도 그렇다. 좌 하단 물총새는 머리를 돌려 위를 향하고 우 상단 물총새는 아래를 내려보며 눈을 맞춘다. 이 두 마리 새는 일반적인 화조화에 그려진 암수 화합의 화기애애한 느낌은 전혀 아니고 서로 무엇인가 은밀하고도 심오한 뜻을 눈빛으로 전하는 그런 느낌이다. 게다가 외다리 새들이다. 주답의 새들은 모두 외다리였다. 망국의 설움을 외다리 새들에게 의탁한 것이다. 새들의 이러한 포지션으로 말미암아 이 그림의 사의寫意적 밀도가 한층 두터워졌다. 그림의 설명을 봐서도 알겠지만 게다가 이 그림은 182×93㎝으로 아주 큰 그림이다. 상해박물관에 가서 이 그림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큰 화면에서 품어 나오는 활달하고 거침없는 필묵에 압도되는 바가 있었다. 실은 도판의 작은 그림으로 감상하기엔 아쉬운 점이 많다. 아무튼 후대의 평가에 있어서도 선화가로서 팔대산인의 입지는 독보적이다. 그는 남송대 선화가들과는 또 다른 기법과 양식을 통해 상징성이 짙은 선화의 경지를 이루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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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님은 상명대학교에서 한국 미술사를 공부하였으며 석가여래 설법도상 연구로 동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한국미술사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있다.